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각을 지배하지 않으면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

'25. 06. 23.~24(월~화).

by 임지성의 생각



가. 상황


일기를 시작한 이유는 선명하다.

나는 내 생각과 감정, 그리고 내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나. 그 속에서 경험한 생각과 감정의 우세했던 흐름


임관한 시점 이후로 전역 후 몇 달까지 나는 내 역할과 임무, 스스로 부과한 목표에 따라 절제하며 자기 규율과 성과를 바탕으로 효능감을 느끼며 지냈다. 비단 군 복무 기간 뿐만이 아닌, 이전까지의 삶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와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되었던 이들 사이에서 느꼈던 내 효능감의 출처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보여주고자 했던 독립적인 기준과 이에 대한 일관성, 그리고 그 기준이 만들어낸 결과들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역 후 누적된 시간 속에서 나는 목표를 자주 바꾸며, 최종적인 성과를 확인하기 전부터 결과를 예단하는 사고를 키우기 시작했다.

조바심. 뭐라도 빨리 나 자신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감. 스스로 교회와 신앙의 세계를 배신한 것이 생애적으로 타당한 선택이었다는 매몰비용에 대한 정당화. 지나간 것을 지나간 것으로 흘려 보내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다.

3년 좀 더 되는 기간을 지속해 왔던 연애를 고통스럽게 끝맺게 되자, 이룬 것 하나 없이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을 비롯하여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이 내 사고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다운로드.jfif 존 오웬의 책, On the Dominion of sin and Grace


어떤 흐름이 내 사고를 지배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결국 성향적인 변화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현시점에 나 자신을 감시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회로(loop)가 생겨 버리면 이를 극복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이점에 관하여 존 오웬을 비롯한 옛 영미 신학자들의 가르침에 감사를 돌리고 싶다. 비록 나는 이제 청교도주의는커녕 기독교 신앙 조차 가지고 있지 않지만, 성향적 사고에 대한 철저한 자기 감시 만큼은 청교도들의 모범을 따라올 자들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 내가 취한 행동들 중 내 진중한 의도가 반영된 행동과 그렇지 못한 행동


1) 목표를 자주 바꾸었던 일에 관하여:

북디자이너, 작가, 편집자 등 출판업계를 기웃거렸던 과정을 되돌아보았을 때, 좋게 말하면 '목표를 탐색하고 설정하는 과정' 즉 전략적 사고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겠다. 예단하고 목표를 성급하게 수정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지만, 철저한 자기 이해가 아닌 빙 둘러가는 우회 전술만으로는 전략적으로 좋은 결과를 획득하기 어렵다.

결국 내가 잘 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문제이든 비판적으로 접근하되, 엄밀하게 추론하고 과감하게 실행하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유 지점을 설정한 일은 매우 잘 한 결심이다. 입학-졸업이라는 중간 단계가 지나기 전까지는 성과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현시점에 이 일에 대하여 더 감정적일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야 한다.


2) 실패한 연애에 관하여:

인간 관계에 '성공-실패'라는 도식을 들이미는 것 자체가 집착적이고 착오적인 발상이지만, 이 영역에 관하여는 후회되는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가 뒤섞여 있음을 느낀다.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그녀와 나의 관계는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우며 시작되었다. 사랑으로는 3년이지만 우정이었던 기간을 포함한다면 10년이 조금 더 되는 사이이기 때문에, 그럭저럭 공통점도 많고 서로 잘 이해하고 타협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위에 매력을 느끼며 정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이 어긋나는 지점이 더 많이 발견될 수록 나는 이 '어긋남'의 본질을 생각하는 대신 '맞추면 된다.'라는 쉬운 판단에 더 안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나 자신도 그녀도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느껴야 했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신을 믿을 때 나는 내가 이해한 기독교 정통 교리의 틀 위에 구축된 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에 집착할 수록 나는 내가 연구하는 텍스트들과 이 세상이 점점 불가해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상(image). 현상에 집작하면 형상을 명찰할 수 없게 된다. 나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잘못된 상을 포기할 수 없음. 이러한 집착은 결을 맞추기는커녕 결 자체를 제대로 확인하는 일에도 걸리적 거릴 뿐이다.


라. 인과적인 분석


두 가지 주요한 흐름이 내 사고에서 지배적인 부정적인 성향을 키웠다고 결롯 짓는다. 이 두 흐름에는 공통점이 있다. 내 길이 아닌 것. 내 것이 아닌 삶에 대한 집착이다. 이는 그동안 원동력이 있었던 내 모든 시간에 대한 배반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준이 명확했을 때, 나는 다른 이들의 기준과 내 것을 비교하고 그들과의 공진화 조건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세상에 비슷한 삶은 없다. 단일한 세계상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질량과 에너지, 힘과 방향과 크기, 개념과 느낌 등. 이런 수준의 극단적으로 이행된 추상화를 떠나지 않는 한 결코 이 세상과 삶에 대한 단선적인 원리는 도출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추상화는 더 복잡한 수준의 현상들을 맥락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

또 모든 것을 동시에 파악할 수는 없으므로 나는 현행화된 조건 속에서 내 원리를 다시 파악해야만 한다.

근원으로 돌아갈 것(ad fontes). 나는 배움과 비교와 재확립을 중단할 수 없는 존재이다. 나는 이 세상에게 계속하여 설명을 요구하면서도, 그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설명되지 않은 것들과 비교하며 더 나은 설명을 떠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과 발을 바삐 움직이며 몸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지난 일요일까지는 부정적인 사고가 지배적이었지만, 스스로를 감시하기로 시작한 순간, 즉 월요일부터는 정신이 외부를 향해 움직일 수 있는 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면 부족으로 인해 이성이 마비 되지 않는다면, 지금부터는 아마 다시 자기 규율을 실천하며 생산적인 방향으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 운명적인 요소와 극복 가능한 요소의 구분


매몰비용은 더이상 기회비용이 아니므로, 다행인 부분과 감사한 측면을 인정한 뒤 같은 오류는 반복하지 않기로 한다. 내 진로가 아닌 것들에 낭비된 시간은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보다 짧다. 그리고 그녀와의 우정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나 처음부터 착각에 기초해 시작하고, 그 착각을 교정하려는 시도조차 부족했다는 것만을 인정한 채, 이제 그만 생각의 흐름 위에 두지 않기로 한다.

효능감이 감소한 요인은 소속될 현장과 과업이 주어짐에 따라 개선될 것이고, 그것을 당장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한다.


바. 짧은 반성과 새로운 결심


현재 나는 비상장 기업이고, 적자 기업이나 다름 없는 상태이다. 지나치게 가능성에 중독되는 일은 경계해야 하지만 결국 본질적인 역량을 키우지 못하면 장래의 실적은 사라지게 된다.

계획된 운동과 학습, 생계를 위한 노동에 집중하도록 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다. 상황판단-결심-대응. 지금은 기민해야 할 때이다. 세상은 나보다 빨리 변한다.

사고 영역에 대한 지배력을 회복해야 삶에 대한 지배력을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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