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를 좋아할지도 몰라

나는 어떻게 시를 좋아하기 시작했던가

by Suzanne

나는 스무살까지 학교 수업과 수능 공부 외에 따로 시를 찾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시는 나에게 알아들을 수 없거나 억지로 부담스러운 감동을 끌어내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게 시가 아주 없던 것은 아니다. 이미 고등학생 때 교과서와 수능특강에서 좋아하는 시 한 편씩은 찾아 외우고 다니고 (그 당시엔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를 참 좋아했다.) 모의고사를 보면 문제보다 필적확인란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스무살에 어울렸던 친구 중 시집을 읽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영향으로 비로소 시를 ’시집에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집을 아주 많이 읽었다. 왜냐면 ’ 짧아서 금방 다 읽을 수 있으니까 ‘.


아모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나려 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려서
공주처럼 지쳐서 도라온다.

3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푼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문학 장르 중 아마도 나는 시를 가장 좋아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행동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내게 시가 쥐어진 것은 백일장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의 4월, 학교에서는 백일장이 열렸다. 그림, 시, 산문 총 3개의 부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대회에서 나는 시를 택했다. 그림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수고롭게 채색해야 하는 데다가 우리 학교에는 미술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가 많아서 내 그림 따위는 비빌 수가 없었다. 산문은 몇 장의 종이에 많은 양의 글을 적어 내야 하는 데다가 서-본-결의 짜임새까지 고려해야 했으니 피곤하고 복잡한 작업이었다. 몇 글자 대강 적어내면 끝나는 시가 가장 만만했다. 그리고 나의 목표는 빠르게 제출하고 남는 시간을 내내 노는 것이었다. 소원대로 30분 만에 아이디어를 떠올려 원고지에 채운 후 4시간을 그냥 친구들과 놀았다. 그리고 나는 장려상을 받았다. 기대도 안 했는데, 뿌듯했다.

어떤 시를 썼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언어의 한계에 대한 시를 썼던 것 같다. 아무리 내가 언어를 잘 사용하려 노력해 봐도 언어는 그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2차원 평면, 3차원 입체를 상징으로 해서… 대강 2차원의 정사각형 원고지 칸을 주요 시어로 사용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이걸 다시 살려낼 순 없을까?(아이클라우드 백업을 잘해놨어야 했다. 내 잘못이지.)


대학교 2학년의 5월, 교내 백일장에 참가하여 수상하면 장학금을 준다는 공지를 보고 시화 부문에 지원했다. 이번에도 산문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귀찮아서였다. 4시간 넘게 진행되는 행사에서 나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10분을 지각하여 도착했다. 나눠주는 샌드위치와 간식을 먹으며 점심값은 굳었다고 신나 하며, 또 30분 만에 시를 쓰고 삽화를 그린 후 커피 사들고 수업을 들으러 갔다. 채색도구도 없어서 샤프로 대강 그린 그림이었음에도 또 장려상을 받았다. 수업에 급히 가느라 제목을 짓는 것도 잊어버린 탓에 수상 작품명도 ‘무제’였다. 아쉽게 내가 탄 장려상만 장학금이 아닌 기념품을 주었다. 그래도 갖고 싶었던 학교 마스코트 인형이었기에 만족스러웠다.

다른 수상작들을 보니 내 작품은 삽화가 형편없기도 했지만, 학생이 쓴 글이라기엔 너무 비관적이고 교육적 목적과 거리가 있어서 장학금을 받을 정도의 시는 되지 못한 것 같다. 주제가 청춘, 가족, 여름… 이런 내겐 너무 진부한 키워드였기에 나는 키워드에서 벗어나지 않되 반항적으로 적어냈다. 상장 수여식과 문집 수령까지도 괜찮았는데 지금 다시 보니 ‘ 이런 의도를 가지고 이런 생각과 느낌을 유발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써야지! ’ 하고 지은 게 보여서 별로다. 언제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도 아쉽지 않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어쨌든, 이러한 기회들로 나는 비로소 내가 시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시작했다. 우연, 혹은 실수로 입학해 버린 불어불문학과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시가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1. 짧다.

2. 한눈에 들어온다.

3. 간결하다. 군더더기 없다.

4. 그래서 구질구질하지 않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충분히 드러낸다.

6. 심지어 화려하게 피어난다.

7. 그러면서도 적절히 숨을 줄 안다.

8. 아름답다.

9.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10. 선지자이자 예언자. 모든 매체들 중 가장 앞선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시의 매력과, 마성의 시들을 찬찬히 소개해볼까 한다. 더 이상 혼자만 좋아 죽을 순 없으니까!…


첫 글의 마무리는 내가 본격적으로 시를 찾는 여정을 떠날 채비를 하도록 만든, 쉼보르스카 시 ‘두 번은 없다’ 의 일부 구절로 하겠다.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