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적인' 존재

모든 것이 영원하길 바라는 진심은 욕심일까

by 정지은 Jean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결국 이기적이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닌가요?"


왜였을까. 이상하게도 그 말에 위로를 받았다.


언젠가부터 상대방에게 호감의 조짐이 보이면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던지는 습관이 생겼다. 그에 어떤 속내가 담겼든 이때까지의 상대들, 그리고 나 자신 또한 그 말을 믿는 듯했다.


사랑에 있어서 이기적인 사람. 항상 상대방의 마음이 자신의 크기보다 크길 바라는 사람. 그에 비해 가질 아픔은 작길 바라는 사람. 먼저 상대방을 떠나고 잘 사는 사람. 그 와중에도 상대방은 여전히 힘들어하길 바라는 사람.


진실은 고작, 버림받을 것이 무서워 먼저 버리는 쪽을 택하는 사람일 뿐이었음에도 말이다.



영화 <호박과 마요네즈> 스틸


모든 것이 영원하길 바라는 내 진심이 욕심으로 변하는 꼴을 지켜보며 상처 받는 쪽 보단 차라리 상처 주는 쪽이 쉬울 거라 생각했다. 모든 연애가 이런 모양일 거면 나라는 존재에 온 힘을 다하는 '기적 같은 존재'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 편이 '이기적인 존재'가 되는 게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넌 뭐가 그렇게 쉽니?


쉽다는 것이 말 그대로 쉬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애초에 이 세상에 쉬운 것 따윈 없다. 그중에서도 사람의 마음은 어쩔 수 없게도 마음인지라, 가진 자가 누구든 회수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아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다가오는 마음에 온갖 가시를 내세웠고 안전거리를 유지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만큼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마음이 없는데도, 대체할 수 없는 누군가의 존재에 옥죄이지 않고 추락한 일상에서 허우적대기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렇게 마음을 아끼기만 한 내 앞에 나타난 그는 참 묘한 사람이었다. 그저 편하게 통화하며 서로의 하루를 재잘거리고 싶은 사람. 화나는 날엔 함께 시원하게 욕을 하며 아이스크림을 나눠먹고 싶은 사람. 혼자 몸이 아픈 날 초췌한 모습일지라도 함께 있고 싶은 사람. 더 이상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따위의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냥 편하게, 마음 놓고 있고 싶은 사람.


그의 번호가 이미 눌러진 키패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깨달았다.


뭘 난 또 이렇게 두려워하는 걸까.

보고 싶으면, 그냥 보면 되는 건데.


영화 <호박과 마요네즈> 스틸


함께하고 싶은 인연을 만나는 건 삶에 있어 흔치 않은 기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끔 선택의 무게에 겁을 먹거나 자신을 오롯이 던져놓는 용기가 없어 그 기적을 못 본 척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사랑 자체가 누군가에게 온전히 주고 받는 마음이라면 진정한 내 모습을 보이는 것을 두려워해서야 어떻게 사랑을 할까. 서로를 마주하지 않으면 결국 연애는 불가한 것인데도.


얼마 전 내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힌 한 작가님의 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계속 다른 사람을 상처준다면, 이 세상은 상처입은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밖에 되지 않을거라고.


상처라는 것이 누군가에게서 우월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었다. 진실은 너무나 간단했던 것이다. 만약 상처를 주고싶지 않다면 상처를 주지 않으면 그만이고, 그 대상은 내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여야 한다고.


"한쪽이 소진될 때까지 내버려두는 못난 사람이 되지 말자."


매일 되뇌였던 말임에도 발전이 없던 문장이, 최근 들어 힘을 얻고 있다. 나는 이 감정의 반동을 이용해 조만간 망설이기만 했던 그의 번호를 누를 것이다. 그 또한 여전히 "보고 싶었어"라고 대답하길 마냥 고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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