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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e May 21. 2020

코로나 단상

코로나가 일깨워 준 것들

누가 2020년을 희망찬 새 10년이라 했는가?

Happy new decade를 외쳤던게 엊그제같은데 정신차려 보니 시간은 5월 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힘겨웠던 3월이 지나고 코로나 확진자 수도 어느 정도 잠잠해지고 있고 아직 재확산의 불안을 떨칠 수는 없지만 학생들의 등교개시를 검토하거나 회사들은 출근을 재개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코로나발 경기침체와 여타의 불안감으로 기업들의 채용이 얼어붙으면서 딱 일년만 놀려던 나는 생각보다 재취업하기 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다행히 채용이 확정되어 다음주부터는 출근하게 되었다. 모두에게 잔인한 경험이지만 어쩌면 올해 이 전염병의 경험이 앞으로는 자주 겪게 될 수도 있는 사건들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이 글을 적어본다. 



생각보다 한국은 발전된 나라였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 모든게 불만이었던 내가 생각한 것보다 공중보건과 의료에 있어서만큼은 한국은 선진국에 가까운 나라였다. 신천지로 인해 급격히 확산된 2월 중순부터 3월에 피크를 찍을 때만 해도 다른 나라들이 걱정을 해줬지만 상황은 빠르게 진전되었다. 초반의 빠른 확진자 증가는 상대적으로 우리가 그만큼 검사를 많이 실시한 결과이기도 했다. 메르스 이후 감염병에 대한 대처방안과 중증 환자를 위한 병상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고 거기에 의료진들의 헌신과 한국인 특유의 근성을 더해 실질 확인자수는 4월말부터는 빠르게 줄었고 사망률도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질적 양적으로 검사를 실시할 수 있었던 것도 놀라웠다. 빠르고 안전하게 검사할 수 있는 드라이브스루 검진이나 워크스루 검진 같은 아이디어도 실행했다. 한국보다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는 재외동포들도 전세기(를 띄우는 날을 보게 되다니)로 수송해 검진, 2주간 의무 격리를 통해 안전하게 데려왔다. 자가격리 기간에는 키트가 제공되었고 무엇보다 내가 감명받은 것은 그 키트 안에 단지 식료품 등 생필품 뿐 아니라 마음건강을 챙길 수 있는 색칠도구 같은 것까지 세심하게 제공되었다는 것이다. 매일 진행되는 질병본부의 어린이날 특별 기획인 어린이 질문답변도 신선하고 귀여웠다. 아이부터 어른, 재외동포까지 한사람의 국민으로써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 들 수 없는 것이다. 


국민들의 대응도 여타 위기 때처럼 침착하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초기의 마스크 품귀 및 사재기를 제외하면 다른 나라처럼 마트의 물품이 동이 나는 일도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각자 손씻기나 마스크 착용 등 개인위생에 만전을 기하면서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한마음으로 움직였다. 마치 IMF때 금모으기 운동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런 개개인의 노력과 방역당국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코로나 정국에서도 안전하게 투표를 치러낼 수 있었다. 


기성세대인 나에게는 한국이란 아직 선진국에 이르지 못한, 그래서 끊임없이 주변국의 인정을 갈구하는 나라였는데 현실의 한국은 이미 BTS를 배출한,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그래서 누구의 인정도 필요하지 않은 어떤 면에 있어서는 선진국이었던 것을 나만 몰랐다.


어떤 나라들은 생각보다 선진국이 아니었다. 

반면 코로나는 우리가 선진국이라 생각했던 나라들이 사실은 그렇게 선진국이 아님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코로나19를 저 아시아 어디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미국과 유럽에서는 3월부터 수많은 확진자가 발생했을 뿐더러 사망율이 두자릿수, 사망자가 다섯자릿수를 넘어서고 있는데도 제대로 검진이나 처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워킹데드에 출연한 모 배우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검사를 받기 위해 구급차를 불렀지만 900여 달러에 이르는 비용만 청구된 채 검사는 정작 받지 못한 상황을 공유했다. 개인위생을 위해 마스크를 의무화한 한국과 달리 마스크를 구하기도 어렵고 여전히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고 사재기를 하는 통에 화장실 화장지가 동이 나는 등 시민의식도 사라졌다. 


쿨해 보였던 그들 내부에 존재하던 인종차별과 혐오 문제도 드러났다. 코로나 이전에는 겉으로라도 인종차별하지 않는 척 했지만 코로나를 기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시아 인종을 향해 각종 차별과 혐오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아닌 사람이 더 많을 거라 믿고 싶지만) 이 기회에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해보려는 비전문가 트럼프 대통령의 Daily briefing을 통해 확산된 근거없는 치료법을 믿고 따라하다 피해자들이 생기는 등 도저히 21세기에 일어나리라고 생각치 못한 비이성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미국과 유럽은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여전히 심각한 상황임에도 경제적 이유로 사람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밖에 없다. Lockdown조치 이후 미국의 실직율은 14%가 넘었다. 캐나다에서 일하는 캐나다인 개발자 친구도 코로나와 동시에 30%의 동료와 함께 일자리를 잃었다. 일을 하지 못해 생계가 막막해진 사람들은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Lockdown조치를 해제할 것을 원한다. 부자들이 섬을 빌려 격리할 동안에도 필요에 의해 일을 했던 사람들은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캐셔, 딜리버리 등 돈은 적게 벌지만 세상엔 꼭 필요했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친구의 친구는 아마존 프라임 배송을 하다 코로나에 감염이 되었는데 이것이 가족들에게 전염되어 할아버지를 잃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일을 하다 병에 걸려도 수백달러에 이르는 검진 비용을 감당하지도 못하고 죽어간다. 가난한 사람들은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도 아쉬운 부분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사례에 아쉬운 점은 남는다. 앞서 서구의 차별사례를 얘기하긴 했지만 한국에도 혐오와 차별은 존재한다. 중국인 입국금지 주장으로부터 시작된 혐오는 신천지를 거쳐 대구로 확산되었다. 해외유입사례가 늘어나자 외국인 전체에 대한 혐오로 이어져 직접적으로 말하는 이는 없었지만 외국인인 내 파트너와 음식점에 가면 옆테이블에서 들으라는 듯이 외국인들이 마스크를 안써서 문제라는 대화를 나눴다.(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갔지만 밥먹을 때는 벗고 먹었다. 마스크를 쓰고 먹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태원발 감염이 확산되자 현재는 성소수자, 20대, 외국인으로 다시 한번 바뀌었다. 그 주말에 본인들도 어딘가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건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상은 바뀌었지만 꾸준히 나와 타자를 구분하면서 차별하고 있는 점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유럽이나 똑같다. 


코로나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마치 모두 드러내 주기라도 하는 듯이 피해자를 배출했다. 사이비종교, 노동 환경이 열악한 콜센터, 돌봄 노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요양시설, 룸살롱, 클럽 등등 혹시..하는 곳에서 역시나 문제들이 터져나왔다. 다음번 Outbreak에는 이런 시설들의 취약점과 노동환경이 개선될거라 믿는다. 실제로 감염예방수칙을 잘 지켰던 카카오뱅크 콜센터에서는 확진자가 한명에서 멈출 수 있었다. 


이번 사태는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극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개인위생 수칙을 잘 지킨 일반시민들, 오프라인 장보기가 불가능하자 온라인으로 물건을 날랐던 택배기사님들, 식당에 가지 못하자 음식을 배달해 준 딜리버리 요원들, 그리고 그 맨 끝에는 질병본부와 일선 의료진들의 밤낮 없는 헌신이 있었다. 하지만 만일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그 때도 무리한 노동으로 사람을 이처럼 갈아넣어서 극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코로나 이후는 어떤 세상이 올까?

코로나 이후 세계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뉴노멀 시대가 될 거라고 한다. 사람들은 점점 더 비대면 서비스를 선호하게 될 것이고 언택트 비지니스 가속화에 힘입어 비대면 의료 같은 규제도 완화되고 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는 사람보다는 로봇이나 인공지능 등 24시간 돌릴 수 있으면서 바이러스로 부터 안전한 대안으로의 전환을 서두를 것이다. 가뜩이나 악화된 경제에 이러한 움직임까지 겹쳐 장기 불황과 경기침체로 이어질거라는 전망도 있다. 


조금 밝은 면을 기대해보자면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췄을 때 얼마나 공기가 깨끗해지고 자연이 회복되는지를 확인한 인간들이 조금더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시작이 비위생적으로 야생동물의 도축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이었고 역시 개인 위생 문제로 확산되었기 때문에 먹는 것과 위생에 조금더 신경쓰게 될 것이다. 모든 세계가 연결되어 지구 반대편도 맘만 먹으면 하루만에 갈 수 있는 요즘 어떤 문제도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서로 도와야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어차피 올해 내로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될 가능성은 희박한 관계로 언제까지 이렇게 멈춰 있을 수는 없다. 경로가 확인되지 않은 N차 감염이 발생하고 있지만 어디에나 바이러스가 있다는 가정 하에 우리는 곧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나아진 사회를 모두가 묵묵히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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