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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 Nov 15. 2020

2.1 50센트로 산 영어 독서 습관

책, 읽는 것만큼 고르는 습관도 중요하다

캐나다에 사는 동안 오히려 영어 책을 정가를 주고 산 적이 많지 않았다.

새 책을 사지 않아도 책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길을 걸어가다 '발견하는' 남의 집 책들이었다.

캐나다에서 길을 걸어가다 보면 집집마다 ‘garage sale’이라는 것이 열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사를 가거나 필요 없어진 물건들을 처분하는 말 그대로 창고 정리 세일이다.

이런 garage sale에는 가구나 그릇부터 책, 음반, 아이들이 입던 옷까지 정말 집안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아이템들이 나와 있었고, 고르다 보면 소위 ‘득템’도 가능했다.


또, 크고 작은 도서관들도 너무 오래된 책을 아주 싼 가격에 처분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도서관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모서리가 약간은 닳고, 책 뒤에는 옛날 식 대여 카드가 붙어 있는 책들.

이런 책들이 25센트, 50센트에 나왔고, 엄마는 이런 기회들을 통해 우리가 읽을 책들을 조금씩 구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도 그랬지만, 이렇게 헌 책을 살 때에도 엄마는 우리에게 읽고 싶은 책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엄마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훗날 여러 영어 학습법이나 일반적인 독서 교육법에 관해 공부하며 알게 되었다.

 엄마는 엄마도 모르는 사이, 우리에게 너무나 좋은 독서 습관을 길러주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바로,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하는 습관이다.


요즘은 워낙 사교육 시장이 발달했다 보니, 특정 시기나 특정 수준에 맞춰 읽을 수 있고 읽어야 하는 독서 리스트까지 제공되는 세상이다.

이렇게 누군가가 미리 만들어 놓은 독서 리스트에 맞춰 책을 읽으면 물론 마음의 안심이 된다. 지금 나 혹은 내 자녀의 수준에 딱 맞고, 내용과 학습효과도 이미 검증되었고 무엇보다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읽고 있다고 하니 걱정할 부분이 없다. 편하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장점도 크지만 단점도 크다.

우선,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찾아보는 기회가 너무 줄어든다.


책은 읽는 것만큼 고르는 시간, 고르는 경험도 중요하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소재나 주제를 스스로 알고 그에 맞아 보이는 책을 고르는 과정이나, 표지와 제목 등을 보고 어떤 책일지 상상해 보는 시간은 책을 읽는 과정만큼 이나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과정이 모두 통합된 경험이 바로 ‘책을 읽는 경험’이다.


이미 정해진 독서 리스트에 맞춰 책을 읽으면 더 많은 책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읽는 소중한 통합 경험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은 삭제된 ‘읽기’ 뿐이다.



당시 초등학교 1-2학년인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책을 읽었다거나, 엄청나게 많은 양의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주로 그림 위주로 글은 5-6줄 정도인 책들로 시작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책의 수준이 아니었다. 영어책이 내 주위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영어책이라는 존재로 조각조각 내 주위에 남아 있었다.

도서관에서 사 온 낡은 책을 읽고 있으면 캐나다 도서관에서 놀며 책을 읽던 추억이 되돌아왔고, 캐나다에서 즐겨 읽던 캐릭터 시리즈 책들을 읽으면 그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너무 궁금해졌다.



지금처럼 국내 서점에서 웬만한 영어책을 쉽게 구할 수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영어책은 사실 제한적이었다. 그렇지만 때로는 매우 제한이 많은 상황이 더 큰 어드밴티지를 주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이랬다.

- 책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 수 있었다. 아니, 읽어야만 했다.

- 반복해서 읽었기 때문에 한 권을 읽어도 샅샅이 읽었다. 그림도 글도 보고 또 보면서 그 의미를 새겼다.

- 책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갈증이 심해졌다. 더 읽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50센트 정도 주고 샀을 이미 낡은 도서관의 책들을 너덜너덜 해 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림을 따라 그려 보기도 했다.


뒤에서 좀 더 비중 있게 다룰 예정이지만, 책 읽기야 말로 언어를 학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는 물론이고 부모님도 이걸 알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영어와 멀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50센트.

한국 돈으로 500원 정도 주고 산 오래된 책들이 지금의 내 영어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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