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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

by 정지은 Jean



며칠 전, 한 독자에게 메일을 받았습니다. 내용을 보니 몇일 전 <빅이슈>에 썼던 'Editor's Note'에 대한 답장이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웹상에서 발견하는 리뷰들이 아닌, 직접 전해온 독자의 메시지는 처음이었으니까요. 그 메일은 누군가가 사물함에 넣어놓은 러브레터보단, 엄마가 보내온 “요즘 밥은 먹고 다니니?” 같은 문자의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공감, 염려, 그리고 격려까지. 위로에 있어 최고의 요소들이 담긴 훌륭한 메일 덕분에 다 큰 어른임에도 괜히 짠해져 눈시울을 붉히고야 말았습니다.


사실 요즘 들어 ‘글을 쓰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던 차였습니다. 마감과 마감 사이의 시간에 갇혀 세월을 흘려보내는 저의 일상을 돌아보자 억울함이 치밀었습니다. 구제 불능인 전 남친을 두고 “나 이런 애 만날 동안 왜 아무도 안 말렸냐?”라고 따져 묻는 심리처럼, 글 쓰는 직업을 택한 제 지난날의 정신머리가 궁금했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일종의 자아 성찰이랄까요, 말장난 같지만 오늘은 글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movie_image (10).jpg 영화 <대장 김창수> 스틸


음… 어떤 이유들을 나열해볼까요? 일단, 글쓰기는 민망한 일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글쓰기란 ‘원석을 발굴하고 그것을 오랜 기간에 걸쳐 깎아 보석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 긴 과정에서 글쓴이가 평소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 가치관 및 언어의 습관이 여실히 박히기에, 글을 보여준다는 건 문을 연 채로 샤워를 하는 것만큼이나 제 속이 보여 머쓱합니다.


또 글쓰기는 두려운 일입니다. <빅이슈>와 같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잡지의 기자로서 일하기 시작한 후론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 인권 활동을 했고, 그에 대한 인터뷰의 대상이 되거나 혹은 화자를 자처하며 글을 쓴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사들에는 ‘북한학과는 빨갱이가 아니냐’는 당최 내용과 관련 없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처음 내가 의도치 않은 작은 여지가 얼마만큼이나 부정적인 의견들을 생산해낼 수 있는지 실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쓰기는 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 말은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글은 더합니다. 뱉는 순간 박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모든 증거를 남겨두는 것이기에 더없이 신중해야 할 일입니다. 주위에서 자신이 과거에 했던 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곤욕을 치르는 지인들을 종종 발견할 때마다, 저같이 소심한 사람은 언제든지 자신이 했던 말이 이치와 맞지 않고, 일관되지 않으며, 끝내 그른 방향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시달립니다.


이렇게 이유들을 정리해놓고 보니, 이 글 대신 사직서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덜컥 듭니다. 글을 쓰는 행위로 저 자신에게 이득 되는 일 같은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왜일까요. 저는 여전히 마감을 앞두고 주어진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모니터 앞에 척척한 몰골을 한 채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다, 독자님에게서 받은 그 메일이 스치듯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빅이슈>의 글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글이 가진 힘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닿으면 필시 돌아오는 메아리 같은 것이라면, 글을 쓰는 건 언제나 이유가 있고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되짚어서야, 비로소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명분으로 당분간은 글을 계속 써보려고 합니다. 글이 모두에게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겐 있을 것이고, 세상을 변화시키진 않더라도 그 시작의 발판은 마련해줄 수 있을 테니까요. 적어도 그렇게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메일을 보내주신 소중한 독자님께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You made my day’라는 영어 표현과 함께요. 말 그대로 ‘나의 하루를 만들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너 덕분에 내 하루가 뜻깊어졌다’가 진짜 의미였던 그 표현을요. 하지만 의미를 제대로 알았건, 알지 못했건 저는 똑같이 독자님께 그 표현을 썼을 겁니다. 말 그대로, 그분에게 받은 메일 덕분에 제가 글을 써나갈 또 다른 하루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빅이슈 204호, EDITOR's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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