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와 잡음, 정답과 오답에 관하여
불쾌한 색감의 누런 하늘과 습기찬 공기에 눈살을 찌푸리며 시작된 산책. 오늘은 부평공원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왔다. 부평역 앞 광장을 가로지르며 함께 지나쳤던 복잡하고 매캐한 배기음과 경적, 담배 연기가 오늘 생각의 자극제가 되어주었다.
잡음이 너무 많아, 신호조차도 유익한 정보가 되어주지 못하는 환경 속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자기계발 서적은 잘 팔리고, SNS에서는 "너만 모르는 정보", "모르면 손해 보는 꿀팁" 등등 이말, 저말 나부끼지만, 어려서부터 남의 말 잘 안 듣는 성격이었던 나에게는 이런 과다한 정보가 그다지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학창시절에도 나는 "이해가 안 되면 일단 외우라"는 식의 교육 방식에는 좀처럼 잘 적응할 수 없었다. 나는 과정 없는 방법을 익히는 데 매우 취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B와 D 사이의 C"라는 말로 기투성을 강조했던 사르트르를 나는 좋아한다. 그래서 내 나름 투수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만, 어느샌가 이미 던져진 공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을 어김 없이 발견하게 되는 것을 보면, 실존주의도 구조주의도 특정 조건 위에서 설득력을 갖는 개별적인 모형일 뿐, 되먹임 변수가 무수히 많은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관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르트르의 C도 결국 선택지를 제약하는 총체적인 권위에 대하여 굴종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세상이라는 터전, 삶이라는 과정은 환원주의 없이는 이해 불가능한, 그렇지만 환원하는 즉시 누락되는 범위가 증가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함께 곁들여 본다.
속도를 따졌을 때 이런 성향이 과연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데 유리한지 생각해 보자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속력은 느리고, 방향조차 평균적이지 못하다. 적어도 사고 방식에 관한 한 그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성적인 분류는 범주 착오이며, 정량적인 평가는 환원주의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에 관하여 이제 그만 풀이하기로 하고, 다시 내가 풀기 쉬운 간편한 문제들로 복귀하기 위해 오늘의 산책을 마쳤다.
답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래도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는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