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붉은빛을 지워내기 위해서는

한국 희곡, 차범석의 「산불」과 이강백의 「칠산리」

by Suzanne

*2022년 고등학교 현대문학감상 과목에서 수행평가로 제출한 도서 선정 엮어 읽기 보고서입니다. 한국현대문학 희곡 갈래를 선택하여 작성했습니다.


1960-70년대 한국 연극, 극 문학에서는 차범석을 제외하고 말을 할 수 없다. 그는 해방 이후 이념 갈등과 한반도의 분열, 전쟁의 상처를 사실주의적으로 그려내는데 집중하였다.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피폐해진 민중의 삶을 조명하며 절망적인 현실을 가감 없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었다. 전란 후 민중의 모습과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문학으로 옮기는 데에 주목한 또 다른 극작가 중 하나로 이강백을 들 수 있다. 이강백의 작품 창작 주요 소재, 주제 또한 좌우익의 대립과 이데올로기로 인한 민중의 상처였다. 하지만 두 작가의 극작 목적에는 뚜렷한 노선의 차이가 보인다. 각 작품이 궁극적으로 이데올로기 갈등을 주제로 작품을 창작하여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는지 사회문화적, 상호텍스트적 맥락에서 비교하여 분석해 본다.


극작가 이강백은 1947년 12월 1일 전주에서 출생하였고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다섯」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우화의 기법을 주로 사용하여 비사실주의적인 작품들을 창작, ‘알레고리의 작가’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고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정교한 논리로 구성한 작품 세계를 가졌다. 80년대에 이르러 삶의 본질적인 태도를 묻는 형이상학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의 탐구로 접근하여 작품을 창작하였는데, 이를 민족 현실에 적용하여 「칠산리」에서는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묘사 없이도 분단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우리의 의식 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칠산리>는 1989년 발표된 희곡으로, 버려진 빨갱이의 자식들을 거두어 키우다 죽은 어머니의 묘 이장 문제로 행정 당국과 자식들이 대립하는 내용이다. 빨갱이의 자식들이라며 산에 버려졌다가 어미의 손에 거두어져 자란 일곱 남매는 어머니의 묘 이장 문제로 인해 고향 칠산리에 다시 모이게 된다. 어머니는 오래전 일곱 남매를 길러내기 위하여 노력하다 결국 아사하였다. 칠산리의 발전, 개발을 위하여 어미의 묘를 이장해야 한다는 마을 측과 어머니의 묘를 옮길 수 없다는 남매들은 팽팽하게 대립하며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결국 남매들은 어머니의 유골을 화장하여 유골을 나눠갖기로 하고, 칠산리에 새하얀 눈이 내리며 극은 막을 내린다.


일곱 남매는 각각 빨치산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일곱 봉우리의 산속에 버려졌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간절히 갖고 싶어 했지만 불임이었고 남편 또한 전쟁 통에 사망하였다. 그리하여 모두가 피하는 빨갱이의 자식을 사랑으로 거둘 수 있었고,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다가 먹을 것이 없어 아사하였다. 어머니는 이념적 대립과 상관없이 상처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안는 것과 그러한 존재를 상징한다. 작가는 이러한 모성애, 무조건적인 포용적 사랑을 이념 갈등 해소에 필요한 태도로 강조한다. 어머니의 자식들은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힘들게 살아왔다. 특히나 막내아들은 급진적인 사회 운동을 해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있었다. (“글세, 빨갱이의 자식들이 하는 짓은 뭐든지 나쁘게만 보이겠지!”, “면장님, 저희는 사상이 위험한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 자는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있죠.”, “그래서 우리는 그놈을 붙잡아 조용히 이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변 인물들의 행보 또한 우리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과거 회상 장면에 등장하는 면장은, 뚜렷한 사상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우익과 좌익 중 한 사상의 편을 들어 사회의 혼란을 잠재워야 한다고 믿으며 일곱 남매에게 혐오적인 폭력을 가하는 인물이다. 이념 대립을 정치 수단으로 사용하는 권력자들의 앞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막내아들을 잡기 위해 칠산리에 온 늙은 형사는 무조건적으로 공산주의에 혐오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빨갱이의 자식들이죠. 그들은 어렸을 땐 얌전히 있다가, 어른만 되면 아비를 닮아 위험한 사상을 갖곤 합니다.”) 칠산리 주민들은 전란 당시 공산주의자들의 소굴이었다는 오명이 도시의 발전을 저해하였다고 생각하고 일곱 남매와 어머니의 존재를 칠산리에서 지우고자 한다.(“예전 난리 땐 빨갱이 소굴이었다고 냉대와 멸시만 받던 곳인데...”, “칠산리 출신이라면 혼사길이 막히고, 출세길이 막히고, 살 길마저 막힙니다.”,“사실은 난리를 일으킨 건 칠산리 사람들이 아닌데, 온갖 피해는 그들이 당하고 있는 셈이죠.”)


이러한 과정에서 ‘칠산리’라는 공간은 이념적 대립으로 분열되고 상처받은 우리 국토를 대유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극 중에는 ‘새’라는 매개가 등장한다.(“추수 때라서 새들이 극성이거든요.” “약이 오른 사람들이 저렇게 총을 쏘아 새를 잡습니다.”)

‘새’는 권력자들이 정치 수단으로써 사용하는 이데올로기 갈등 조장을 의미한다. 새로 인하여 ‘총’이라는 폭력적 수단으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배척하다 사람을 맞추고 사망 사고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타 지역 주민과 심각한 갈등을 빚는다.(“마침 칠산리 사람이 들판을 지나가다가 새총을 맞고 눈이 멀었어요. 그러니깐 칠산리 사람들이 가만있겠습니까... 평지 쪽 사람이 칠산리 산으로 도토리를 따러갔다가 실컷 두들겨 맞았는데...”) 자식들은 만성 피로, 소화 장애, 두통, 몸살 등 잔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넷째 아들은 그 이유로 ‘숙변’을 말한다. 여기서 숙변은 배출되지 못 한 묵은 대변으로 꽉 막힌 채 위장을 답답하게 만드는 사회의 여전한 이데올로기 대립 문제를 상징한다. 숙변을 배출시킬 통치약의 재료로 칠산리 산골에서 구할 수 있는 약초를 사용하는 것 역시 해결 방법이 근본적 원인의 장소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말부에서 유골을 나눠갖는 행위 또한 칠산리라는 물리적 공간을 정신적 공간으로 치환하여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산불>과 <칠산리>는 권력자들이 정치 선전 도구로 이데올로기 갈등을 조장하였고 그로 인해 서로 공격하고 대립하여 고통받는 민중들의 삶 자체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또한 산불의 시간적 배경과 칠산리의 과거 회상 장면의 시간적 배경은 한국 전쟁이 일어난 50년대 초반으로 동일한 시간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공간적 배경 또한 한반도 내에서 가장 치열하게 이념적 대립이 이루어지고 있는 촌락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개 양상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산불은 원초적 욕망에 의한 육체적 사랑을 현실적으로 제시하였고 비극적이고 희망 없는 결말에서 회의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대립의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았고 아무런 교훈이나 메시지 또한 남기지 않은 채 절망적인 상황을 그대로 묘사만 하였다. 반면 칠산리는 어머니의 희생적 사랑을 등장시켰다. 어머니의 죽음이 등장하나 죽음까지 불사한 모성애를 표본으로 삼아 대립 극복하고 한민족이 화합할 것을 말했다. 작가의 표현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차범석은 사실주의 작가로서 다큐멘터리처럼 상황을 현실적이고 자세하게 묘사하여 민중의 상처를 거침없이 드러내었다면, 이강백은 우화적, 상징적 표현을 통해 동족상잔의 아픔을 보다 덜 파괴적으로 묘사하였다.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미래에 지향해야 할 갈등 해소의 태도를 제시하고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차범석의 산불은 1963년에, 이강백의 칠산리는 1989년에 탈고되었다. 26년의 세월 동안 한반도의 이데올로기 갈등은 나아진 것이 없었고 여전히 이데올로기 갈등 조장을 통하여 권력을 유지하고 있던 군부 독재 정권이 한반도의 남쪽을 통치하고 있었다. 차범석은 한반도를 비극적이고 씨앗이 뿌리내릴 수 없는 공간으로 보았고, 이강백은 그러한 한반도를 끌어안았다. 극작가들이 자신의 창작물을 통하여 사회에 계속하여 메시지를 던졌고 민중의 이야기를 널리 퍼뜨렸기에 우리는 1989년으로부터 33년이 지난 지금의 진보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게 된 것이다. 아직도 정치권에서는 이데올로기로 민중을 조종하고자 하는 전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대로 속아 넘어가던 그때의 민중이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칠산리에 내린 '흰 눈'처럼 이분법이 사라진 채 소외된 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민중이 되어야 한다. 빨갱이가 한국 사회에서 사라지는 때는 바로, 빨갱이의 존재를 사회에서 억지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빨갱이와 파랭이의 이분법적 개념이 완전히 사람들 머릿속에서 지워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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