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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 Dec 30. 2020

2.3 음악과 영화로 영어를 공부한다?

음악, 영화, 책이 좋다면 영어 공부 더 많이 해야 하는 이유

10대 때 내 삶을 장악한 것은 두 가지, 영화와 음악이었다.

중학생 시절, 당시 전 국민의 영어 공부에 불을 지핀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바로 “오성식의 굿모닝 팝스”. 아침 6시에 팝 음악으로 영어 공부를 시켜주던 참으로 고마운 이 분 덕분에 팝송으로 영어 공부하기가 꽤 오래 유행했었다.
평소엔 클래식 음악이 절대적으로 많이 들리는 우리 집도 아침 6시에만은 라디오에서 팝송이 흘러나왔고, 클래식 음악이 지겨웠던 나는 이 프로그램이 구세주와 같아 열심히 들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은 처음 내가 갖게 된 팝 음악 테이프였다.
바로 이 “굿모닝 팝스”에서 ‘Sound of silence’라는 곡을 듣고 너무 좋다고 하자 엄마가 사이먼 앤 가펑클의 베스트 앨범 테이프를 사다 주신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엄마가 내 인생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것을 모르시겠지?

‘사이먼 앤 가펑클’로 시작해서 금세 다른 음악들로 옮겨간 나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걸쳐 얼터너티브 락, 브릿팝, 브리티시 락 등 주로 락 장르의 음악에 완전히 빠져 지냈다.
한창 야간 자율 학습 등으로 늦게까지 공부해야 했던 시기에 10시, 12시에 라디오에서 틀어 주던 음악들은 단비 같았고, 부산에 딱 하나 있던 ‘타워레코드’는 내겐 성지 같은 곳이었다.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타워레코드에서 Smashing pumpkins, Blur, Suede, The Verve 등 좋아하는 밴드들의 음반을 컬렉션을 모으듯 사 모았다.

이렇게 음반을 사모으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새로운 곡이나 밴드를 알게 되자 내가 좋아하는 이 음악들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졌다.
학교에서 비슷한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며 CD를 서로 빌리기도 했지만, 당시 내가 음악과 영화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상대는 다름 아닌 학교의 외국인 선생님이었다.

나는 외국어 고등학교 프랑스어과를 다녔는데, 외국어 고등학교이다 보니 외국어 수업 시수가 일반 고등학교에 비해 많았다. 영어와 프랑스어 모두 주 10시간 이상 수업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원어민 선생님이 진행하는 수업도 많았는데, 프랑스어 선생님인 A는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미국인 이어서 함께 하는 수업이 정말 많았다.
많은 수업을 함께 하며 이야기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 드라마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밴드들을 이야기하자 선생님이 잘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그 선생님의 나이는 아마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한창 부지런히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할 때인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건 나에겐 큰 행운이었다.

선생님의 음악과 영화에 대한 취향이 나와 비슷하다는 걸 안 후, 나는 당연히 수업도 무척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틈이 나면 외국인 선생님들의 교무실에 찾아가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좋은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새로운 밴드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렇게 문턱이 닳도록 교무실을 찾아가니 선생님도 내가 재미있었는지 더 많은 음악들을 소개해 주었다. 선생님이 소개해 준 밴드들, 음반들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범위가 더 넓어졌다.

뿐만 아니라 당시 내가 빠져 있던 미국 드라마 “엑스파일“은 미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던 터라, 새로운 에피소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컸다.
나는 “엑스파일”을 공중파 방송에서 더빙된 버전으로 보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영어로 방송해 주는 외국 채널 - Star TV라는 이름이었다 - 을 찾아 비디오로 녹화를 떠서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곤 했다. 자막도 없는 데다 처음 듣는 어려운 단어나 표현들도 많아서 보고 나면 항상 알쏭달쏭했는데, 이런 것들을 기억했다 외국인 선생님 A를 찾아가 물어보곤 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문화적인 맥락이나 구어적인 표현들을 함께 가르쳐 주었다. “엑스파일”을 좋아하는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추천해 주기도 했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외국인 선생님과 자주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나는 저렴하지 않았던 외국어 고등학교 학비 본전을 뽑았다고 볼 수 있다. 원어민 교사와 사교육으로 회화 수업을 하려면 얼마나 큰돈이 드는지 생각해 보면 말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 훨씬 대단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경험을 했다.
문화 콘텐츠를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새로운 콘텐츠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경험이다.
훗날 20대를 보내면서 여러 다른 나라에서 생활할 때 이때의 이 경험은 내게 자신감의 기반이 되었고, 도움을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 음악, 영화, 미술, 책 등 – 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비슷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사귀고, 내가 모르는 문화 콘텐츠에 대한 배움을 얻었다. 그리고 이것이 외국에서 학교 생활을 하고, 친구를 사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는 것을 느꼈다.
외국 생활에서도 한국에서도 나와 친구가 된 외국인들은 내가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호감을 느낀 것이 아니다. 영어로 내가 지닌 콘텐츠를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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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만국 공통의 언어다.
문화는 언어를 넘어선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그 콘텐츠를 전방위로 활용해 언어 학습에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실 이것이다.
문화 콘텐츠를 통해 영어 공부를 해서 영어를 잘하게 되면, 더욱 자유롭게 문화와 콘텐츠를 넘나 들며 내 영역과 지식을 넓힐 수 있다는 것.
책이 너무 좋아서 영어책도 열심히 읽다 보면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유가 영어 실력을 통해 주어지고, 음악이 너무 좋아서 음악에 대해 영어로 된 문서를 보거나 영상을 보며 파고들다 보면 늘어난 영어 실력으로 음악에 대한 더 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문화와 영어라는 언어의 신비로운 시너지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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