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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혜진 Jean Seo Oct 16. 2023

‘소리 지르는 엄마’

A: “얘들아 나 죽고 싶어”

B: “갑자기?? 왜???”

C: “별일도 아닌데 이런 말 남발하면 XXX”

D: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A: “엄마가 시험얘기하면서 나한테 계속 소리 지르면서 어떻게 할 거냐고 계속 그래. 엄마한테 그냥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럴 깡도 없어서 계속 말도 못 하고 혼만 나고 있음...”

E: “힘들만하네”

C: “나도 그랬었는데. 난 나도 같이 소리 지르고 화냄”

A: “그럴 틈도 안 주고, 우리 엄마는 계속 소리 지름”

B: “아이고…..”

A: “아… 나도 그냥 짐 싸서 나가고 싶다”


지도하고 있는 한 아이가 보여준 카카오톡방의 고등학교 1학년들이 나눈 단톡방 이야기이다. 이 글들을 내게 보여준 이 아이의 말에 따르면,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위 대화 중에서 A(남학생)는 중학교 때에는 ‘한 공부’했었던 아이였다고 한다. 아마 이번 중간고사를 잘못 본 모양이라면서, 웃으며 하는 말이 ‘그래도 이건 좀 낫다’? 란다. 본인 엄마는 시험 못 보면 자기를 ‘투명인간‘ 취급한다며 차라리 싸우는 것이 더 낫단다. 이런 얘기를 접할 때마다 드는 첫 번째 생각은 ‘무섭지도 않나?’이다. 이렇게 소리 질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대담함'에 한번 놀라고, 요즘 애들을 잘 모른다는 '무지함'에 두 번 놀란다.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엄마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너무 쉽게 믿는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만한 엄청난 일들-가출, 술담(=흡연과 음주를 애들은 이렇게 부른다), 문신, 섹스, … 임신, 자살...-이 자신의 아이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양…. 그렇게 ‘시험 성적’만 얘기하는 엄마들이 생각보다 많다. 정말 "큰" 착각이다. 어느 누구도 지금의 청소년들의 나쁜 길로 향하는 ‘Fast-track’에서 자유롭지 않다. 실례로, 지난 글에서 한번 언급했었던 “경찰대”에 가고자 희망했었던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은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본인 팔뚝 안쪽에 "용"과 "꽃”무늬의 ‘문신’을 한 사진을 인스타에 올렸단다. (인스타에 올렸다 2분 만에 내린 이 충격적인 사진을 일부 아이들이 ‘캡처’ 한 후 친구들 SNS로 돌린 것이었다). 문신을 한지 얼마 안 되었었던 것인지, 문신한 주위의 살갗이 여전히 벌겋단다. 이 사진을 본 아이들이 받은 충격도 만만치 않았는지 한 아이는 울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는 다음날, “얘들아 그동안 즐거웠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도 학급 단톡방을 기어이 나갔단다. ‘자퇴’를 하겠다고 했단다. 마치 지금까지의 자신의 과거와 ‘혼동’의 시간이 더 이상은 귀찮다는 듯이, 스스로 마감하듯이 홀연히 사라져 버린 그 아이의 빈자리에 아이들은 ‘망연자실’했단다. 그리고 무서웠단다. 문신이라니.. (진짜 그렇게 촌스러운 '용'과 '꽃'은 처음 봤단다.)






사회적 통념(?)으로 이런 이야기는 결손가정(?)등등의 무언가 가정에 문제가 있는 일부 특이한 아이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고 쉽게 단정 짓기가 쉽다. 하지만 "착각"이다. 아주 '보통'의 중산층 집안의 아주 '보통'의 가정에서, 너무도 '평범'한 아이가 이렇게 '쉽게', 그것도 아주 '빠르게' 상상치 못한 일을 하곤 한다. 실제로, 학군지의 한 중학교에서는 엄마가 없는 사이에 집에 친구들을 불러들여서 ‘방-렌탈’을 해서 돈을 벌었단다. 이성교재중인 친구들에게 ‘찐한 스킨십(?)’을 위한 배려적 (?) 차원인 ‘방-렌탈’서비스였다. 시간당 얼마씩을 받고 친구들에게 방을 빌려주곤 하다가 발각이 돼서 동네가 시끌벅적했었다. 너무 아이러니한 것은 이 아이들의 가정이 중산층의 '넉넉한' 가정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다지 이렇게 돈을 벌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단다. 이렇게 방을 빌려 쓰고, 빌려주고 한 후 이 아이들은 ‘학원’에 가서 천연덕스럽게 앉아서 공부를 하곤 했단다. 이런 이야기가 실제로 지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들이다. 






어리고 뽀얀 팔뚝에 문신을 하고, 결국 자퇴한 이 여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 1학기에는 학급 반장을 했었던 아이였다. ‘경찰대’ 진학을 희망하며, ‘몬스터’를 마시며, 하루 3~4시간만 잠을 자며 갑자기 ‘벼락공부’를 2~3달 했었던 아이였다. 첫 중간고사 후, 전 과목 점수로 '경찰대'진학이 요원하다는 생각에 ‘체대’를 진학하겠다며 진로를 바꿨지만, 결국 기말고사 후, 이 아이는 공부에서 손을 놨다. 더 이상의 일탈을 막으려고 한 이유였겠지만, 엄마에게 '폰'을 빼앗겼다며 '짜증 난다'며 툴툴거리더니 그날로 '가출'도 했었단다. 3월부터 6월까지 결국 3~4개월 만에 너무나 찐한 노력과 너무나 빠른 결정을 한 이 아이는 결국, 너무나 극단적인 행보로 인생의 큰 결정들을 너무 쉽게 해 버렸다. ‘지나고 보니’라는 말과 함께 돌아본 이 아이의 ‘행보’에는 지나친 ‘자유함’이 있었는 듯 보였다. 우선, 겉보기에는 이 아이는 엄마랑 사이가 많이 좋았단다. 하지만, 엄마가 많이 ‘허용적이었구나’라는 증거는 이 아이에겐 ‘통금시간’이 없었고, 돈을 쓰는 것에서도 별로 제제가 없는 ‘엄카’(엄마 카드)족이었단다. '학원가는 시간'과 어디 있는 지만 엄마에게 알려주면 다음날 ‘해 뜰 때’ 들어와도 엄마가 괜찮다고 한단다. (딸아이 말에 이런 십 대와 엄마들이 요즘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집안에 '통금시간'이 없단다. 사실,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올게'라면 '무사통과'인 것도 사실이란다. 엄마들은 얘가 공부만 잘하고 있으면, 또는 엄마랑 얘기만 잘 나누는 사이이면, 소위, ‘관계’만 좋으면 아이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착각’을 한다. 물론, ‘자퇴'를 했어도, 집을 나간 적이 있어도 결국 잘 성장하는 ‘어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엄마가 자녀의 이러한 일탈을 그렇게 천연하게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들은 수만 번도 더 변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 변화를 잘 지켜봐 주고 싶다. 그리고 그 변화가 너무 두려운 것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자녀의 ‘독립’된 영역과 엄마의 ‘관여’(훈육이라고 불러도 좋겠다)의 사이에서 ‘마더링'은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가족 간에, 특히, 엄마와 자녀 간의 ‘관계가 좋아야’ 마더링이 효과적으로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족 내 관계가 좋다”에 대해 엄마들이 오해하는 지점이 있다. 그렇다면, "관계가 좋다”라는 의미가 뭘까? 그래서, ‘균형 잡힌 마더링’을 위해서는 균형 잡힌 가족 간의 ‘관계성’에 대한 기준과 본인의 가족 구성원들 간의 정서적 유대관계(이를 '응집'이라고 한다)에 대해 먼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가족의 ‘응집’의 정도에 따른 4가지 가족 유형이 있다. (Carnes, 1989) 


       1. 해체된 가족(Disengaged Family): 해체된 가족에서는 구성원들이 감정적으로 분리되는 경향이 있다. 서로의 삶에 제한적으로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열린 의사소통과 정서적 연결이 부족하다. 가족 구성원은 종종 자신의 이익과 활동을 독립적으로 추구하여 가족 단위 내에서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2. 분리된 가족(Separated Family): 분리된 가족은 다양한 이유로 가족 구성원이 서로 신체적, 정서적 거리를 두고 있는 가족을 말한다. 이혼, 지리적 별거 또는 기타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육체적 분리’는 명백한 이유가 되겠다. 하지만, 함께 있어도 정서적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가족 구성원 간의 공동체 의식이나, 유대감은 여전히 약해진 상태의 가족유형이다.


       3. 연결된 가족(Connected Family): 연결된 가족은 구성원 간의 강한 정서적 유대와 열린 의사소통을 특징으로 한다. 이 가족 유형 안에는 '단결감', 가족의 '지원', '공유되는 가치'가 있다. 가족 구성원은 정서적으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원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4. 얽힌 가족(Enmeshed Family): 그물에 걸린 것처럼, 얽힌 가족은 가족 구성원 간의 경계가 모호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가족이다. 가족 구성원은 서로의 삶에 '지나치게 관여'하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확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는 '상호의존성'과 개인의 '자율성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족의 '응집'유형에 따라, 가정마다 ‘대화’에 대한 기준과 방식도 또한 영향을 받는다. 또한, 마더링의 방식으로서의 ‘관여’의 정도와 방식, 훈육을 위한 가족 내의 ‘규율’, 학습에 대한 투자와 환경조성등의 구체적 ‘마더링’의 행위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가 장기간 동안의 일관성으로 만들어진 '경향성'('취향'이라 해도 좋다)이 바로 ‘Family Habitus(가족 아비투스)’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것들이 가정마다의 ‘취향'의 마더링의 결정요소들이다. 이러한 가족 간의 ‘의사소통’과 ‘관계성’의 유형에 대한 ‘성찰’이 자녀의 ‘학습’과 ‘일탈’까지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될 수 있다. 한편, 근래에 소위 뜨는 ‘마더링’ 스타일인, ‘자녀 마음 만져주기’, ‘간섭하지 않는 민주 엄마’ 등등의 ‘마더링’의 문제는 이러한 깊은 ‘성찰’이 없이 ‘what-to-do’만을 빠르게 습득한 ‘철학’ 없는 마더링의 산물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십 대 청소년들은 우리 엄마들이 손도 써보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빠르게, 너무나 무서울 정도로 영화에나 나올만한 일들을 저지른다. 처음 시작이 어디인지도 모르게 아이들은 엄마의 품에서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런 일이 생긴 후에야, 엄마들은 “내 아이가 이럴 줄은 몰랐다”는 말을 한다. 마찬가지로, "내 아이가 이럴 줄은 몰랐다"의 또 다른 영역이 고등학교 입학 후의 학교 성적이다. 초, 중학교 때까지 사교육에의 충분한(?) 노출과 엄마의 '열심'으로 어떻게든 해왔던 학교 시험성적이었다. 그렇게 저렇게 공부 좀 하던 아이들이 고등학교 첫 시험을 본 이후 무너지는 경우는 너무 많다. 이때의 엄마의 '첫 반응'이 자녀의 그 이후 고3까지의 행보를 정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아니 어쩌면, 평생의 엄마와 자녀 간의 '관계'와 '응집'을 좌우할 수 있다. 교육적 '성취'만을 중시해서 경쟁 속에서 '이유야 어떻든' 승리해서 가족(특히, 엄마)의 명예를 높여줘야 한다는 무언의 강압으로는 자녀와 '민주적 관계성'을 가질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녀의 세상에 대한 이해와 '맥락 없는 대화'로는 자녀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자유에 관한 일종의 '경전'과 같은 책인 『자유론(On Liberty)』의 저자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개인적 결정권’에 대한 무한한 지지를 보낸다. "각 개인의 고유의 문제라면 그 사람의 개별적 자발성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라고 말한다. 결국, "어떤 상황에서든 본인이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라는 주장이다. (사실, ‘민주적’인 삶을 위한 자기 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개인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는 것이 생각 밖으로 어렵다는 사실은 우리는 오랜 역사를 통해서 절감한다.) 그토록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 존 스튜어트 밀도 강조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이었다. 즉, ‘사회 속에서의 자유’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무조건적인 절대자유가 아님을 강조한 것일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아직 다른 사람들의 보호를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미성년자) 은 외부의 위험 못지않게 자신의 행동에 따른 결과로부터도 보호받아야 마땅하다."라며, 임의로 자유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대상에서 ‘미성년자’를 배제를 정해 버린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이러한 의견의 배경에는, '옳은 길을 제시하면서 간섭’하는 것인 “삶의 필요에 따른 선의의 간섭”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자녀를 위한 '경계'를 정해주는 마더링이 청소년기에는 중요하다.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부모가 추구하는 가치만을 자녀에게 강조하는 규율이 아니라면 괜찮다.  마찬가지로, '아이를 믿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너무도 민주적이고, 멋진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마더링이 민주적일수록 가정의 '응집'의 유형을 먼저 점검해봐야 한다. 그리고 자녀와의 의사소통이 자녀의 생각과 감정을 맥락 속에서 잘 해석하고 있는 중인가? 에 대한 점검이 항상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민주적'인 마더링이 될 수 있다. 결국, 무엇을 향한 ‘자유’와 '경계'인지에 대한  마더링의 '철학과 방향성'에 대한 엄마의 성찰이 언제나 선행되어야 할 '절실한 과정'이다. 



사진: Unsplash의 Sixteen Miles Out

                                   (대문사진: UnsplashJane Boyd & ECE Worksho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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