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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게 Jan 19. 2024

왜 항상 부족한 기분이 들까

지독하디 지독한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

| '충분하지 않다'는 기분


생각해 보면 살면서 내가 '완벽하게 준비되었다'는 기분이 든 적이 없는 것 같다. 수능을 2개 틀렸을 때도, 연세대에 입학했을 때도, 서류랑 합숙면접까지 당당히 통과하고 나서 대외활동을 할 때도, 인턴을 할 때도, 치열한 취준 과정을 뚫고 입사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도, 승진을 해도, 더 큰 회사로 이직을 해도, 내가 부족하다는 기분은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계속 목표를 설정하고, 계속 달성했다. 하지만 이루는 즉시 과거의 목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토록 입사를 바랐던 회사도 그랬고,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자취방도 그랬다. "이것만 이루면 나는 이제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다그쳐오기를 수십 번. 하지만 손에 쥔 모래처럼, 그 알량한 자기 만족감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는 했다.


내가 항상 부족하다는 기분은, 비교에서 나왔다. 영어 좀 한다 치면 언제나 나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외국에서 살다 온 애들, 모의유엔대회 우승자 등등 주변의 번쩍번쩍한 전적을 가진 사람들은 나의 영어에 대한 사랑을 의기소침으로 바꿔놓기 충분했다. 영화 좀 좋아한다 치면 나보다 진심엔 친구들에 수두룩했다. 영화 관련 책을 쓴 친구도 있었고, 영화를 직접 찍은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나의 취미와 관심사는 한순간에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 친구들처럼 회계사나 변호사 자격증을 따면 좀 나아질까 생각도 해봤다. 연봉이 더 높아지면 더 나아질까 기대감을 갖고 이뤄봤다. 하지만 이내, 그건 겉으로 보이는 스킬 셋이 아니라 내면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 가면증후군의 증상


가면증후군의 가장 큰 증상은, 주변의 칭찬을 빈말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이룬 성과를 '운'의 영역으로 돌린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여 도전을 무서워한다. 이런 두려움은 곧 강박이 되어 완벽주의적인 성향으로 스스로를 몰아치기도 한다.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 더 열심히, 더 뛰어나야 한다는 압박감. 그게 바로 가면증후군이 주는 부작용이다.


'남들이 나를 이렇게 봐야 하니까 두 배, 세 배 더 노력해야 해'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다가 지쳐버리고 만다. 내가 보여지고 싶은 모습과,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괴리를 넓혀갈 때 우리는 지독한 가면증후군의 늪에 빠지고 만다.




| 자기 연민의 힘


자기 연민. 내가 가장 효과를 많이 본 방법이다. 나 스스로에게 괜찮아, 그렇게 느낄 수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마음.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잘 안 됐을 때, 업무에서 실수를 했을 때, "난 정말 바보야, 한심해"라고 자책하는 목소리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왔던 것 같다.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건설적으로 행동이 변하기보다는, 스스로 계속해서 위축되기만 한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굳어져 간다.


그런 잔인한 말들 대신,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어, 실수할 수 있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실수였어. 다음에 더 조심하면 돼. 괜찮아, 세상이 무너지는 거 아니야." 그렇게 토닥토닥, 자신을 좀 감싸줄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높은 기대를 갖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계속 몰아붙이기만 하다가는 빨리 갈 수는 있어도 오래가지는 못하더라.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왜 그런 생각이 들지?' 스스로 물어봐주고, 그 근거가 자신의 상상으로 이뤄져 있다면 비이성적인 생각을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멍청해서 그래'라는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면, 그렇지 않은 구체적인 이유들을 한 번 쭉 적어보는 거다. 다만, 명확한 근거가 있다면, 예를 들어 나랑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들 특정한 자격증을 갖고 있는데 나만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 명료한 갭을 줄이기 위한 플랜을 짜면 되는 거다.




| 그냥 나를 사랑해 주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나를 사랑하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계속 타인의 눈을 통해 확인받고 싶어 했다. "와 너 그 학교 출신이야?", "너 그 회사 다녀?" 이런 껍데기 같은 가치들이, 결국 내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를 증명하는 보증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조직에 들어가서도 나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남들의 인정과 부러움은 찰나다. 그리고 나의 인생에 나만큼 관심 있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부모님도, 가장 가까운 친구도, 연인도 말이다. 나에게 이 자리가 어울릴까, 내가 나를 너무 번지르르하게 포장해서 나에게 과분한 것들을 갖게 된 거 아닐까, 다들 저렇게 잘하고 있는데 내가 보잘것없다는 게 언젠간 들통나면 어떡하지. 아이러니한 것은,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할 나 자신까지도 나를 깎아내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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