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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성의 생각 Sep 11. 2024

4.2 - 종교 속 세상

4 - ‘신’과 나



한 사람이 종교 세계의 내부자가 되는 길단 두 가지뿐이다. 처음부터 그 세계 안에 있었거나, 어떠한 계기로 인해 그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다. 종교에 속하게 된다는 것은 그 종교의 교리 밖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가르침을 그 교리 밑에 복속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종교를 가진 사람도 다른 종교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기는 한다. 심지어 종교가 아닌 가르침들을 차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외래적인 교훈들은 모두 내 종교의 근본적인 교리에 접목되는 곁가지들일 뿐이지, 결코 그 으뜸 된 진리의 뿌리와 큰 줄기에는 도전할 수 없다. 중심에 속한 체계를 수정한다는 것은 곧 신앙의 배신이요, 이단적인 행각이 된다.


종교의 세계에서 안에서 태어난 이들은, 처음부터 생각의 중심에 도전해선 안 될 명제의 씨앗이 심겨진 상태에서 인생을 시작한다. 반면 종교에 귀의하는 자들은, 호기심 때문에, 혹은 산전수전 끝에 찾아온 결정적인 깨달음 때문에, 아니면 이성과 인과적인 설명으로 파악되지 않는 한계를 만나서,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린 진리의 수목을 분갈이한다. 아이러니가 있다면, 보통 식물의 경우, 분갈이한 식물보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식물이 더 강하지만, 생각의 나무는 처음 심겨진 나무보다 나중에 자리 잡은 생각이 더 튼튼하고 잘 자라는 것 같다.


내 부모님이 신앙 깊은 분들이셨기에,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은 나에게 자연스럽게 체득된 신념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까지 작은 개척교회를 운영하셨다. 다른 평범한 여느 가정들처럼 내 부모님도 잠들기 전 나에게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린아이에게는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의 차이점을 구분할 만한 능력이 전혀 없다. 안데르센 동화집에 수록된 이야기, 한국 전래 동화집 속 이야기, 각종 위인전 등의 이야기들의 차이를 나는 전혀 구분할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는 이런 모든 이야기와 성서에 수록된 다양한 이야기들의 차이점을 식별해 낼 수 없었다. 다만, 성서 이야기가 다른 모든 이야기보다 스케일이나 교훈적인 측면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이야기였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사진: Unsplash의 Антон Воробьев

예컨대 신이 입을 열어 이야기하면서 온 세상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다른 모든 이야기가 전부 이 큰 이야기 속에서 벌어진 사건들이라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내 안에 심어주었다. 게다가 양치기 소년이 반복적인 거짓말로 낭패를 본 이야기가 주는 교훈보다, 신을 거역하는 인간들을 거대한 홍수로 모조리 수몰시켜 버리는 이야기가 더 무섭고 재미있기도 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의 생애가 신이 손으로 쓴 동화나 다름없다”는 안데르센의 서문이 내 첫 세계관에 관한 완벽한 요약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가 품지 못하는 다른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 이후였다.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아는 이야기가 다양해질수록 세상에 대한 인식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에서 듣고, 읽어왔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난해한 이야기가 세상 밖에 가득했던 것이다. 특히나 가정에서 다양한 고통을 겪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왜 아직도 신이 벼락불을 내리지 않는지 정말 궁금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되었다. 아마 그 무렵  교회에 출석하는 인원이 적어 더는 교회를 유지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때마침 나도 더 이상 기독교적 신념을 유지할 수 없었던 참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전능하고, 정의로우며, 선하고, 자비로운 신의 존재’.


엄연히 눈앞에 실존하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악과 고통의 문제’.


이런 문제의식을 철학ㆍ신학에서는 ‘신정론(theodicy)’이라고 부른다.* 다소 현학적인 느낌이 있지만, 나에게는 나름 진지한 실존의 위기였다. 나중에 대학교에서 이를 주제로 글을 쓰고 토론했을 때는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했었다. 대부분 이 문제를 흥미 위주의 태도로 탐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더 말을 잘하는지, 누가 더 빈틈을 잘 찾아내는지 겨루는 것이 신학생들의 일반적인 태도였다. 한 초등학생이 집에서 물려받은 세계관을 뿌리째 뽑아버린 문제였음에도 말이다.

* 신정론(神正論)이란, 신의 정의를 따져 묻는 철학적 신학의 논제다. ‘악의 문제’ 내 이야기 속 사례처럼 보통 ‘악의 문제’와 결부되어 제기되곤 한다.


이어지는 글 : 4.3 – 신 존재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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