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나간 연애는 하찮아질까

연인이었던 인연들의 가소로움

by 정지은 Jean
야, 걔 전남친 동아리라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대학시절, 한동안 전남친이 이걸 농담이랍시고 술자리에서 남자 동기들에게 지껄이고 다닌다는 것을 들었던 적이 있다.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연대 중에도 이렇게 하찮은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전생에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이번 생에서 대학교 C.C(캠퍼스 커플)를 한다지만 이런 업보까지 내가 갚아야 할 의무가 있나 싶어 괜히 괘씸해졌다. 왜 내가 지나간 연애에 빚을 진 빚쟁이처럼 숨어 다녀야 하는 걸까. 그들과 연애를 한 것이 마치 저잣거리에 오르락내리락거려도 마땅한 대역죄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죄를 지었다면 단 하나는 분명하다. 이런 한심한 것들을 한심하다 눈치채지 못한 죄. 헤어질 땐 질질 짜며 울고 불고 죽을 것처럼 하더니 그 기억마저도 아깝게 만드는 인물들에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어찌 이토록, 그 하찮은 존재를 한 때 사랑했던 나까지 하찮게 만들어 버릴까.




브런치를 시작하고 쓴 첫 연애 칼럼의 제목은 '구남친의 자니?라는 문자'였다. 운 좋게(?) 그 글은 추석과 겹친 황금연휴 카카오톡 메인에 걸리는 영광을 누렸다. 조회수가 몇만을 넘겼을 즈음, 제발 이 글이 구전동화처럼 널리 널리 퍼져 내 문제의 구남친들에게 닿길 바랐다. 그만큼 그들이 건넨 갈 길 잃은 연락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어쩜 미화가 대단하신지, 놀이공원에서 헤어진 친구는 놀이공원이 그립지 않냐고 묻고 바람을 폈던 친구는 결국 너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최악의 순간을 최고의 추억으로 만드는 것에 그들은 얼마나 많은 합리화를 거쳤을까. 가끔은 그런 사고방식을 빌리고만 싶다. 그 정도 합리화 스킬이 존재한다면 세상사가 온통 장밋빛일 테니.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내 반응은 너무나도 한결같다. 무시, 혹은 무대응. 지나가고 깨진 것들을 건져 올려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이다. 한번 퇴색된 것들은 아무리 색을 덧입혀도 검정에 가까워질 뿐이다.


이러한 인연들을 보고, 한심해하고의 반복을 느끼다 보니 점차 비웃듯 이야기하면서도 마음속으론 씁쓸함이 감돌았다. 왜 지나간 연애는 다 이런 식으로 재수 없게 끝날까.


분명 주위 지인들 중엔 지나간 연애를 곱씹으며 "그땐 정말 좋았어"라는 사람도 있는데. 왜 나의 상대들은 다 '쓰레기', 'X새끼' 아니면 그냥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누구. 정도로만 남아있는 걸까. 이건 내 탓일까 아니면 그들의 탓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누군가를 향한 탓과 원망에 대한 생각을 좀처럼 놓지 못했다. 과거의 어떠한 존재, 그를 선택한 나의 결정. 모든 요소들을 다 미워하고 혐오했다. 하지만 사실 난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현재 내 자신을 가장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구남친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이때까지 만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같았으며 "왜 그런 애들을 만났을까?"라는 질문은 결국 나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선택, 그런 실수를 한 나에게 말이다.


그러기에 이제부터라도 방향을 돌려보기로 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하는 방향으로. 그 첫번째는 남은 생에서는 나쁜 기억들을 털고 가자는 결심이다.


물론, 안 좋은 기억까지 추억으로 포장하고, 하찮은 것을 사랑하며 나 자신 또한 하찮게 만들자는 다짐은 아니다. 나쁜 것은 나쁜 것. 동조하거나 공감하거나 그런 행위에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서사를 부여해줄 필요는 없다.


나의 다짐은 그 나쁜 것들을 돌아보지 말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과거의 잔재들에 발목 잡히지 말고, 과거의 선택으로 인해 나 자신을 폄하하지 말고, 그저 벌어진 일은 벌어진 대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오늘도, 이 하찮디 하찮은 사람들에게 외칠 것이다. 욕이나, 후회의 말도 아닌. 이전보다도 더 씩씩해진 목소리로.


네, 다음!


그러면 그 뒤는 모두 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