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니 부제목이 어디 대학 전공책 제목 같아 머쓱하지만 그만큼 진지하게 이번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직업에 '쓰레기'라는 단어가 붙어 합성어로 탄생되는 직업이 어디 흔한가. 물론 판새, 짭새 등의 비속어도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이 사회에 있어 도덕성이 요구되는 막중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 드는 회초리 같은 이름이라고도 생각된다. 긍정적인 관점으로 보고 웬만한 순간엔 납득해보려고도 한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어쩔 수 없다. 영화 기자를 하면서 안타까운 순간들 중 하나는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기자들의 이미지다. 영화를 봤을 뿐인데 나도 모르는 새에 어느 순간 기레기가 되어있다.
최근 GV 모더레이터를 맡은 영화 속에서도 정말 '기레기'가 나왔다. 기자가 부당한 사건을 겪은 성소수자를 겁박하는 듯이 인터뷰를 하는데 태도가 건방지기 짝이 없었던 신이었다.
GV 도중 나는 그 신을 해석하기 위해 언급하며 "제가 대신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객석은 빵 터졌으나 내 마음속은 왠지 모르게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당연히 이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현상들이고 그 무례를 선행한 자들이 있었을 테니 이런 모습으로 기자들을 등장시키는 영화들이 있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 '기레기의 특성'을 필요 이상으로 부풀리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오묘함을 넘어 불쾌하게 본 영화로 치면 아마 '설계자'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실제 리뷰 기사에서도 언급한 내용이었지만 빌딩에서 차 위로 추락해 죽은 사람에게 달려가 쉴 틈 없이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는 기자들의 모습이 담긴 신이 등장했는데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졌다.
애초에 모든 매체에게 적용되는 보도 윤리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그저 기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 아니라 실제로 도덕성의 추락이 의심되면 위원회에서 날아오는 윤리권고조치다. 메일에 국장까지 참조해서 주문이 날아오는데 간혹 받을 때면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난다.
생각보다 그 기준이 깐깐하고 높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주요 단어들을 못 써서 기사를 쓸 때 애를 먹은 적도 많다. 작년에는 성범죄 피해자 가족의 기자회견에서 쓴 기사에서 피해자의 심경을 말한 멘트를 말 그대로 받아썼는데 '피해자가 좋지 않은 선택을 한 부분'을 언급해 경고를 받은 적도 있다.
이외에도 기사에 올라가는 이미지도 중요하다. 최근 사건, 사고, 정치 쪽 기사도 쓰기 시작해서 여러 이미지를 써야 하는데 일러스트 사진임에도 마약, 주사기 등의 이미지는 쓸 수 없고 실제 사건 현장이나 CCTV 현장 캡처 등 사고 당시의 잔인한 부분은 절대 내보낼 수 없다.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신상이 아무리 웹상에 떠돈다고 해도 무조건 모자이크 처리해야 한다.
일반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 스케치 사진을 찍을 때도 하나하나 모자이크를 해서 올리는 세상에 사진 기자들이 몰려가 시체 사진을 떡하니 찍는다니. 눈앞에서 사람이 떨어져 사망했는데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시체 가까이에 가서 구경을 한다니. 부풀림이 지나친 영화들은 눈살이 찌푸려진다.
물론 전반적으로 기자라는 집단이 좋은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밉고 불명예직이어도 내가 속한 카테고리다. 특정한 누군가들의 행동으로 인해 지금도 현장에서 애쓰고 있는 기자들마저도 욕을 먹어야 하는 현실은 옳지 않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그 사람이 속한 전체 직군에 대한 편견을 가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당하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를 보다 갑자기 울컥했던 장면이 있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기자를 정말 회색지대 속에서도 완벽하게 현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작품 속 주인공은 자신이 운영하는 펜션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마의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 인생이 처참히 망가진다. 살인의 장소가 된 펜션에 수많은 취재진이 몰리고 그로 인해 펜션은 낙인이 찍혀 손님들이 찾지 않게 되며 경제적 손실에 가정까지 파탄에 이른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한 기자가 찾아온다. 살인사건에 관해 물으러 왔던 그는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고 펜션 주인에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 않으세요?"라고 물어본다. 그 신을 본 순간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의 희열이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내가 본 기자의 모습 중 '첫 번째의 예외'였다. 탐구심, 정의, 뭐 어떤 말을 붙이든 간에. 모두가 한 번 소비하고 말아버릴 이슈가 아닌, 진짜 대중에게 전해야 할 말이 뭔지를 알아챈 기자의 눈빛이야말로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었다.
나는 정의를 정의하는 사람은 아니다. 내 정의가 맞다고 주변에 주장하는 사람도 아니다. 정의도 하나의 사상이라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른다. 사상은 말 그대로 고유하고 사사로운 생각이며, 내가 이런 기자니 남들도 내가 옳은 방식으로 기사를 쓰고 질문을 해야 한다고 감히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타인을 향해 '기자는 기레기다'라고 재단하고 익명성 뒤에 숨어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만큼에게는 단호히 이야기하고 싶다. 누군가는 '쓰레기'라는 단어를 넣어 부르는 하나의 직업에 정말 많은, 내가 존경하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충격적인 일들을 누구보다 먼저 의무적으로 목도하고 자신의 무력함에 짓눌려 사는 사람들도, 매번 피해자들의 마음과 공명하며 밤마다 눈물을 머금고 얇은 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다양한 겁박이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신념을 유지하는 단단한 기자들도 있다. 여느 사회가, 구성원들이 그렇듯 저마다 각자의 전쟁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댓글을 달기 전에, 내가 권유하는 '선플달기 캠페인'(?)을 떠올려봤으면 좋겠다. 이 사람도 누군가의 가족이며 친구이며 제정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명의 인간임을. 세상의 어떤 집단이든 선과 악, 뭐 그 사이의 중간 어느 정도가 있는 것처럼 모든 기자들도 기레기가 아님을 알아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