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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성의 생각 Sep 10. 2024

3.2 - 개명하는 사람들

‘이름’과 나



이름은 먼저 있던 자들이 행사하는 ‘나에 대한 권력’이다. 또 그들이 나에게 투사하는 꿈이기도 하다. 누군가 내게 용무가 있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지칭하기 위해서 그것을 발음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응답과 무응답 사이의 선택지를 강요받는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다. 이름 짓기정체성을 부여하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강요했던 ‘창씨개명’이 그 사례다. 이름을 일본어 체계 안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그 사람의 자아를 일본어로 된 세계 안에 흡수하려는 시도였다.


스스로 이름을 바꾸는 행위 역시 정체성에 변화를 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저 불편한 어감 때문에 하는 개명도 마찬가지다. 일정 부분 정체성에 대한 고민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듣거나 부르기에 불편한 어감이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염려 말이다. 이름이 배설물이나 비속어를 연상시킨다거나, 좋은 이유든 나쁜 이유든 알려진 인물과 동명이인인 경우가 그 예시다. 이런 이름을 평생 달고 산다는 것은 대체 어떤 삶일까? 잘 모르겠지만, 다사다난한 일상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사주ㆍ명리학에서는 사람의 태어난 시기나 지역과 함께, 이름을 뜯어보며 삶을 예측한다. 상담자는 그렇게 도출된 사주를 내담자에게 그럴듯한 시나리오처럼 들려준다. 그러면 내담자는 스스로 생각해 낸 여러 가능성 중 가장 유사한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미래 전략을 수립한다. 더러는 이름 때문에 사주가 꼬였다며 개명을 권유하기도 한다. 최근 어떤 예능프로에서 한 작명가가 출연자에게 개명할 경우, “60세 전에는 결혼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웃픈’ 상황을 연출한 사례도 있다.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 통계서비스를 열람하면 개명 신고 이름 현황을 볼 수 있다. 통계를 보면, 2024년 전반기 동안 내가 사는 인천에서 최소한 2,081명이 개명 신고를 했다고 한다. 아직 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건을 더하면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작년에 발행된 한 기사는 2008년 이후 15년 동안 매년 11~15만여 명이 꾸준히 개명했다고 한다.분명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개명을 신청하는 사람이 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존의 이름과 유착된 정체성과 자기 서사를 탈피하려는 욕구를 행동으로 옮이들이 많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 "‘대한민국은 ‘개명 열풍’ … 자신에게 선물하는 새 이름." (20240909). 부산일보 BSTODAY. 20231123 수정, https://www.busan.com/view/bstoday/view.php?code=2023112217002147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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