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생활에서 마주한 마음의 문제들
자취생활 8년 째, 그리고 영국 생활은 3년이 넘어간다. 맨 처음 내가 외국에서 살기로 결심했던 때, 타지의 낯선 매력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날 항상 설레이고 들뜨게 했다. 하지만 직접 마주한 외국 생활은 내 상상과는 사뭇 달랐다. 여행하는 것과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였고 마냥 반짝거릴것만 같았던 내 일상도 점점 그 빛을 잃어가던 순간이 존재했기 때문이였다.
나는 먹고 살기 하루 하루 바쁘다는 핑계로 내 마음 한 구석에 켜켜히 쌓여가는 마음의 문제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가, 몇 달 전 한국에 방문해서 내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졌을 때서야 내게 일어난 몇 가지 변화를 깨닫게 되었다.
보안에 대한 집착
사실 나는 영국에 살면서 집 계약 사기를 이때까지 두 번이나 당했다. 사실 이렇게 당하는 일도 참 쉽지 않은 일인데 내가 봐도 정말 난 사람 운이 지독하게 없었다. 설명을 하자면, 세입자가 집주인 행세를 했고 나중에 이 사실이 들키자 플랫 메이트들에게 받았던 보증금을 들고 폴란드(자기 나라)로 튀었다. 문제는 튀기 전에 내 방의 가구들을 빼돌리려 내 방문을 강제로 땄는데 그 광경을 마침 집으로 돌아오던 내가 그대로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따져 묻는 것도 잠시, 나 혼자 있는 상태에서 키가 190이 다 되는 건장한 남성과 싸워선 위험하겠단 판단이 들었던 나는 경찰과 (같은 사기를 당한) 플랫메이트들에게 연락을 하러 일단 집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그 사이, 긴 여행을 떠난다는 문자만 달랑 남긴 채 사라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경찰서에 문의했지만 딱히 이 사태를 해결할 방안이 없다는 말만 들어야만 했고. 그 사건 뒤론 아무리 잠금 장치가 있어도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날 당장 도와줄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때부터 보안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때도 사비를 들여 추가 잠금장치를 달거나 외출할 때 잠금장치를 두번 세번 확인하는 것은 물론, 방 계약을 할 때도 과도할 정도로 신중하게 행동하는 바람에 집주인이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정말 다행인건, 이런 불안함은 한국에 돌아갔을 때 말끔히 사라졌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혼자 지낼 때는 느끼지 못했던 안도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지구 반대편에 나 혼자가 아니야, 무슨 일이 생겨도 이젠 도와줄 사람이 바로 옆에 있어.’ 같은 생각. 자기 전에 익숙한 누군가의 소리가 내 반경에 존재한다는 것 만으로도 내겐 큰 위안이자 보호막이 되어줬다.
간간히, 하지만 깊게 찾아오는 외로움
문득, 정말 외로워질 때가 있다. 밤 열두시에 자취방 앞 편의점에서 먹는 불닭볶음면과 멜론 우유의 기막힌 콜라보, 고향집 베란다의 빨래에서 풍겨오는 바람냄새, 그리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꼼장어에 소주 한잔 들이킬 때 올라오는 그 취기 같은 것들이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다. 영국과 한국 사이의 시차는 9시간이다. 섬머타임일 때도 8시간. 결국 내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고 내가 자면 사람들은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 나의 하루, 그리고 상대방의 하루에 특별한 일이 있었어도 같은 시간대의 같은 감정을 공유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연락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내가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해서 상대방이 서운함을 토로할 때도, 반대로 나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내게 서운함을 느낄 때도 많았다. 항상 모이곤 했던 멤버들끼리 나 없는 모임을 가지는 것이 점점 일상이 되고, 처음엔 명목상으로라도 걸어주던 영상통화들도 조금씩 뜸해지는 걸 지켜보며 타지에서 인연을 챙기기란 쉽지 않단 사실을 실감했다.
얼마 전엔 갑자기 찾아온 공허함에 잠이 오지 않아 술기운이라도 빌려 보려 와인을 한 병 땄다. 예쁜 달이 떴길래 창 밖을 들여다보던 나는 문득 한국에 있었을 때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십사시간 편의점과 술집에서 비치는 불빛들이 반짝이던 옛날 자취방에서 보이던 풍경과 달리, 이십사시간은 커녕 저녁 늦게 일하는 이들을 찾아보기 힘든 유럽은 창 밖을 내다봐도 불이 꺼진 고요한 가정집들의 풍경만 있을 뿐이었다.
이런 풍경들을 바라보며 가끔 내가 마치 좀비 아포칼립스에 혼자 남겨진 것 같단 실없는 상상도 해보지만 이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러 내 가족 친구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와서 이러고 있나’ 싶어 내 자신이 한심해진다. 이럴 때 보면 타지에서의 외로움이란 그림자처럼 내게서 절대 떼어낼 수가 없는 존재인 것 같다.
청소에 대한 압박
영국은 대부분이 방을 제외한 부엌이나 화장실을 공유하는 쉐어 ‘플랫’의 형식이다. 하지만 내 경우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자취할 땐 있지도 않던 청결에 대한 압박이 모든 시설을 공유하는 쉐어 하우스에서 시작되었다.
교환학생 시절에는 하도 자주 열리는 파티 덕분에, 그리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전혀 청소를 하지 않는 플랫메이트들 덕분인지 항상 난장판인 부엌과 화장실을 마주해야 했다. 간혹 남이 내 음식을 먹거나 내 물건에 손을 대는 일이 잦았고 술집 화장실을 능가할 정도의 더러운 화장실, 폭풍이 휩쓴 듯한 부엌의 상태, 그리고 물곰팡이는 기본에 온 구석에 세제까지 흩뿌려져있는 세탁실을 지켜보며 ‘내가 청소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하겠구나’란 깨달음을 얻었고 그렇게 나의 ‘나홀로 집에’서 청소 라이프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학생이 아닌 직장인이 된 후 나는 한가지 해결책을 찾았다. 바로 우리나라 원룸 형식의 ‘스튜디오’ 플랫에 살기로 결심하는 것이었다. 이 결정을 내리기 전 제일 걱정했던 것은 돈 문제였다. 런던의 집값은 워낙 비싸기로 유명한데다 일반 쉐어 플랫보다 비싼 월세를 내야하는 스튜디오 플랫에 입주하려니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남의 몫 까지 떠맡아야 하는 청소에 줄곧 스트레스를 받아온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투자 쯤이야 거뜬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지금은 내 생활비의 반을 차지하는 스튜디오 플랫에 입주하여 청소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다. 내가 과연 청소와의 전쟁에서 이긴건지, 진건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의사소통에서 오는 답답함
어쩌면 내 일상에서 제일 사소하지만 자주 느끼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단순한 의사소통의 문제는 극복하기 쉽다. 예로 들면 회사에서 일을 할 때나 계약을 할 때 등의 상황에서 사용되는 어휘나 속어 같은 것들을 알아듣지 못할 때의 경우다. 사실 이건 내가 영어를 좀 더 공부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넘을 수 있는 벽이니 상관은 없지만, 내가 더 답답한 건 단순함을 넘어 감성이나 의미를 전하는 의사소통의 경우다.
외국 사람들과 아무리 친구가 되더라도 서로의 진심과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한번은 목욕탕에서 나와서 마시는 바나나우유 만큼 상쾌한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전혀 이해를 못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외국인 친구를 보며 '아, 이해 못하는 거구나...' 라는 생각에 괜히 울적했다. 평생을 살아온 국가와 문화의 배경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한번씩 너무나도 견고하고 촘촘하게 짜여진 벽이 그들과 나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내가 좋아했던 빅뱅을 이야기하면 미드 ‘빅뱅이론’ 이야긴줄 알고 ‘나도 쉘든 좋아해~ 너무 귀엽지’ 라는 친구들을 보면서 '빅뱅은 케이팝 그룹이야' 라는 설명과 함께 빅뱅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것도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타지생활을 하다보니 별 거 아닌 것 같은 문제들이 생각 외로 크게 마음에 자리잡는다. 아무래도 혼자 매일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다양한 변수들로 비롯된 기쁨과 참담함을 혼자 느끼다 보니 평소의 내 모습보다 감정이 증폭되는 건지도, '자기 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 남들과 함께 사는 것을 당연하게 견뎌야 하지 않는 것, 내 모국어로 의사소통의 제한 없이 마음껏 내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것' 등... 한국에 있었을 땐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내 생활에 더 존재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아마 나는 타지생활을 계속 할 것이다. 그게 외국이 되었든, 한국의 다른 도시가 되었든 내게 낯선 타지생활은 떼놓을 수 없는 숙명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깨달은 만큼 앞으로는 내 자신을 자주 돌아보려 한다. 물론 낯설은 환경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며 한 층 더 넓은 세계관과 단단한 정신을 얻는 것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내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은 아닌지, 강한 것이 아니라 약한 부분을 감추려는 건 아닌지 내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 또한 가져야 진심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