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죽을 만큼 한다는 건

영화 '국보' 리뷰

by 정지은 Jean

어쩌면 올해, 최고의 영화라 말해본다.


'홀렸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두 청년이 펼치는 가부키 무대에 한껏 매료되다가도 화려함 이면의 결핍이 너무나도 처연해 3시간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실로 다 가져 보이는 삶이지만 온전한 하나조차 없는 인물들. 그나마라도 가지려면 얼마나 처절하게 버텨야 하는지 보여준 그들의 삶이 너무나도 애달팠다.


핏줄을 타고난 슌스케, 재능을 타고난 키쿠오. 쥔 것이 다른 라이벌의 대결이라는 익숙한 구조임에도 소재, 서사, 연기, 연출, 무대 등 어느 하나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 게 없었다.



개인적으로 '국보'가 당신이 응원하는 인물이 '키쿠오냐, 슌스케냐'를 묻는 영화는 아니었다고 본다. 내겐 어느 순간에 이르러선 키쿠오와 슌스케가 겹쳐 보였기에 그렇다.


아마 어떤 것을 죽을 만큼 사랑해서, 그걸 죽을 때까지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실은 가부키가 원망스럽고 하기 싫어 죽겠지? 그래도 해야 해"라는 만키쿠 선생님의 말이, 두 청년의 평생을 쫓아오는 악몽만은 아니었음을.


키쿠오의 욕망도, 슌스케의 도망도 결국 애정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몇 없는 관객들의 무관심과 자욱한 담배연기만이 욱여진 연회장도 모두 진심인 무대였으리라. 그러기에 상처받고, 그 상처가 꿈을 갉아먹었으리라.



피를 토하고 다리가 썩어가도 무대를 지킨 한지로 부자. 네 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며 벌벌 떠는 키쿠오를 보며 누군가는 "어쩜 저렇게 살지?"라고 혀를 내두르겠지만. 본디 사랑하는 것에 일생을 거는 일은 고단한 일이다.


'국보'는 무형한 것에 사활을 거는 행위 자체의 가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결과물이 괴물 같은 '사람' 혹은 '무엇'일지언정,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이다.



다음 달 교토와 오사카 여행을 가는데 시간이 되면 가부키 무대를 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키쿠오의 딸이 한 말처럼, "이제 나쁜 일은 없으니 어서 와"라는 '새해'와도 같이 포용적인 무대를. 나도 한번 정말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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