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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게 Feb 04. 2024

너한테 축의금 내지 말걸 그랬어

축의금은 얼마를 내야 하는 걸까

| 10년 만에 연락온 그녀


하나도 안 친한 고등학교 동창이 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도 안 친했고, 졸업 후 10년 동안도 연락 한 번 없을 정도로 그냥 남남이었다. 함께 한 추억이라고는 단 한 조각도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 결혼해!" 하며 연락이 왔다. 이름도 가물가물하던 사람인데 나를 갑자기 결혼식에 초대하니 어리둥절했다. 결혼식은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한단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도 볼 겸 참석했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도착한 결혼식장에는 그녀가 거쳐온 조직들 별로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고, 다. 'ㅇㅇ고등학교', 'ㅇㅇ대학교', 'ㅇㅇ대학원', 'ㅇㅇ 회사' 등등. 테이블당 한 10명 정도의 인원이 앉을 수 있었기에, '아, 사람 수 맞추려고 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잔칫날에 내가 괜히 베베 꼬인 생각을 하는 것 같아 괜히 기분만 더 안 좋아졌다만, 정말, 단 한 번의 교류도 없던 사람인지라. 그 자리에 앉아있을수록, 그냥 머릿 수 채우려고 초대받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초대를 수락한 내가 잘못이지 뭐.




| 10만 원 미만이면 손절이라고?


곧 결혼을 앞둔 남자 회사동기가 흘리듯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야, 동기면 10만 원은 기본이지. 10만 원 아래로 내면 그건 다시 안 보자는 거 아니냐." 비슷한 월급 받고, 비슷한 시기에 돈 벌기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축의금의 금액은 암묵적으로 정액화된다. 피차 서로 얼마 버는지 아니까, 비슷한 금액 내자고. 한동안은 동기들의 결혼식에 가면, 하객으로 간 우리들의 대화 주제는 "너 얼마 냈어?"로 물꼬를 텄다. 그 동조압력(peer pressure)은 너무나 강력한 것이라, 나도 덩달아 분에 넘치는 축의금을 낸 적도 있더란다. '아, 친구 관계를 유지하려면 이 정도는 내야 하는 거구나.' 하면서.


친한 고등학교 친구는 금융공기업을 다닌다. 돈을 많이 받는 건 아는데, 그 동기들도 다 같이 그 뽕에 차서, 동기들 결혼식에 내는 금액이 20만 원으로 정해져 있다시피 하단다. 그 말을 듣고 "20만 원? 좀 세지 않아? "라고는 했지만, 그 친구도 축의금을 내는 기준을 처음 정립하는 사회초년생이다 보니 그냥 갈 때마다 20만 원을 따박따박 내고 있더란다.




| 축의금, 그럼 대체 얼마를 내야 될까


내가 느낀 바로는,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6년 전쯤부터 이미 회사 사람들 간에 통념상 정해진 금액은 10만 원이었다. 김불꽃 작가님이 쓴 <예의 없는 새끼들 때문에 열받아서 쓴 생활 예절>을 읽고 피식 웃은 기억을 공유한다. 제목부터가 강렬한데, 여기서 정해준 축의금 금액은 다음과 같다.


-기본 : 5만 원
-좀 친하다 : 5만 원 이상
-진짜 친하다 : 10만 원 이상
-부랄친구다 : 15만 원 이상
-원수다 : 알아서 해라


일단 '왕복 2시간 걸리는 거리를 달려왔으면 인간적으로 축의금을 받지 말라'는 대목이나, '학생이나 취준생이라서 형편이 안되면 미리 귀띔을 해서 오해가 생기지 않게 하라'는 대목 등, 뭔가 딱 정해지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서도 규칙을 정해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럼 진짜 이렇게 딱딱 정해진 금액을 내면 되는 걸까?




| 현대판 웨딩파티의 입장료, 축의금


축의금을 낼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이 사람이 어디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느냐'였다. 삐까번쩍하고 딱 봐도 비싼 호텔, 유부남녀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웨딩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로 추정해 보았을 때 대관료가 억 소리 나는 곳에서 진행되는 결혼식 같은 경우에는 봉투 속 내 축의금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다. 나는 그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러 간 건데, '식비 원금도 회수 안 된다'는 말을 들을까 걱정하고 있다니.


까놓고 말하자면, 결혼식장을 그런 곳으로 잡은 것도 비싸고 화려한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그 사람의 선택이고, 그건 존중한다만, 그 부담을 하객에게 돌리려는 이상한 심보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결혼식 비용을 하객의 축의금으로 충당하려는 문화는 이미 꽤 오래된 것 같다. 축의금 5만 원 내놓고 사돈에 팔촌까지 불러서 뷔페를 싹쓸이하는 건 누가 봐도 도의적인 행동이 아니지만 (바람 핀 전남친 결혼식이면 그래도 된다), 마치 축의금이 결혼식의 입장료 같은 개념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 축의금 적게 내도 유지될 관계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당연히 있다고 본다. 고의적으로 일부러 적게 내라는 게 아니라, 각자의 형편과 상황에 따라 적게 내게 되더라도 금액과 관련해서 부담이나 꼽(?)을 주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오해하지 않을 관계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절대적인 금액 때문에 정리될 관계라면, 애초에 정리되는 게 맞다.


축의금 봉투에 돈을 넣는 순간은, '우리가 얼마짜리 관계'인가를 확정 짓는 순간 같아서 하객 입장에서도 부담감이 몰려온다. 나는 이 사람과 계속 가까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그럴 형편이 안 될 때면 참 난감하다. 그런 마음을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당사자에게 일일이 전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린 것은, '축의금 액수 때문에 정리될 관계였으면 어차피 언젠가는 정리될 관계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머리 아픈 고민 때문에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물질적인 것으로 규정짓고 싶지도 않다. 가까운 사이라면, 때때로의 만남 속에서 충분한 의사소통이 필요한 이유다. '내가 요즘 형편이 이런데 진심으로 결혼 축하한다.' 라던지.


혹여나 내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는 내 친한 사람들이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갔으면 좋겠다. 내 분에 넘치는 결혼식을 열어놓고 축하하러 와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기도 싫고, 그냥 체면치레 없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고 싶다.







| 축의금의 역사


축의금, 즉 부조는 우리나라의 상부상조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과거에 결혼 잔치처럼 큰 일을 치를 때 참석하는 사람들이 국수 등 음식을 들고 가거나 일손을 돕는 등 십시일반처럼 돕는 품앗이 성격이 강했다고. 물건이건 돈이건 상관없이, 자신의 형편에 따라 돕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순수한 '예'의 개념이었다고 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3만 원대로 충분하던 축의금의 금액이 10만 원으로 오른 걸 보면 참 인플레이션을 격하게 겪은 듯싶다. "요즘 결혼 축의금 얼마 내나"라는 식의 기사 제목이 쏟아지는 만큼, '얼마를 내야 안전한 금액인지' 많이들 궁금해하지만, 그냥 본인 마음 내키는 대로 내는 대신 마음 표현을 충분히 하자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내가 결혼식 하는 입장이라면,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고 싶지, '아 축의금 아깝게...'라는 생각을 하면서 꾸역꾸역 억지로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억지 축하를 받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전에 한 달만 일하고, 축의금 챙기고 퇴사한 신입 때문에 회사 동료들이 분노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참. 정말로 축의금만 챙기려고 회사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안타깝다만, 나중에 아까울 돈이면 하객 입장에서도 그냥 안 내거나 아깝지 않을 금액만 내는 게 속 편하지 않겠나. 축의금도 결국 '계'의 개념이다. 결혼한 이들은 '누가 얼마 냈나'를 엑셀에 정리해 놓고, 그 사람의 결혼식이 되면 '얘가 내 결혼식 때 얼마 냈더라'를 엑셀에서 뒤적거려 딱 그만큼의 금액을 낸다. 그만큼 '나중에까지 내가 이 사람과의 관계가 지속될 것인가, 오래오래 볼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면 자신만의 기준이 설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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