"이렇게 예쁘고 앞길도 창창한 사람이 왜 그랬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병

by 정지은 Jean


작년과 올해를 가로지르던 그 겨울, 정말 많은 별들이 세상을 떠났다. 한동안 부정적인 단어들이 기사에 금기어처럼 설정되었고 연예 기사 끝에는 우울증 상담센터나 신고센터 전화번호가 걸렸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는 연예 기사 페이지에서 댓글 기능을 없애기도 했다.


그러기에 당시 수많은 연예인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매번 묻곤 했던 질문이 있었다.


"작품 속에서 이런 배역을 맡으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연기할 때가 아니라도 항상 대중들의 시선에 놓여 있는 직업이라 더욱 힘들잖아요. 평소에 이런 정신적인 부분은 어떻게 극복하고 계세요?"


그때만 해도, 그들이 답변하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건 나와 다른 세상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들은 그들의 사생활에서 내가 엄두도 못 낼 정말 많은 일들을 겪고 있었고, 나는 그저 "저걸 어떻게 버티지?"라고 그들을 관망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점심 미팅 자리, 회식 자리, 각종 행사의 뒤풀이 자리에서 흘러 나오는 수많은 루머들과 진위를 알 수 없는 가십들, 그 속에서 나오는 비린내 풍기는 대화들을 한귀로 듣고 흘릴 때의 내 태도도 같았다.




그랬던 내게 아직까지도 떠오르는 한 배우와의 인터뷰가 있었다. 인터뷰가 오후에 잡혀있던 날 오전에 만난 한 관계자에게서 그 배우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듣게 되었다. 계속 그 소문의 잔상이 아른거렸던 나는 그 배우에게 노트북을 접고 "요즘 괜찮으세요?"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잠시 텅빈 눈빛을 보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그 부분을 최종 인터뷰 기사에서 삭제했다. 질문에 답하기 전 한참동안 흐른 그의 정적과 눈빛이 무엇을 정확히 표현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기사를 데스크에 쉽게 송고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 눈빛이 걸려서였다. 바보같이 던진 농담에 천진난만하게 웃다가도 공허해지는 그 눈빛. 꺼림칙하게도 그건 어디선가 본 듯한 아주 익숙한 눈빛이었다.


그것은 매일 아침 내가 일상해서 마주하던 나의 표정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사실 이미 내게도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였으며, 당시의 난 그저 이 세상엔 드라마틱한 계기 없이도 마음의 병이 충분히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



우울증이란 무엇인가? 나는 최근 몇 주간 발화점이 된 심각한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그로 인해 비롯된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다닌 당사자였다. 지독한 우울증 증세를 겪은 후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우울증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병'이라고.


내 주위의 동료 기자들뿐만 아니라, 지인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의문을 품곤 했다.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며, 특히나 '핵인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주위에 사람이 들끓는 인기 많은 사람이 왜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냐고. 우울이라는 일말의 감정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결정, 그 안타까운 결말로 가는 서사가 탐탁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우울증이라는 놈과 맞닥뜨린 당사자가 되어보니 그 존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방금 말했듯, 우울증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따윈 어둠에 묻히게 하는 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 제일 환장하는 부분은 그 얼굴들 속엔 자신의 얼굴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난 인생이 어떤 식으로 흘러왔든, 흘러갔든. 우울증에 빠지면 자신과 삶에 대한 모든 미련이 사라진다. 현재의 내 모습이 있기까지 어떻게 내 삶을 가꿔왔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함께해왔는지, 나의 장점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마음의 병이다.


직업상 미친 듯이 사람들을 만나고 주말에도 극한의 업무량을 소화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왔던 일상의 고단함, 10년동안 영국과 서울을 오가며 혼자 살았던 황무지 같았던 생활, 돌진해오던 이들과 벌였던 지난날의 연애 등 다양한 부분에서 상처를 받았지만 그 아픔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원망이나 분노를 터뜨리지도 않았으며 그저 내면의 상처를 묵과했다.


그러한 반복 과정을 통해 심화된 우울증은 나를 극한의 무기력 상태로 인도했다. 그리고 발화점이 된 최근의 폭탄 같은 사건은 앞으로의 좋은 날, 만나게 될 좋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상태, 그저 이 삶을 끝내고 싶을 뿐인 어둠만이 나를 끌어당겼다.



상담사를 찾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나의 고민들을 조금이라도 흘릴 때마다 지인들에게 돌아온 "왜?"라는 말을 듣기 싫었다. "넌 왜 젊고 예쁘고 앞으로 앞길도 창창한데 왜 그런 생각을 해". "지금 이룬 것도 많으면서 왜 그랬어. 지난 29년이 아깝지 않아?" "너 왜 그래", 왜. 왜. 왜.


칭찬이라고 받아들이기엔, 신기하게도 한 줌만큼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 그렇지?"라며 분위기를 무마했지만 마음 속은 오히려 갈래갈래 찢어지고 있었다.


열심히 했는데, 다 없어졌어요.
그래서 더 이상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처음 정신과에 갔을 때 말없이 한동안 의사 선생님을 응시하다 처음으로 토해낸 말이었다. 지독한 불면증과 식욕의 부재로 반폐인이 된 후에야 찾아간 자리였다. "살고 싶지 않아요"라는 의미로 그 말을 했지만, 선생님은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요. 그건 '살려달라'는 말이에요"라고 답해주셨다.


선생님은 안정감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동시에 무너졌으며, 그러기에 지금은 그 기둥을 하나씩 다시 세우며 회복이 필요한 시간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는 기자라는 업을 시작할 때부터 길어봤자 하루 3-4시간을 자는 것이 습관이었다. 나는 이게 정상이고, 오히려 더 못자는 사람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말을 듣자 무언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생각보다 경과는 좋았다. 약물 치료를 받으며 수면제를 먹고 사람이 충분한 잠을 자니, 시간이 빨리 가고 몸이 회복되며 어느 정도 생활 패턴이 돌아왔다. 그렇게 꾸준히 처방을 받으며. 조금씩 삶의 활기를 되찾았지만 여전히 마음속 문제는 남았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의 의지였다. 삶을 살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자, 앞으로의 좋은 날들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인 의지.


약물과 상담, 명상이나 운동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내게 가장 필요한 일을 해보기로 했다. 얼마 전 본 TED 강좌에서 나온 말에 따르면, 마음의 병은 결국 나 자신과의 전쟁이며,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무기는 나를 지탱하는 사랑하는 이들의 힘이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 중 가장 먼저 들여다봐야 할 것은 나의 얼굴이었다. 사실 트라우마를 겪은 후 2주 간은 사람 사는 꼴로 다닌 적이 없었다. 화장할 정신은 커녕 잘 씻지도 않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그 다음날 회사를 가거나, 거의 아침에 일어나서 손에 집히는 걸 입고 가는 수준이었다. (아 물론 이건 기자 생활할때랑 별반 다르진 않았다;;) 끼니를 챙겨먹지 않아 못나게 앙상해진 몸은 엉망이었고, 피부 또한 말도 안될 만큼 거칠어져 있었다.


나는 다시 제대로된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고, 내 자신을 가꾸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아무 생각없이 나가 쇼핑도 해보고, 평소에 입어보지 않았던 스타일도 도전해봤다. SNS 앱을 다 삭제했고, 업무시간 외에는 카톡조차 아예 보지 않았다. 남의 시선에 상관 없이 어렸을 때부터 내가 사랑했던 나 자신을 다시금 일으키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시간이었다. 긴 고민 끝에 회사 업무를 줄이도록 노력하며 가족들과 고향 친구들과 거의 1년만에 시간을 보냈다. 내려가서도 서울의 친구들과 회사 식구들의 지원은 언제나 든든하게 나를 지켜줬다. 중간 관리직으로서 부서 직원들을 지원해주지 못한 적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팀원들 모두 정말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말을 했다. "우린 팀이잖아요 대리님"이라고. (진짜 맨 처음엔 다들 짜고 이런 말 한거 아니냐고 진지하게 물어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성공적으로 완료된 북펀드와 샘플북을 부산에서 받아보았을 때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부산에 위치한 독립서점에 배포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점장님들. 그리고 그 분들이 말하는 책에 대한 열정을 나누며 내가 왜 글에 가까운 직업을 택했는지 다시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선뜻 더 도와주시겠다는 분들도, 책을 더 구입하고 싶다는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일에 대한 열정도 다시금 느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 포스팅을 시작하려 한다.)


물론, 여전히 우울증이란 놈은 나를 끈질기게 잡아당기고 있다. 매일 식사 시간에 맞춰 먹는 두 알의 우울증 약과 다섯 알의 수면제를 먹고 자도 새벽에 몇번씩이나 악몽으로 인해 깬다. 어떠한 물건들을 봤을 때 갑자기 펑펑 눈물을 터뜨리기도 한다.


여전히 앞으로의 삶이 두렵고, 여느때보다도 바쁜 8월을 보낼 엄두가 사실 안난다. 일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많은 것들이 예정되어 있고 나는 그것을 낯선 타지에서 다시 헤쳐나가야 하는 내 자신의 미래가 두렵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군분투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났던 일을 어찌해보려 애쓰지 않고. 나 자신을 밀어붙이기로 한 세상에 대해 최대한 유감을 표하지 않으며, 세상에 화를 내더라도 저버리진 않으려 노력하기로 했다. 체면 따윈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보기로 했다.


그러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좋은 일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 이후엔 언젠가 누구보다도 더 강해진 나 자신을 발견할 것이고,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을 위해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P.S. 처럼 붙이자면,

이 모든 걸 겪고 나서야 비로소 주위 지인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사람이 죽음이라는 선택을 직면했을 때, 젊고, 예쁘고, 앞길이 창창하고, 어떤 것을 이뤄왔던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그러니 만약 주위에, 당신의 소중한 누군가가 이러한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면, "당신은 가진 게 있잖아"라고 말하는 것 대신 그저 "우리가 있잖아"라는 한마디를 해주는 편이 좋다. 이건 그 벼랑에 매달려본 당사자가 되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확신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