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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자이길 거부합니다

by 정지은 Jean


가끔 세상이 어떤 시스템에 의해 굴러가는지 의문일 때가 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시각에 나왔는데 제시간에 전철이 오지 않아 지각을 하게 되거나, 중요한 발표를 하기 전날 식중독에 걸리거나, 도망칠 출구조차 없는 일터에서 전 남자 친구를 마주치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그저 타이밍, 순간의 선택이라는 작은 이유로 발생한 사소한 해프닝에도 우리는 억울하고, 분하고,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목 놓아 울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땠을까요.

저는 가까운, 그리고 선한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한때 죽음과 운명은 함께 살아 숨 쉬는 유기체와도 같다고 믿었습니다. 생 안에서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것들은 결국 우리의 뜻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운명이란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그렇게 여겨야만 제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건 그 일은 벌어졌을 테고,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그렇게 슬픔에 빠진 저 자신을 위로하고 앞으로 나아가며 살아왔습니다.



나의 아름다운 박완서 기사 모음 (출처 : 작가정신)


그 시점에 만난 ‘나의 아름다운 박완서’ 코너는 하나의 터닝 포인트와도 같았습니다. <멜랑콜리 해피엔딩>이라는 작품으로 박완서 선생님을 추모한 작가님들을 만나며 인터뷰를 진행했고, 초면인 작가님들과 죽음 그리고 운명에 대해 논했습니다. 윤고은 작가님과는 표면으로 올라오지 않은 상처를 겪은 사람들에 대해, 조해진 작가님과는 살아남은 사람이 살아나가게 만드는 힘에 대해, 그리고 손보미 작가님과는 정해진 운명일지라도 능동적으로 헤쳐나가는 자유의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터뷰의 녹취를 정리하며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켜켜이 쌓여온 과거에 찔려 넘실대는 제 목소리에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습니다. 저 같은 최악의 기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청자여야 마땅한 사람이 화자가 되어 저의 사적인 이야기를 작가님들과 나눈 셈이니까요. 하지만 부족한 저의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작가님들은 다들 따듯한 말을 건네주셨습니다.


그에 담겼던 위로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작가님들과의 인터뷰를 거치며 한 가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운명론자이길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불합리하니까. 선택의 의지 없이 살아가는 인간이란 누군가를 죽이고 살리는 시도조차 못할, 그저 별것 아닌 존재가 될 테니까요. 그러기에 ‘내가 무언가를 했더라면 그 결과는 바뀌었겠지’라는 죄책감을 안고서라도 우리의 운명이 정해져 있지 않길 바라기로 했습니다.

작가님들께 잠시 맡아놓았던 그 따스한 말을 다시 돌려드리려 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을 말하고자 글을 쓰는 작가님들, 그로 인해 불합리한 생일지라도 열심히 살아나가는 독자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생동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작가님들 또한 그러한 방식의 삶에서 자유의지로 선택한 다양한 행복을 맞이하기를. <빅이슈>에 입사하고, 문학에 관심을 갖고, 훌륭한 출판사와 함께하기로 결심한 의지로 비롯된 우리의 만남처럼, 언젠가 무수한 선택의 끝에서 웃는 얼굴로 마주치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빅이슈 205호, EDITOR's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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