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드 모파상의 「La Morte」(죽은 여자)
*불문과 단편소설 수업에서 기 드 모파상의 작품을 읽고, 괴테의 「파우스트」와 비교 및 분석한 비평문입니다
내가 죽어 무덤에 묻힐 때 묘비에 어떤 문구를 새길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의외로 중요하다. 죽은 나는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나와 관계를 맺은 산 자들의 정신 속에 여전히, 개념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체면을 위해 묘비의 문구는 중요하다. 「La Morte」의 후반부에서 망자들이 묘비의 문구를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을 중심으로 괴테의 「파우스트」와 함께 정신의 위상학적 구조를 드러내고, 욕망과 진실의 성질을 탐구하고자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친 사랑’을 했다. 그 사랑이 어찌나 매혹적이고 위험했는지 중독되어 빠져나올 수 없다. 그는 그녀의 장례식 이후 정신을 놓았고, 다시 의식을 되찾고 난 후에도 온 공간에 깃든 그녀를 그리워한다. 그녀와 그 사랑을 잊지 못해 괴로운 주인공은 밤이 되자 그녀의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로 가고, 온몸으로 과격히 그녀를 찾으며 사후 세계에 매몰된다. 주인공이 공포에 휩싸여 이성을 잃자, 무덤 속에서 시체와 해골들이 살아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비석에 적힌 아름다운 애도의 말을 무자비하게 지우고, 추악한 자기 고백을 한다. 그렇게 아침이 되고, 주인공은 다시 정신을 되찾으며 이야기는 끝난다.
소설의 후반부, 밤의 공동묘지에서 일어나는 환상적인 사건은 ‘발푸르기스의 밤’을 연상시킨다. 「파우스트」에서 어느 늦봄의 한밤중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 박사를 산으로 데려가고, 타락과 관능의 축제 ‘발푸르기스의 밤’을 선사한다. 그곳에서 파우스트 박사를 제외한 모두는 마녀, 유령, 귀신 따위의 비이성적이고 영적인 존재들이다. 마찬가지로 「La Morte」에서 주인공이 공동묘지에 찾아간 시간은 야심한 밤이었고, 그곳에서 망자들은 살아 움직이며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그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연인을 애타게 찾으며 망자들 사이를 헤맨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인간의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파우스트에게 그의 영혼을 대가로 젊음과 연인을 주었고 무분별하고 극단적인 쾌락으로 그를 시험에 들게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파우스트, 즉 자아라면 메피스토펠레스는 그의 원초아, 욕구 그 자체가 된다. 발푸르기스의 밤이 열리는 산은 무의식의 세계이다. 「파우스트」에서는 자아와 원초아가 각각 인간과 악마로 의인화되어 개별적인 분화를 이룬 것과 달리 이 소설에서는 악마가 나의 외부가 아닌, 무의식 속 깊숙한 곳에 위치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자신과 욕망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서 욕망에 잡아먹힌 형상을 띠는 것이다. 파우스트의 연인 그레트헨 역시 메피스토펠레스가 제공한 유혹의 대상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je’와 연인 ‘elle’의 경계가 모호한 이유 역시, 연인은 내면의 욕망인 원초아가 제공한 대상이므로 그 근원은 같기 때문이다. 그레트헨은 순수한 처녀의 이미지로 등장하여 정절을 잃었지만, 종교적 구원을 받은 후 파우스트를 신의 나라로 인도하는 인물이다. 연인 ‘elle’ 역시 도덕적 이상향의 기준인 초자아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도덕적 통제자인 초자아의 타락은 초자아 자체의 타락이 아닌 원초아와의 일시적 세력 경쟁 실패로 잠시 잡아먹힌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연인 ‘elle’은 명확한 용서와 구원을 얻기 전에 결말을 맞이한다.
발푸르기스의 밤은 무의식의 층위에서 자아와 초자아가 원초아의 지배에 굴복당하는 순간이고, 이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그러한 장면이 생생히 묘사된다. 「La Morte」의 주인공은 화자일 뿐 진정한 의미의 주인공, 이야기의 주인이 아니다. 생사의 여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는 망자들과 같은 처지에 불과한 자다. 이 소설 속 발푸르기스의 밤은 주인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에 자신의 욕망이 가려진 모두를 위한 시간이다. 공동묘지의 모든 애정 어린 비문은 위선과 거짓으로 쓰였다. 망자의 인격마저도 산 자의 욕망인 ‘아름다운 페르소나’를 위해가공된 것이다. 타인의 욕망은 나의 욕망이 적혀 있어야 할 묘비를 침범했다. 이 소설의 후반부는 타인의 욕망에 의하여 해석된 나의 삶을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기도 하며, 그 진실로 인해 결말은 타락으로 치닫는다.
욕망은 때로 추하다. 진실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에 의해 가공되는 것이다. 백 명의 사람이 존재한다면 백 개의 진실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현실 세계에 가담할 수 없고, 그 점을 이용하여 산 자들은 죽은 자가 자신의 진실을 만들 권리를 빼앗는다. 모파상은 「La Morte」에서 발푸르기스의 밤을 설정하여 죽은 자들을 이 세계로 불러들이고, 그들이 욕망을 실현하여 진실을 가공할 권리를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