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싸운 날은 찝찝하다.

제가 엄마 딸인 걸 어쩌겠어요, 엄마.

by 정지은 Jean




엄마랑 또 싸웠다. 언제나 그렇듯, 발단은 항상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렇게 커질 일도 아니였는데 작은 불씨로 시작된 말다툼이 결국 산불처럼 번져나갔고. 엄마에게 가시가 무성한 말들을 퍼부어버리면서 대화는 일단락됐다. 사실은 전혀, 내가 하고 싶지 않았던 말들인데도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엄마랑 싸운 날의 기분은 참 찝찝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동시에 미워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뒤숭숭한 일이다. 사실 화는 진작에 풀렸는데, 어떻게 티를 내야 할지 몰라서 하루종일 입을 앙다물고 버텼다. 화 안나는데 엄청 화난척, 이미 다 풀렸는데 평생 안풀릴것 같은 척.



겨울, 2017


나는 스무살때부터 바로 타지 생활을 시작해서인지 항상 가족들의 품을 그리워했다. 단순히 '혼자'라는 상태가 안겨줬던 외로움도 있었겠지만, 주위에 어른이 없는 채로 어른이 되어야 했던 환경이 날 더 외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내가 사랑했던 어른이, 날 바른 길로 이끌어 줄 어른들이, 가끔은 나 대신 책임을 져줄 어른들이 간절했다.


물론 더 단순한 이유로 가족을 그리워 했던 적도 많았다. 자취방 앞에 파는 지긋지긋한 참치마요덮밥 대신 집밥이 미치도록 먹고 싶다던가, 가끔은 엄마 냄새가 배인 빨래들이 그리울 때라던가, 여자 혼자 자취하면서 느낄만한 두려움 없이 내 방에서 깊은 잠을 자고 싶을 때라던가.


이렇게 가족들을 보고싶어 하는 주제에, 막상 가족들이랑 만나면 나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모순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멀리 있을 땐 익숙함의 소중함을 잊어서 죄송하다느니 울고불고 해놓곤, 다시 같이 지내다 보면 항상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주제로 한 공익광고라도 보는 날이면,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엄마아빠한테 잘해야지 다짐해놓곤 뒤돌아서면 바로 까먹어 버리는 것 처럼.


이번에도 그랬다. 잘 해보려고 했는데, 난 또 잘 하지 못했다. 사과할 타이밍 조차 제대로 못 잡다 그냥 내일 아침에 아무 일도 없는 듯 아침밥을 먹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한 것도 잠시, 야속하게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엄마에게 상처를 준 죄책감 때문이였을까. 그래, 사실 난 밤을 꼴딱 새도 할말이 없었다. 난 날 낳아준 사람한테 그런 말이나 하는 못된 딸이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꽤 시간이 지나 새벽 2-3시쯤 되었을까, 엄마가 갑자기 내 침대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 : 아깐 엄청 일찍 잘 것처럼 하더니 왜 아직까지 안자고 있노, 무슨 고민 있나?

나 : 아뇨 엄마. 그냥 잠이 안와서요... 엄마 사실은 있잖아요. 어릴 때는 엄마가 봤을 때 학업이 문제라던가 친구사이가 문제라던가, 정말 단편적으로 딱 보이니까. 그때의 나는 엄마한테 더 이해하기 쉬운 딸이였을지도, 더 나은 딸이였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서...

이젠 나도 나이가 들고 고민도 여러 종류가 되버리니까. 커리어 또는 사람관계라던가, 연애고민이라던가...정말 많은 종류의 고민들이 있어서 어릴때 처럼 엄마한테 막 이야기를 못하겠더라구요. 엄마 앞에선 더 어린애고 싶은데. 죄송해요 엄마. 제가 이제 너무 복잡해져서 죄송해요 엄마.

엄마 : 그건 니 잘못이 아이지. 그래도 니가 고향에 내려와 있으니까 이제야 딸이 있는 것 같고 좋네. 나는 좋다. 그래도 니가 내 옆에 있어서.



엄마 귀신이제? 니가 숨겨도 다 안다니까.

어린 시절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였다. 성적표를 숨긴 날이라던가, 학원에 거짓말하고 가지 않는 날이라던가, 아프다고 선생님한테 거짓말 하고 조퇴한 날이라던가, 공부할 때 몰래 읽으려던 만화책을 숨긴 장소라던가. (쓰다 보니 내가 정말 공부를 이렇게나 싫어했나 싶다) 엄마는 내 눈빛과 표정만 보고도 다 알아채는 인간 탐지기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는 고민의 갈래들을 시시콜콜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사이의 공감대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엄마는 옛날이 그리웠나보다. 내가 대학생활을 다른 도시에서 하는 동안, 졸업하고 나서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리웠나 보다. 심지어 나랑 이렇게 싸우는 순간 조차도. 사실 내가 귀를 담아 듣지 않았을 뿐, 엄마는 딸을 낳았는데 딸이 없는 것 같다고 때때로 내게 말하곤 했었다. 그러고보면 난 참 이기적인 사람이였다. 타지생활을 하는 내가, 항상 가족과 떨어져 사는 내가 제일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틀렸던 것이다. 제일 외로웠던 건 내가 아닌, 엄마였다.



그래. 니가 내 딸인걸 어쩌겠노.

엄마는 항상 말했다. “한번씩 내가 낳은 내 딸 맞나 싶을 정도로 속 썩여도, 그래도 니가 내 딸인걸 어쩌겠노.” 어쩌면 정말 맞는 말이다. 서로에게 어떤 상처를 주던, 우리의 관계가 어떤 형태로 지속되든, 엄마와 딸은 아마도 영원히 엄마와 딸일 것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단정지었던 것 같다. 이토록 오래 함께한 엄마와 딸 사이니, 서로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줄 것이라고. 하지만 엄마와 딸 사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마음은 입 밖으로 내뱉어야, 그만한 용기라는 힘이 실어져야 상대방에게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짐했다. 앞으로는 독심술사라도 되는 것 마냥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관계를 처음 시작하는 두명의 사람처럼, 서로와 더 대화하며, 더 알아가며, 더 이해하자고. 어느 인연보다 더 오래 볼 나의 엄마를 위해서 말이다. 결국, 나도 엄마가 내 엄마인 것을 어쩔 수 없는, 그만큼 엄마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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