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 의미 지속과 중단에 관하여

7 곱하기 0과 7 나누기 0

by 임지성의 생각



우리는 통상적으로 어떤 과정이 중단되기 전까지는 그 과정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마치 시계추처럼 똑딱거리며 그저 하루하루 느껴지는 희열과 쾌락과 분노와 짜증 사이를 왕복하며 흔들거릴 수 있을 뿐이다. 무엇인가 진행중일 때는 그것을, 그것의 의미를, 까마득한 기억과, 마찬가지로 아득히 먼 미래의 정중앙에 가져다 놓고, '그저 이런 것이겠거니.'하는 식의 짐작과 '그래도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식의 소망 이상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과 경험이 쌓일 수록 짐작과 소망은 확신에 가까워질 수도 있고, 그 속에서 일종의 확고한 의지나 결심 같은 것이 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확신 자체는 일종의 형식일 뿐, 그 안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얼마든지 담길 수 있다. 확고한 의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당장 느껴지는 희로애락이야 말로 가장 확실한 것이고, 가장 현실적인 것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가 전부라고 느끼지 않는 것은 가장 인간다우면서도 매우 부자연스러운 사고이다.


그러나 이 연속적인 삶 속에서 무엇인가 계속, 이따금씩 중단된다. 날마다 대처해 왔던, 그래서 내 안에서 일종의 '방법'과 '습관'으로 굳어진 그 무언가를 더 이상 그러한 방식으로 상대하지 않게 되는 날들이 기어코 시작되고야 만다. 중단은, 중단 이전에 품었던 확신과 의지 만큼이나 아무 내용도 담지하지 못한다. 단순히 중단과 중단 사이에서 지속되어온 과정을 구획화하고, 그 안에서 느꼈던 양의 감정과 음의 감정을 합산한 총량만으로는 그 의미를 다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해방'이다." 혹은 "아니다. 이것은 '박탈'이다."라며 단정하는 것도 잠깐일 뿐. 여전히 지속, 왕복하는 시계추 위에서 놀아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은 모든 것에 대한 박탈을, 모든 것에 대한 박탈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0은 앞자리로 늘어나든, 뒷자리로 늘어나든 그 자체로는 아무 크기도 나타낼 수 없다.


그렇게 하루, 하루 떠밀려 다시 '이런 것이겠거니.'하는 식의 짐작,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식의 소망 사이에서, 까마득한 기억과 아득히 먼 미래의 한 가운데서, 고립무원의 지평에서, 유보된 의미를 애써 차치하며, 또 다른 '방법'과 '습관'이 굳어질 때까지.


다시 마주할 이 방식의 종식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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