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의 첫 인연은 놀이터에서 만난 푸들이었다. 초코색의 푸들은 깨끗하게 미용이 되어있고 사람을 피하지 않았다. '손', '앉아'를 척척 해내는 걸 보며 누군가가 잃어버린 걸까, 생각했다. 주인이 나타나겠지 생각했지만 다음 날, 또 다음 날이 되어도 푸들은 놀이터 주위만 배회할 뿐이었다. 이대로 그냥 둘 수는 없어서 아이를 유기견 보호소에 데려갔다. 아이는 유기견 보호소의 공고 대상으로 등록이 되었고 나는 매일같이 포인핸드를 통해 그 애의 소식을 확인했다. 그리고 며칠 후 공고기간이 끝날 때까지 그 아이가새 주인을 찾지 못하면 안락사가 될 예정이었다. 남은 시간은 일주일. 그 푸들이 너무 눈에 밟혔던 나는 가족과의 상의 끝에 마지막 날까지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이를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공고기간이 끝나기 전에 아이는 입양이 되었다. 잘 됐다 싶은 마음이 드는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오빠가 조그마한 아기 푸들을 데리고 왔다. 놀이터에서 본 아이와 같은 초코색의 푸들이었다. 가정 분양으로 데려온 아이 었다. 즉흥적인 오빠의 결정으로 얼떨결에 우리 집에 오게 된 아이 었다. 알고 보니 오빠도 그 아이가 눈에 계속 밟혔나 보다. 놀이터에서 발견한 푸들과 똑같은 예쁜 초코색의 아기 푸들은 낯도 가리지 않는지 집안을 탐색하듯 돌아다녔다. 아기 푸들에게 '콩'이라는이름을 붙여주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운 첫 만남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금방 콩이의 귀여움에 빠져 매일같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고 콩이는 금세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당당히 합류하였다.
[강아지는 하염없이 가족을 기다린다]
강아지는 끈기 있게 가족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 개에겐 당신이 이 세상의 전부다"
내 주위에 외롭다는 이유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기 창피하지만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이 아니다. 한 때 나는 서울에서 직장을 얻어 독립하게 된다면 강아지를 키울 거라고 마음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아는 지인도 원룸에 혼자 살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강아지를 입양했었다. 산책을 한 번도 시켜주지 않은 채 집에 방치하였고 배변훈련도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분리불안이 심한 강아지는 주인이 없을 때 하울링을 하여 옆집으로부터 계속 민원이 들어왔다. 결국 강아지는 똥오줌을 제대로 못 가리는 데다 하울링으로 소음문제까지 일으키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고 연애를 시작한 지인은 더 이상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는지 아이를 파양 시켰다. 내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을 알고 자신도 강아지를 키웠다며 말한 이 이야기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 강아지가 새로운 주인을 만나서 잘 지내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다.
[하루 3번 산책하는 강아지랍니다]
콩이는 보통 하루 세 번의 산책을 나간다.
엄마가 아침과 오후 산책을 시키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내가 밤 산책을 시킨다. '산책 갈까'라고 말하지 않아도 빤히 콩이 눈을 쳐다보면 콩이의 꼬리가 양옆으로 살랑살랑 흔들린다. 우리 강아지가 이토록 천재견이다. 어쩌다가 항상 가는 시간에 산책을 가지 않으면 아주 젠틀하게 자리에 앉아 우리를 빤히 바라본다. "산책 안 가요?" "산책 가요!" 눈빛으로 말한다. 어쩔 때는 즐거움보다는 의무감으로 산책을 데려가기도 하지만 산책 후 발라당 뒤집어서 배를 까고 자는 콩이를 바라보면 뿌듯하기 그지없다. '피곤한 개가 행복한 개'라는 말은 산책 후 콩이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사준 콩이 옷.
대학교 4학년 때 콩이가 우리 집에 왔다. 콩이가 2살이 되는 동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고 어느새 직장인이 되었다. 예전만큼 콩이와 자주 산책을 나가고 함께 놀아줄 수 없게 되었지만 콩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을 다 해줄 수 있는 지금이 좋다. 물론 콩이는 24시간 함께 붙어있을 수 있었던 예전의 내가 더 좋겠지만. 취업하고 고 직장인이 되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앞으로 콩이 보험을 든 일이었다. 적다면 적은 돈이지만 돈 없는 취준생 때는 단 돈 만원도 허투루 쓸 수가 없어 콩이에게 많이 사주질 못했다. 지난날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현재 콩이를 위한 물건을 살 때에는 최대한 돈을 아끼지 않고 기왕이면 비싼 용품을 사주고 있다. 물론 사료, 배변용품, 간식과 같은 필수 물품들은 엄마가 사고 있다. 나는 마치 조카들에게 이쁜 옷, 맛있는 음식 사주는 이모 같은 느낌으로 중간중간마다 비싼 치약, 옷, 영양제를 사주고 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그저 귀엽다고 생각한 애견샵 속 새끼 강아지들을 보며 안타깝고 미안한 감정이 들고 기부에 인색했던 내가 유기견 보호소에 꾸준히 기부하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인생은 콩이를 키우기 전과 후로 나뉘는 것 같다. 아직은 아득한 미래처럼 보이나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날 콩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시큰거린다. 그러나 현재는 콩이와 함께 하면서 얻는 기쁨에 더 집중하고 싶다. 우리 가족을 열렬하게 사랑해주는 콩이를 보면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또 한 번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