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너에게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너에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라고.
예전의 넌 그런 친구였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시도 때도 없이 재잘거리던 친구. 요즘 누구와 썸을 타는지, 자기 전에는 어떤 음악이 좋은지, 어제 산 옷을 왜 환불했는지, 갑자기 난 뾰루지 때문에 얼마나 짜증나는지 등의 사소하지만 그 땐 참 중요했던 이야기들을 함께 밤새라도 떠들 수 있는 친구였다.
나이가 들고, 어느샌가 자신의 시간을 다른 곳에 할애하면서 우리는 점점 멀어졌다. 아니, 멀어졌다기 보단 각자의 자리에서 머무르며 서로에게 다가가기를 미뤄왔다.
그렇게 우린 이제 더이상 사소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고 난 그저 그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재잘거리던 옛날 너의 모습은 철이 없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고 지금의 과묵하고 인내하는 모습은 어른스러워진 너의 모습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너에게서 오랜만에 닿은 전화에, 내가 생각들이 단지 나의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단정지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제 어른이니까 사소한 이야기 정도는 전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한동안 너가 어떤 문제들에 힘들어하는지 한번도 이해하려, 아니 알아보려 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른스러움’이라는 속을 파고들어보니 내 마음은 어른의 모습과는 다른, 어린 아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어른이 되면 더 강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길 줄 알았지만 언젠가부터 난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더 약하고 주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요즘의 나는 내 문제를 담을 그릇 조차 부족하단 생각에 급급했다. 너에게 ‘요즘 무슨 일 있니?’ 이라고 물어버리면 ‘응. 나 이런 힘든일이 있어.’라는 대답과 함께 그 무게를 내게 지어줄 것만 같아서, 내 것도 아닌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이 나이 쯤 되면 다들 자기 일이 있으니까, 이렇게 차차 멀어지며 사는 게 당연한거지.' 거라고 이런 내 자신을 합리화했다. 결국 너가 어른스러운 친구였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그저 나쁜 친구였던 것이다.
오랜만에 이야기한 너는 요즘 상당히 지쳐있는 것 같았다. 널 이해하지 못하는, 때론 너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사회에 지쳐있는 것 같았다.
나는 너의 고민에 더 이상 예전처럼 패기있는 조언도 직접적인 개입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너에게 과거의 나를 대입해봤자 현재의 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일테니, 그리고 인생이란 건 소수의 의지만으론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무턱대고 너의 이해관계들을 비집고 들어갈 수도 없다. 드라마 미생의 어느 한 장면에 나왔던 말 처럼, 어쨌거나 시련은 셀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 때까지 나는 친구라면 해야하는 일이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하고 쓸만한 조언을 해주거나, 혹은 너의 문제를 당장 해결해줄 정도의 거창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연락을 준 네게서 얻은 답은 그런 것들이 아닌, 너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너의 곁에 묵묵히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러가지 의미로 네게 오랜만에 닿은 연락이 고맙다. 내가 너의 친구임을 잊어가던 순간, 그 마저도 넌 네가 나의 친구임을 잊지 않아줘서. 자신의 기분보다 내 잠깐의 불편함을 헤아려 미뤄왔던 연락이지만 끝내 용기 내어 내게 기대줘서 말이다.
그러니 이젠 나의 바람들을 너에게 확실히 전하고 싶다. 내가 너의 주위에 항상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러니 이젠 힘든 일이 있으면 내가 불편할거란 걱정 따위 없이 기대줬으면 좋겠다는 바람. 내가 친구로써 해줄 수 있는 것이 고작 이 정도지만 너가 앞으로의 일들에 조금은 덜 힘들 수 있길, 그래서 내일로 다시 걸어나갈 힘이 조금이나마 생기길 진심으로 응원하는 나의 바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