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집밥은 엄마의 온기입니다
아이들 밥을 잘 챙겨 먹이겠다는 생각은 늘 시간에 쫓기는 워킹맘에게 힘겨운 도전이자 부담입니다.
그렇다고 한창 크는 아이들에게 인스턴트 음식이나 밀키트를 연일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엄마 입장에서 아이들 먹거리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죠.
밑반찬은 시댁이나 친정에서 종종 수급 받는다 해도, 식탁에 메인 디쉬(main dish)는 필요하니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저녁 반찬 메뉴와 재료를 검색합니다.
워킹맘에게 굴소스는 필수템입니다. 고기 & 야채 굴고스 볶음은 가장 빠른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요리이니까요. 청경채, 숙주, 베이비 아스파라거스 등 따로 다듬지 않아도 되는 야채를 위주로 사곤 합니다. 시금치나 냉이도 먹이고 싶지만 이런 손이 많이 가는 야채는 주말에나 가끔 먹일 수 있는 사치템이죠. 굴고스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마트에서 파는 이금기 굴고스는 너무 짜더라구요. 좀 비싸지만 초록마을 프리미엄 굴소스는 덜 짤 뿐만 아니라 과일 농축액으로 단맛을 냈다고 라벨에 써져 있어 그나마 아이들 먹이기 좋습니다. 고기.야채 볶음은 15분 컷입니다.
두부 듬뿍 넣은 된장찌개는 자주 해줘도 아이들이 질려 하지 않습니다. 멸치 다싯물에 된장을 풀고 각종 야채와 두부를 넣으면 끝이니 20분 컷입니다. 물론 양파를 미리 까서 냉장고에 보관해 둔 것이 있다면 3분 정도 절약됩니다. 아이들 어릴 때는 시댁 형님의 친정 어머님께서 직접 담그신 전주 시골 된장을 감사히 얻어 먹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히는 요리는 달콤.짭조름한 불고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준비성 있게 전 날 저녁에 양념해서 재어 놓았으면 좋겠지만, 여러가지 생각할게 많고 바쁜데 어디 그러기가 쉽나요? 그냥 당일에 불고기를 먹이고 싶을 땐, 퇴근길에 고기 사와 5분 정도 양념에 재어 놨다가 바로 볶아도 맛만 있습니다.
카레는 일요일날 큰 냄비에 한 솥 끓여 놓고 퇴근이 좀 늦은 평일 날 간단히 데워서 밥에 듬뿍 얹어주곤 했습니다. 카레를 좀 더 자주 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이 손쉬운 카레를 혹여 아이들이 질려 할까봐 두려워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했던 것 같습니다. 카레 대용으로 짜장 소스도 종종 했는데, 짜장소스의 장점이라면 아이들이 싫어하는 각종 버섯이나 가지를 잔뜩 다져 넣어도 세상 모르고 맛있게 먹는다는 것입니다. 까망 소스의 위대한 위장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집에 있는 엄마들은 아이들 반찬을 더 잘 해서 먹일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이가 반찬 투정을 하면 다른 반찬을 대령해 주기도 하겠지요? 워킹맘의 아이들은 반찬 투정을 잘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본능적으로 이걸 안 먹으면 먹을게 없다는 걸 아니까요. 그렇다고 저희 아이들이라고 늘 밥을 잘 먹었던 건 아니고,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을 주면 "오늘은 별로 배가 안 고파"라며 할머니표 멸치볶음과 김만으로 밥을 먹기도 했답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다가 지하철 타고 퇴근해, 집에 와서 한 번 앉지도 못하고 급히 메인 디쉬를 한 후 이제 겨우 식탁에 앉아 한 숨 돌린 엄마는 더 이상은 할 수가 없으니까요. 아이도 알고 엄마도 압니다.
배가 고프면 다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워킹맘 아이들이 편식을 안 합니다. 주는 대로 먹어야 생존한다는걸 아니까요. 한 번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점심 급식 시간에 엄마들이 참관하는 날이 있었어요. 그 날 급식에 돼기고기 떡갈비가 나왔는데 좀 맛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오늘 나온 떡갈비는 맛이 좀 없으니 안 먹어도 된다고 양해를 해주셨어요. 그런데 저희 아이는 왠걸요. 다른 아이들 모두 안 먹는 식판 위의 떡갈비를 다 먹고, 짝궁이 안 먹으니 짝궁 식판의 떡갈비까지 가져다가 먹더라고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내심 미안했습니다. 제가 평소에 얼마나 밥을 대충 해줬으면 담임 선생님께서 맛이 없으니 안 먹어도 된다고 공표하신, 모든 아이들이 맛이 없어 남기는 떡갈비까지 혼자 맛있게 먹었을까요.
그날 저녁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별로 맛 없다고 하시던데, 너는 떡갈비가 맛 있었어?" 그랬더니 아이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맛 있어서 다 먹었어. 짝궁이 안 먹는다길래 짝궁 떡갈비까지 다 먹었어. 몇일 전에는 오징어 튀김이 나왔는데, 짝궁이 튀김옷만 먹고 오징어는 질기다고 안 먹어서 내가 걔가 남긴 오징어도 다 먹었어"
"역쉬~ 강하게 키우니 밖에서도 잘 먹고 다니는군ㅎㅎ"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엄마 마음이 편합니다. 엄마 마음이 편해야 아이 마음도 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