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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혜진 Jean Seo Oct 06. 2023

한국에서 엄마로 살기 - 8

이 엄마는 그야말로 ‘교육전문가’였다. 사교육 현장에서 수십 년 동안 '최상위권'의 아이들을 입시지도해서 그야말로 ‘최상위 대학’(보통은, SKY 대학들과 의학계열을 의미한다)에 입학 성공이라는 매 해마다 ‘쾌거’를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지속해 왔었단다. 본인의 자녀에게도 같은 잣대로 기준의 설정을 했었기 때문인지 첫아이와의 마찰도 꽤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워낙 중, 고등학생들의 사교육 교육전문가로서 ‘번창’했었던 것처럼 아들과의 '충돌'도 '엄마가 전문가잖아'라는 무언의 '권위'로 유연하게 잘 넘길 수 있었다고 했다. 첫 아이 때의 막무가내식 몰아붙이기로 많은 갈등을 경험했지만, 다행히도 첫아이는 원하는 최상위 대학에 합격했다고 했다. 입시의 결과가 좋아지고 나니, 첫아이로부터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결과를 못 만들었을 것이다”라는 얘기와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단다. 






요즘의 수많은 교육정보를 다루는 유튜브나 설명회에서 들리는 말처럼, 엄마의 정보력과 교육에 대한 '지식'(?)이 아이의 대학을 바꾼다고 한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엄마의 경우는 너무 많이 알아서 그만큼 더 '대단한 마더링'을 했던 '대학 입시'였단다. 너무 할 수 있는 게 많은 '전문가'여서 그랬나, 이 엄마는 정말 진심으로 아들의 공부에 관여했던 것 같았다. 첫아이의 입시를 3년간 치르는 동안, 학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의 총 10번의 시험동안 너무도 마음 졸이고 소위 ‘진이 빠졌다’는 말이 맞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둘째인 딸(첫째는 아들이라고 했다)이 고등학교를 입학한 후에는, 첫째만큼 하지 않게 되었단다. 여전히 사교육이든, 학교 등하교 이든, 모든 것에서 첫아이 때처럼 엄마가 도맡아서 서포트했다고 했다. 하나의 차이는 완벽한 '마더링'(mothering)을 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버려졌었다고 했다. 그렇게 둘째 아이에게는 많은 부분을 스스로 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첫 아이 때,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어요. '신경성 고혈압' 진단이었어요. 순간 혈압이 200까지 올라가곤 했으니까요... 간호사가 놀라서 다시 재봤는데, 혈압을 재고 있는 중에도 또 혈압이 올라가는 거예요... 간호사도 당황하더라고요. 의사말에 '지나가다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정도의 '고위험군'이라고 했어요. 아무리 '신경성' 고혈압이라고 했어도, 이제 막 고등학교 3학년에 들어 선 아들에게, 지금까지 하던 '마더링' 방식을 바꿀 용기가 없었어요. 혈압 재는 것이 무섭더라고요... 하루는 남편이 '아들 공부시키다 네가 먼저 죽겠다'라는 말까지 하더라고요."






첫 아이가 성공했었던 방식대로 '마더링'을 하면 될 것이었지만, 그 정도의 애쓰는 것을 또다시 할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또다시 둘째 때에도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 쏟아붓다가 정말로 본인의 몸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단다. 둘째가 첫째만큼 혹시나 잘 안 될 까봐 두렵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둘째를 위해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많이 내려놓으려고 했단다. 아들이냐, 딸이냐에 따른 차이는 아니었다고 했다. 성별과 무관하게, 고등학교시절에 있는 자녀는 '특별히 사랑과 지지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라는 생각은 조금도 바뀌지는 않았단다. 엄마가 애쓰는 만큼 자녀의 성적이 바뀐다는 것에 대해서는 단연코 100% 동의한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만, 본인이 첫째 때처럼 mothering을 하면 소위 ‘죽을 것’ 같았단다. 건강에 문제가 될 정도로 첫아이의 입시를 함께하는 동안 ‘전심전력을 다하는 마더링’이었기 때문에 다시 할 여력이 없어진 것이라고 했다. 첫째 때처럼, 마치 한 몸인 듯 아이에게 ‘올인’하는 것은 할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고 했다. 엄마의 마더링의 정도와 강도를 측정하는 무언가가 있지는 않지만, '참 어마무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엄마의 경우에서도, 중산층 어머니의 mothering 관행 대로, 사교육을 사용한다는 점은 동일했다. 또한, 엄마의 완전한 희생은 '이상적인 마더링’의 ‘디폴트 값’이었고, 그래야 애들이 공부를 잘한다고 믿고 있었다. 더 나아가, 누가 꼭 집어 말하지 않아도 자녀의 교육적 성취가 '성공한 엄마'라는 자부심을 상징한다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메시지에 의해 주도되는 것으로 보였다. 스스로의 몸이 상할 정도로 애를 태우는 '전심전력 마더링’도 그 문화적 메시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했다. 첫아들 때의 마더링에서 그녀는 자녀의 교육적 성과를 위한 엄마의 노력과 엄마 자신의 신체적, 정서적 안녕을 협상할 수 없는 듯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소위 공부 좀 하는 애들 엄마라면 다 본인과 대동소이하단다. ‘엄마가 얼마만큼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아이는 바뀐다’는 대명제에는 여전히 이견(異見)이 없단다. “애들이 공부를 너무 안 하거나, 엄마랑 사이가 너무 나쁘거나..., 아빠가 경제적으로 너무 무능력하거나... 뭐 이런 게 아니면 다들 비슷해요. 애들은 엄마 하기 나름이죠”란다. 






정작 자신은 둘째아이때는 첫째 때처럼 못하고, 안 하고 있는 ‘관리’(엄마들은 애들을 교육적으로 ‘마더링’하는 것을 ‘관리’라고 한다. 그래서 ‘manager mothering’란 조어도 생긴 듯하다)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위한 '마더링'에서는 엄마의 역할에 대한 생각은 그녀에게는 이미 너무나 ‘진리’였다. 그래서, 자신들의 휴식을 위한 시간과 공간의 부족 따위는 고려할 거리도 아니었다. 아이들을 위한 사교육 일정에 따라 본인의 스케줄을 정하는 건 ‘디폴트’라고 했다. 자녀의 빡빡한 사교육시간표에 따라 엄마의 스케줄도 빡빡하다. 소위, 사교육에 애만 던져놓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 공부(?)라도 하는 듯 이 엄마도 고된 수험생 생활을 같이 했단다. 자녀를 각 위치로 태워다 주고 각 교습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당연한 일과이고, 자녀가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언제 어디서나 그들 옆에 있어주는 것과 같은 특별한 종류의 헌신이 있어야만 아이의 입시가 성공한다라는 신념이 느껴졌다. 


"애가 공부를 하는데... 공부하는 애 때문에 엄마가 힘든 거는 상관없죠... 오히려, 고맙죠~ 항상 차에서 대기 시간을 사용하여 자녀의 다음 개인 교습 일정을 준비하고 자녀가 차에서 식사를 끝내고 다음 사교육을 위해 이동해서 갈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놔요. 집에서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은 오전에 다 끝내 놓죠. 오후에 아이가 하교하는 4~5시부터는 아이의 운전사 노릇, 비서 노릇에 바쁘죠. 애가 학원에서 끝나는 밤 10시경에도 픽업 가고... 독서실 데려다주고, 새벽 1~2시에 데리고 와서 간식 주고.. 재우고... 매일 이런 건 기본이죠”

 




아이러니한 일은 둘째 아이의 ‘우수한’ 성적이라고 했다. 몸이 상할 정도의 첫 아이와의 입시 준비에 전쟁을 치렀던 경험에 비추어 둘째는 ‘엄마가 너무 아무것도 안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가 혼자 하는 것이 많았다고 했다. 둘째는 여러모로 ‘거저 가는 것’ 같단다. ‘왜 그런 것 같냐?’는 질문에는 굳이 차이가 있다면, 둘째는 오빠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힘들게 공부하는 과정을 중학교 3년 내내 지켜보았고(3년 터울이란다), 그래서인지 중학교 때부터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소위, 고등학교 '최상위권'(오빠를 말했다)이 있는 집안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딸아이에게 동기부여가 된 것 아니겠냐는 대답이었다. 






둘째가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시험을 치른 후, 본인이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실수로 두 과목에서 실망스러움 결과(2등급이 2개 나왔단다)를 받았다고 했다. 딸아이가 본인은 오빠처럼 머리도 좋지 못하고 학교성적도 오빠만큼 계속 잘할 자신이 없다며 울더란다. 상당히 잘 본시험결과(나중에 보니 전교 5등이었단다)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오열’을 하며 울더란다. 엄마로서 내가 의식하지도 못하면서, 보이지 않게 여전히 압력을 주고 있었나?라는 생각과 또 한편으로는 엄마인 자신이 첫아이만큼 잘 mothering을 하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서로 상반되는 자책도 했었다고 했다. 아직 성적표를 받아보지 못했어서 등수를 몰라서 그랬는지 너무 마음이 힘들어 보였던 딸아이에게 엄마가 오빠처럼 못해줘서 '미안하다'라고 했단다. 하지만, 딸아이는 어차피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이 모든 과정이 다 지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대답으로 응수했다고 했다. 너무나 어른스러운 말과 행동에 사실, 깜짝 놀랐단다. 엄마의 지난 ‘3년간’의 오빠를 향한 ‘마더링’을 ‘보는 것만으로도 질렸나 봐요’ 라며 겸연쩍듯 웃는다. 






워낙 스스로 하던 딸이었기 때문인지, 지금도 여전히, '스스로' 공부를 잘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제 고등학교 입학 후 치러야 하는 내신 시험(총 10번의 시험이 있다)의 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조금씩 ‘단단해져 가는 딸아이’를 볼 때면, 아들 때의 마음 졸이며 닦달하던 스스로의 모습에 무색해진다고 했다. “결국 제가 잘해서 애들이 잘하는 건 아닌 것도 같아요.”란다. 엄마가 해주는 것은 어차피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다는 걸 알기까지 한국의 모든 엄마들은 첫 아이를 키워내며 ‘몸소’ 온몸으로 학습 중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와중에 아이가 하나뿐이 엄마들은 어쩔도리없이 아이와 함께 첫 레슨에서 여전히 분투 중이다. 누구라 정답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사람 하나 없이 엄마와 자녀가 때로는 아군(我軍)인 듯, 때로는 적군(敵軍)인 듯 피아(彼我) 분간도 어려운 ‘전쟁 같은 사랑’으로 힘겹다. 



사진: Unsplash의 Priscilla Du Preez ��

                                             (대문사진: Unsplash의 Element5 Digit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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