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IG ISSUE> no. 186
초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부터 6년제 대학생으로 방황하던 때의 친척들까지. 꿈이 무엇이냐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묻던 그들에게 “기자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 대신 “좋은 일을 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대답을 내놓곤 했다. 다소 퉁명스럽게 들렸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의 진심이 담긴 대답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길 원했던 나의 인생에서 ‘내가 좋은 사람인가?’라는 물음은 평생에 걸쳐 나를 좇던 집요한 의심이었다. 거절하기 힘든 부탁을 마주한 사소한 순간부터, 다른 이에게 내 행복의 지분을 나눠야 할지 고민했던 인생의 중대한 기로까지. 좋은 사람이라면 할 법한 선택만을 따랐고, 그러한 선택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성장시킨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빅이슈》에서 체험 활동을 시작한 출근 첫날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빅돔’ 봉사자로 판매원의 목소리에 힘을 싣기 위해 거리에 섰고, 어떤 날은 새로운 판매원을 모집하러 무료 급식소 혹은 작은 쪽방촌의 골목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처음으로 들여다본 그들의 세상은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나의 세상에선 새로운 계절에 입을 옷이 충분하지 않다고 불평했지만, 그들의 세상은 의식주 모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나의 세상에선 퇴근해도 날 반길 이 없는 자취 생활을 고독이라 말했지만, 그들의 세상은 고독이란 감정이 들어올 여유조차 없는 단 한 평짜리 쪽방을 일상이라 말했다. 그렇게 그들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그들과 나는 같은 공간 안에서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곳은 나의 네모나고 각진 세상이 만들어낸 사각지대였다.
그래서 더욱더 그 사각지대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와 함께 《빅이슈》를 판매하는 선생님들을 지켜보며 큰 감동을 느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의 훈수나 경멸 어린 시선, 이어폰을 끼고 다니는 사람들의 투명 인간 취급, 반가운 인사를 외면한 채 스쳐 지나가는 이들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잔잔한 호수와 같았다. 자신에게 던져진 부정적인 돌들을 고운 모래알로 깎아내는 법을 터득한 도인처럼 부정적 반응을 감내하고 더 큰 소리로 《빅이슈》를 외쳤다. 그들은 그들을 향해 있던 편견처럼 인생의 어느 한마디에서 삶이 멈춰버린 사람, 그 삶을 일으킬 의지조차 없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들을 보며 문득 영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던 시절 마주친 한 판매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5파운드 지폐를 건네곤 “Please keep the change. Have a nice day! (잔돈은 가지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얘기하며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그는 환한 미소와 함께 잔돈을 주며 말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조금의 돈이 아닌, 조금의 믿음이 필요할 뿐이에요.”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당신이 읽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 《빅이슈》의 오랜 독자로서 수년 동안 들었던 말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일원이 된 지금에서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내 세상만큼은 분명히 변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을 하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개인적 성취는 이제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그 대신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한글을 배운 적이 없어 읽지는 못하지만 "모든 이의 마음에 전해지는 문장을 써달라"고 부탁하셨던 한 판매원 선생님의 소중한 마음을 잊지 않으며, 무거운 책임감에서 오는 부담마저도 기분 좋게 안으며 훌륭한 글을 써보고 싶다. 우리의 세상이, 지금 이 시간에도 사각지대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세상이,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의 세상이 바뀔 때까지 말이다.
*빅이슈 186호 EDITOR's note 에 올라온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음, 요즘 눈코뜰 새 없이 몇 달이 후다닥 지나갔고 벌써 연말이다 보니 꿈과 목표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해엔 내가 어떤 일들을 이뤘나, 어제보단 성장한 내가 되었나 따위의. 날씨가 쌀쌀할 때 하게 되는, 다소 진부하지만 지루하진 않은 생각들이요.
사실 이번 해는 한국보다 영국에 있었던 시간이 더 길었고, 그런 의미에서 더욱 바쁘게 살았던 것 같아요. 타지에서의 매일은 항상 도전이자 목표였기에, 뒤쳐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말이에요. 그렇게 매일 부지런히 꾸었던 꿈 들 중의 하나가 한국에 돌아가서 빅이슈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꿈을 이루고나서 어느 순간 깨달아버렸어요. 이젠 제게 남은 꿈이 없다는 걸요. 내가 쓴 글이 상을 받는 것, 내가 원하는 대학을 들어가는 것,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산다는 것, 음... 그 뒤는 무엇이 될까. 몇 날 밤을 생각에 잠겨 뒤척였어요. 나는 이제 어딘가에 안주하고 성장하지 않는 인간이 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과 함께요. 그러던 중 일을 시작한 지 삼개월이 된 이 시점에서 제가 처음 썼던 이 글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좋은 글을 써보자는 초심이 담겼던 글이요. 제가 생각했던 모든 것들의 해답이 되어주더라구요.
음, 2019년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 해도 이번 해와 같을 거에요. 여느때와 다름없이 일에 치이다가도 다시 그 일에 간절해지기도 할 것이고, 물리적인 거리만큼 먼 사이의 사람들을 잃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득 보석같은 인연을 얻기도 하며 살아가겠죠. 결과가 어찌되었든 '역시 이번에도 그렇게 잘 해내진 못했구나' 라는 생각을 분명 하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 다른 점이 생기고 싶다면 이거네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보는것. 그래요! 저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게 제가 소리내어 외치고 싶은 저의 새로운 꿈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직업적으로도 열심히 글을 쓰고, 브런치 또한 앞으론 자주 업데이트 할 예정이에요. 항상 피곤하다 시간없다 핑계 대면서 자주 올리진 않았지만, 그건 정말 말 그대로 핑계일 뿐이였거든요. 그래서 좀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홍보 아닌, 홍보지만!) 이번 빅이슈 192호에서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를 표지로 하여 제 혼을 갈아 담은 기사들이 올라와 있으니 지나가다가 시선이 닿으면 꼭 한번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다들 따듯한 연말 되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