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단 1m의 거리에서 광년이 느껴질 때

영국 연극, 연극열전의 연극 <프라이드> (알렉시 캠벨 작)

by Suzanne

*불문과 연극 미학 수업에서 제출한 연극 감상문 작성 과제입니다.


우리는 나보다 남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 피로 연결된 사이도 아닌 완전한 타인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남을 완전히 알 수 있을까? 그 이전에, 나 자신을 완전히 알 수 있을까? 연극 <프라이드> 관람 내내 내게 끈질기게 달라붙던 질문들이다. 그 질문은 끝나지 않고 이어져 내 뇌리에 머물며 삶, 사람, 사랑에 대하여 고찰하게 한다. 얼핏 <프라이드>를 단순한 퀴어 연극으로만 해석하거나, 자극적인 포르노로 소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하여 등장인물 중 유일한 비퀴어 인물인 실비아의 역할과 기능 분석을 통한 감상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 극의 캐치프레이즈가 말하는 ‘당신이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를 고찰하여 궁극적으로 나와 너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프라이드>는 영국 극작가 알렉시 캠벨에 의해 창작되어 2008년 런던에서 초연되었다. 총 2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터미션 포함 약 3시간의 긴 극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성소수자들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다. 전혀 다른 시간적 배경을 지닌 2개의 극이 <프라이드>라는 하나의 극을 구성하는 독특한 형태이다.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1958년 배경의 무대와 2008년 배경의 무대는 시간적 배경만을 달리할 뿐, 공간적 배경, 무대 세트와 장치,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성별, 성적 지향성 등은 동일하고 행동 양상, 태도, 성격 등의 설정은 유사하다. 이는 마치 인물들이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50년의 세월을 두고 등장인물들이 환생하였음을 암시한다.

1958년의 부동산 중개업자 필립과 그림 작가 실비아는 부부이다. 실비아가 함께 작업하는 동화 작가 올리버를 필립에게 소개하면서 극은 시작한다. 필립과 올리버는 첫 만남부터 미묘하고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보인다. 필립은 이유도 모른 채 그를 불편해하며 어색한 태도를 보인다. 이후 극이 진행됨에 따라 올리버와 필립이 서로에게 연인적 감정을 느꼈다는 내용이 제시되고, 당연히 셋의 관계는 파국을 맞이한다. 2008년의 필립과 올리버는 게이 커플이다. 둘은 올리버의 자유분방하고 문란한 성생활과 성격 차이로 인하여 1년 반의 연애 끝에 갈라서게 된다. 필립과 올리버의 친구인 실비아는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고, 활달한 성격으로 이들의 권리 증진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실비아는 필립과 올리버의 재결합을 위하여 다 같이 런던의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갈 것을 제안하고, 그곳에서 필립과 올리버는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서로를 용서하며 다시 만남을 시작한다는 결말로 극은 막을 내린다.


너와 나의 사이를 잇는 실 - 실비아


58년의 실비아는 배우이자 화가로, 타인의 감정에 잘 전이되고 그 감정의 변화를 아주 섬세하게 포착하는 예술가적 인물이다. 굉장히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에 신경과민 증세를 보이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는 부동산 거래를 직업으로 하는 자신과 달리 예술적 소양을 발휘하며 사는 실비아와 올리버를 높이 사는 필립의 대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보통의 사람들과 다름을 일찍이 인지하고 직접 파국 앞에 다가가 마주 서는 용감한 인물이기도 하다. 결국 어느 잠 못 이루는 밤, 진심과 진실이 두려워 회피와 분노만을 반복하는 남편 필립에게 당신은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던진다. 그녀는 상처받고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한이 있더라도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탐구자적 자세를 지니고 있다. 사물과 현상에 대한 호기심, 의도 없는 순수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는 어린아이의 특성이기도 하며 동화 작가 올리버와의 협업이라는 직업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순수함은 결코 긍정적인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마치 무뎌지지 않은 날카로운 칼이 놓여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는 위협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비아는 필립과 올리버를 이어주지만 모두에게 진실을 선사하고 각자 뿔뿔이 흩어지도록 만든다.


무대 세트는 과거와 현재가 오묘하게 혼재되어 있다. 과거의 요소와 현재의 요소가 한 무대에 함께 놓여있기 때문이다. 마치 각기 다른 색의 셀로판지를 겹친 듯 경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파고들어 겹쳐진 모습이다. 이 중 단연 눈에 띄는 상징적 장치는 “신전 기둥”이다. 무대 세트의 정중앙에는 연출에 따라 거울로도, 창문으로도 사용되는 창이 놓여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신전 기둥이 옆으로 퍼지며 늘어선 형태이다. 58년의 필립과 실비아의 집이면서 08년의 필립과 올리버의 집인 이 무대는 하나의 신전을 연상시킨다. 1막 마지막 장면에서 58년의 실비아는 한밤중에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고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홀로 무대에 남겨진다. 그리고 그녀가 무대 중앙 뒤쪽에 위치한 창 속으로 들어가려는 듯 서서히 걸어갈 때 노란빛의 조명은 어두워지고 이내 암전 된다. 이러한 연출은 마치 이 무대를 신성하고 장엄한 고대 그리스의 신전으로 보이게 만든다. 실비아는 종아리까지 덮는 새하얀 침실용 실크 가운을 걸치고 있다. 그녀의 모습은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을 내리던 여사제를 연상시킨다. 사제는 필멸하는 인간과 불멸하는 신 사이를 연결하는 인물이다. 인간의 물음을 신에게 전달하고 신의 답변을 인간에게 전달한다. 완전한 인간도 완전한 신도 아닌 채 사이에 낀 존재로, 중간자이자 완전히 다른 두 존재를 연결하는 매개자이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딱팔딱 뛰는 내 가슴속에 있지/사랑이란 무엇일까?/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한강 작가의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 중) 사랑은 심장과 심장 사이를 연결하는 금실이다. 실비아는 금실을 꿰는 바늘이고, 실비아의 사랑은 금실, 바로 필립과 올리버를 연결하는 것이다. 극의 사건은 필립과 올리버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58년과 08년의 시간적 배경 모두에서 실비아는 자꾸만 멀어지는 둘을 끊임없이 실로 잇는 역할을 한다. 58년의 배경에서 처음 필립과 올리버의 만남도 실비아의 소개로 시작된다. 또한 자신의 게이 정체성을 회피하고 부정하는 필립이 자신과 마주할 수 있도록 연결한다. 08년의 실비아 또한 자신의 연인과의 중요한 약속까지 취소하고 이 둘의 관계 개선을 도우며, 결별한 필립과 올리버의 재회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그녀가 그녀 자신의 행복보다 남편과 동료, 혹은 친구들의 행복을 바라는 점, 그것을 위해 진실과 용감히 마주치는 행동은 모두 그녀의 사랑의 형태이다. 그녀는 스스로 타인과 연결할 수 없는 자들을 엮고 꿰어주며 역할을 다하고 있다.


사랑의 비물질성, 그리고 물질화

58년의 필립은 우발적으로 올리버에게 잘못된 방식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여 사이가 어긋난 이후,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교정하기 위해 신경정신과에 방문하여 심리 검사를 진행한다. 여기에서 의사가 사용한 필립을 진단하는 질문들은 대부분 ‘성행위’와 관련된 것들이다. 동성애를 성도착증으로 규정하고 성도착증을 유발했을 법한 유년기 트라우마가 필연적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검사를 진행한다. 검사지에는 변태적 성행위, 그 행위를 향한 욕망의 소유 여부만을 묻는 질문들 뿐이다. 육체는 물질적이다. 성행위도 물질적이다. 그의 동성애적 성향은 오로지 물질적인 것들로만 치환된다. 필립은 의사에게 주저하듯이, 그러나 분명하게 말한다. 물론 육체적이고 성적인 끌림이 존재하였지만 그 너머에 더 큰 영혼의 이끌림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사는 모조리 무시하고 게이들의 전유물이자 상징이라 여겨지는 기이한 성행위들에 대한 언급만을 이어간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특성은 비물질성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으며 피부로 느낄 수 없지만, 오감 너머 6번째 감각이라 불리는 직관으로 느껴야 하는 성질이다. 비물질적인 것은 돈으로 치환될 수 없기 때문에 경제성을 측정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수량으로 표현 불가한 것이다. 그래서 비상식적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의 행동은 제삼자의 시선에서는 아무 이익도 주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동들의 시작은 바로 사랑이 서로의 성장을 바라고 서로에게 더 나은 내일을 선물해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는 전제이다. 방식은 각자마다 다르겠지만 비물질성이라는 특성에 비추어 보면 08년의 필립과 올리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올리버는 필립과 교제 중에 수많은 낯선 남자들과 일회성 관계를 맺는다. 단 한 번으로 끝날 변태적인 육체적 관계를 탐하는 도착증적 행태를 보이고, 이것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충동성을 제어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필립과 몇 번이고 결별을 반복하지만 좀처럼 자신의 습관을 고치지 못한다. 필립은 올리버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도 올리버에게 일종의 심심풀이 대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버가 지속적이고 정신적으로 마음을 나누고 애정을 갖는 상대는 필립 하나이다.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반성 끝에 자신의 잘못된 행동들에 대한 고백과 반성,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필립과의 굳건하고 믿음직한 재결합을 한다. 올리버는 낯선 이들과의 관계에서는 변태적 롤플레잉을 한다. 가령 1막에서는 나치 코스튬을 한 배우를 섭외하여 가학-피학적 성관계를 맺으려 하지만 수치심을 느끼고 중단한다. 도착적인 성행위만이 존재하는 관계는 극도로 물질적이기에 진정한 사랑에 닿을 수 없는 가짜이다. 그러나 극 중에서 필립과 올리버가 육체적 관계를 맺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의 관계는 물질적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이다. 오직 마지막 암전 직전 포옹만이 존재할 뿐이다. 포옹은 가슴과 가슴이 맞닿아 서로의 심장박동이 가장 잘 느껴지는 행위이다. 신뢰하는, 사랑하는 이들과만 할 수 있는 행위인 포옹은 심장과 심장이 연결되어 비언어로 소통에 성공하는 순간이다. 이것이 바로 08년의 필립과 올리버를 통해 알 수 있는 사랑의 비물질성이다. 또한 이는 필립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올리버의 실수들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변화와 성장을 보여주고 다시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이다.


시대의 흐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58년과 08년의 시간적 배경이 번갈아 가며 무대 위로 올라오는 이 극은 돌림노래와 같은 구조를 보여준다. 동일한 인물이 동일한 대사를 발화하지만 시대 내에서 그 말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사회와 사람들의 환경과 인식이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인물들은 같은 선택지 내에서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하고, 같은 선택을 하더라도 선택의 이유가 완전히 다르다. 전자의 예시로 필립의 아프리카 여행을 들 수 있다. 58년의 필립은 자신이 나고 자란 브라이튼 밖을 벗어난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아주 좁은 땅에 갇혀 사고조차 갇혀버린 채 자신을 억압한다. 올리버가 들려주는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도 그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겨우 던질 뿐이다. 후자의 예시로 08년의 필립은 아프리카 여행도 다녀오고 더 넓은 세계를 즐기며 살고 있다. 세계화의 영향이 사람들의 사고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58년의 실비아는 현재의 가정에서 결핍을 느끼고 더 완벽한 가정을 위해 아이를 원한다. 출산과 양육을 일종의 의무로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08년의 실비아에게 아이는 가정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가 아니며, 부부간의 상호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 사항이다.

절대 영원의 윤리와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 08년의 올리버는 필립과 이별한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웹사이트에서 성인물 배우를 고용하여 가학-피학적 성행위를 즐기려 한다. 다양한 성적 페티시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배역이 존재하고 필립은 나치 제복을 입은 군인을 선택한다. 무대 위에서 성인물 배우는 매우 우스꽝스럽고 한심하게 연출된다. 나치는 세계 대전 당시 성소수자들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하여 대학살을 감행하였다. 공포와 권위의 대상이었던 나치는 58년의 사회에서는 언급조차 불가능한 금기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08년 올리버의 집 안에서는 그저 섹스 토이에 불과하다. 만약 58년이었다면 이러한 나치 제복 판타지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적 자유가 존재하는 지금, 위 사항에 대해서는 논란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돈만 지불한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또한 필립이 말하는 ‘질병’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도 변화하였다. 58년의 필립은 동성애라는 질병에 감염이 되었다고 간주가 된다. 의사는 필립에게 비위생적이고 충격적인 치료를 가하여 이성애자라는 정상 범주로 회복시키려 한다. 그러나 08년의 필립은 농담조로 자신이 “사랑의 열병”에 걸렸다고 말하는 자조적인 태도를 보인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동성인 것에 방점을 두는 것보다 상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열렬함을 강조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질병’이라는 단어는 사회적 악에서 개인적 감정 묘사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이것이 상징하는 윤리와 도덕,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필립과 올리버의 사랑이 공동체 내에서 수용되어 존중받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준다.

만약 58년의 극만 존재했다면 이 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한 근대의 낭만주의 작품들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감동만을 자극하는 신파극에 그쳐 금세 잊힐, 작품성이 떨어지는 자극적인 상업극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적 배경을 달리 한 두 극의 교차는 <프라이드>를 특별하게 만든다. 58년의 극을 중심으로 08년의 극이 설명을 보충하고 설명하는 기능을 해주고 있다. 자칫 신파로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 08년의 유쾌한 캐릭터들의 성격과 현대적 유머를 통해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는 관객이 극과 거리를 두게 하고, 이 연극이 사회를 객관적으로 관조하는 지표로 기능하도록 한다. 이 극이 수많은 퀴어 연극들과 비교하여 고평가 받는 지점이다. 또한 과거와 현재는 단절적 관계가 아니고 끝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사회상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구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둘은 서로에게 기대어 엮이며 더 나은 미래를 엮어나갈 것이라고, 극이 끝난 후에도 관객들이 기대할 수 있게 한다. 58년과 08년이 그러하였듯이, 78년과 28년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세상에는 1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광년을 느끼는 너와 나가 있다. 여기에서 ‘너’는 타인이 아닌 실체적인 나일 수도 있다. 우리들은 거리감을 극복하지 못 한 채 기만과 위선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다. 무언가를 감쪽같이 숨겨야 한다는 압박, 진정한 나 자신을 표출할 수 없음은 얼마나 슬픈가? 이 광년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아주 빠른 속도로 대기권을 뚫고 발사되는 우주선이 필요할 것이며, 그 우주선은 심장과 심장 사이를 이어주는 금실을 매단 바늘일 것이다. <프라이드>에서 그 우주선에 타 있는 인물은 실비아였다. 실비아는 나와 타인, 나와 나 자신 등 많은 가슴 사이를 금실로 엮어주고 다닌 자였다. Pride, 자부심은 자신이 세상을 위하여 쓸모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한 일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내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내가 움직여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소용이 있다는 것이다. 자부심은 우리가 남을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실비아에게는 프라이드가 있다. 그리고 필립과 올리버도 프라이드를 되찾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빠른 우주선이라도 오랜 세월이 걸리겠지만, 내가 너를 안다는 착각을 극복하고 광년을 뛰어넘어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답하고 싶다.

2025년 5월 14일 19시 30분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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