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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ean May 27. 2022

부부들, 왜 경찰서 앞이 아닌 카메라 앞에 섰는가

티빙 오리지널 예능 '결혼과 이혼 사이'의 부부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라는데 방송에서 쏟아져 나오는 건 욕설이 대부분이다. 일반인 부부들의 성난 얼굴, 서로를 향한 폭언, 아이의 울음소리가 교차되는 영상은 자극적이기만 하다. 지난 20일 티빙 오리지널 예능으로 첫 공개된 '결혼과 이혼 사이'의 이야기다.


'HAPPY AND or HAPPY END 서로의 행복을 위한 선택은 무엇일까?'라는 카피와 함께 이혼한 부부의 이야기와 고민을 함께 풀어보자는 취지로 야심 차게 예고를 내보낸 방송은 본격적인 비혼 장려 프로그램이라는 예비 시청자들의 평가 아래 베일을 벗었다. 그만큼 예고편에서부터 부부간의 불화가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의미다. 


결혼과 이혼 사이 티저 ⓒ 티빙 제공


결과물은 예측된 것이었다. 예고편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출연자 중에는 결혼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 같았던 인기 아이돌 그룹 티아라의 전 멤버 아름이 포함돼 더욱 자극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이슈몰이를 했다. 


리얼리티 예능이라고는 하지만 예능은 빠지고 리얼리티만 남았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일반인 출연자들은 저마다의 부부간의 불화를 안고 있으며 그것을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결혼과 이혼 사이'를 찾았다. 하지만 그중에는 단순히 오은영 박사의 금쪽 상담소에 나가도 모자랄, 경찰서에 당장 증거 영상을 가지고 찾아가도 모자랄 배우자를 향한 폭력의 징조들이 담겨 있다.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이미 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는 남편의 욕설과 폭언 영상, 가스라이팅을 하며 아내를 노예 부리듯 하는 남편, 자격지심에 모든 화살을 배우자에게 돌리고 남자로서의 자존감 하락을 남 탓을 하며 싸움을 조장하는 참가자까지. 그러한 부부의 불화 속에서 그들이 사랑으로 낳았다고 하는 아이는 앞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다. 카메라는 그저 그들을 말리지 않고 아이가 인격 형성이 이뤄지는 유년 시절에 겪는 끔찍한 경험을 담아낼 뿐이다.


폭언을 듣고 마음의 상처를 안은 아내가 비빔밥을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울음과 함께 삼키는 장면이 나오고 또 다른 참가자는 남편을 벌레를 보는 듯한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들 사이에 사랑은 없고 그저 증오만이 가득하다. 이미 그들은 선을 넘고 바닥을 봐도 제대로 본 부부들이다. 희망이라는 것은 없다.


하지만 왜 그들이 재결합을 논하는 방송에 나온 걸까. 서로를 향해 끝없이 "불편하다", "싫다", "결혼하지 않았어야 했다", "네가 잘못이다"를 외치는 사이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더욱 극대화될 뿐이다. 



'결혼과 이혼 사이'의 핵심 문제점은 '이 부부가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닌, 그저 엔터테인먼트 예능으로서 '과연 이들이 이혼을 할 것인가?'에 대해 결과를 예측하게 만들고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것에만 목적을 둔다는 점이다.


이는 패널의 기능성에서도 알 수 있다. 작사가, 가수, 이혼 경험이 있는 방송인으로 이뤄진 그들은 이혼이라는 위기를 맞은 부부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주지 못한다. 고작 어떠한 상황이 주어진 영상을 지켜보고 너무도 폭력적이고 선을 넘은 모습에 혼란스러워할 뿐이다. 이혼을 겪은 방송인 김구라와 그의 아들 그리 또한 자신의 아픈 경험을 꺼낼 뿐 그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육아, 관계 전문가 오은영 선생님이 붙은 것도 아니다. 



더불어 2화에서 예고된 이야기는 더욱 가관이다. 부부에게 상담사를 붙이는 것이 아닌 이혼 변호사를 붙인다. 이혼하게 됐을 때 서로의 조건을 확인하고 그날 밤 이혼을 할지 안 할지 고르는 시스템이다. 이 정도면 결혼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이름을 지어야 할 것이 아니라 결혼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 이름을 붙여야 할 정도다.


물론 출연 의사를 표명하고 자진해 나온 출연자들이지만 그들이 인생에서 겪는 고통을 낱낱이 전시하고 그것에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넣는 제작진들의 의도는 참으로 잔혹하다.


대한민국 사회 내에서 결혼은 인륜지대사 관혼상제 중 하나에 해당하는, 인생에 있어서 큰일이다. 하지만 그중의 하나를 오락적인 요소로 삼고 일반인 출연자들의 방송 이후의 삶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 제작진들의 직업윤리는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위해 종을 울리는가, 아니 부부들을 울리는가.


*KBS스타연예 페이지에 발행된 글입니다.

https://kstar.kbs.co.kr/list_view.html?idx=210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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