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엄마로 살기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이 엄마는 스스로가 교육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해 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무엇보다 강조해 왔던 것도 당연히 ‘자기주도학습’이었다. 엄마 스스로가 초등학교 교사였던지라, 교육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이미 철저한 사전준비도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학원을 하나도 안 다니고 소위 매해 수능시험을 본 후 만점자 수험생들의 비법인 ‘교과서로 공부했어요’를 실천하는 학습법을 고수해 왔다고 했다. 필요한 ‘인강’(인터넷 강의)를 동반하고 '자기주도학습'을 철저하게 실행하는 딸아이는 그동안, 부모의 자랑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또한, 교사인 엄마가 보기에도 전혀 학습법에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 했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모범답안과 같은 '자기주도학습자'의 일상이었던 것으로 들렸다.
딸아이의 공부법에서 무엇보다 빠지지 않았던 것은 당연히 ‘스톱워치’와 ‘To-Do-List’였다. 시험을 앞두고 스스로 계획표를 짜고 하루의 일정과 ‘순 공부시간’을 ‘스톱워치’로 재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시험범위의 '3 회독 준비'를 목표로 자습서와 평가문제집부터 모든 필요한 자료도 스스로 찾는 공부법으로 잘 해냈단다. 그래서인지 딸아이도 ‘학군지’에 있는 중학교에서 상위 4% 이내의 성적을 중학교 2~3 학년 내내 유지하며 승승장구했다. 당연히 국, 영, 수의 주요 과목뿐만이니라 모든 과목에서 항상 A를 받았단다. 사교육도 없이 전교 등수 안에 드는 아이였기 때문에 엄마는 큰 걱정 없이 당연히 특목고 진학을 준비했다고 했다. (워킹맘으로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등학교로의 진학은 엄마에게도 자유를 줄 것이라는 생각도 너무 맘에 들었었다고 했다.)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잘 나왔던 터인지라, 특목고 입시에 필요한 활동도 중학교 재학시절 내내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고 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특목고 합격을 했단다.
모든 면에서 나름의 ‘승승장구’만을 경험해 왔던 딸아이가 고등학교 입학 후, 우수한 아이들 속에서 녹녹지 않은 경쟁을 경험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공부만 잘하는 아이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상당했던 딸아이는 쟁쟁한 아이들 속에서 자신만의 ‘자랑스러움’을 스스로가 발견하지 못하고 ‘평범한’ 아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1학기 내내 “엄마 잘하는 애들이 너무 많아”로부터 시작해서, “시험공부가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말로 마무리했다고 했다. 더군다나, 주말에만 집에 올 수 있는 딸아이를 만나기도 힘든 기숙사 제도로 기껏 아이를 위로해주고 싶어도 전화기 너머의 울음소리에, 엄마는 ‘시험 못 봐도 괜찮다’는 말로 응수할 뿐이었다고 했다.
항상 반 1~2등을 당연한 성적으로 여겨왔던 아이가 평균이 30~40점인 학교 중간고사 시험에서 본인도 그저 그런, 평생 받아본 적이 없는 시험성적을 받고 망연자실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갔다고 했단다. 더군다나, 본인보다 중학교 때 우수하지 못했던 친구들이 일반고에서 전교등수 안에 드는 소식을 들을 때는 더욱 힘들어했다고 했다. 전학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이 들었지만, 이미 딸아이의 처참한 1학년 성적과 유리그릇 같은 ‘멘털’로는 다른 일반고로 전학을 간다고 해도 별 소득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이 엄마의 판단이었다. 결국, 초, 중등 때의 자기주도학습 학습법에 대한 자신감을 대체한 것이 주말을 꽉꽉 채운 학원 시간표라고 했다.
자녀교육과 관련해 가장 ‘로망’이자 가장 많이 오해하는 것이 ‘자기주도학습’이다. 사교육 없이 혼자 공부하는 것을 ’자기주도학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첫째이고, 중학교 때의 성적을 그대로 고등학교의 성적으로 등가환산해서 기대한다는 것이 뒤를 잇는다. 이 딸아이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는 학생의 학습방법과 심리적인 부분에서의 점검 등, 기간을 정해서 살펴보아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오랜 교육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살펴보았을 때의 공통점은 발견 가능했다. 우선 보이는 문제는 고등학교 입학 때까지 스스로의 학습법에서의 ‘시행착오’를 해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 엄마는 학원의 레벨테스트와 수업이 너무 ‘쓸데없이 높은’ 과정으로 불안감과 실패감만을 느끼게 하는 상술로 보였다고 했다. 당연히, 중학교 시험기간에도 시험범위 자체에의 집중한 공부였다고 했다. 물론 선행학습을 하기는 했단다. 하지만 한 학기 정도의 선행진도를 기준으로 했다고 했다. “선행을 너무 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긴 해요”라는 엄마의 말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이 학생은 ‘현재’에 너무 충실한 공부로 ‘현재’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학습에 있어서 '시행착오'는 중요한 개념이다. '시행착오'란 어떤 일을 처음 시도할 때 완벽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실패하거나 오류를 저지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자기주도학습'은 학습자가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설정하고 학습 방법을 결정하며 학습 과정을 주도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시행착오'는 이러한 '자기주도학습'의 깊이와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 준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는 나머지 자녀에게 도전적인 환경으로의 노출과 실패의 경험을 미리 차단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학습을 위한 궤도수정이 필요한 시기와 방법을 정하는 것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가능하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자기주도학습'의 성공을 위한다면, 학습자가 이러한 시행착오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실수와 실패의 경험을 ‘독려’(?)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패와 오류를 겪으면서 자신만의 방법과 전략을 개발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점은 엄마들의 ‘자기주도학습’의 학습방법에 대한 맹목적 ‘로망화’와 ‘사교육의 폐해’에만 너무 집중하기 쉬운 일반화의 오류이다. 이것은 마치 인스턴트식품의 폐해에만 너무 집중하는 것으로 비유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라면도 먹을 수 있고, 자장면도 시켜 먹을 수 있듯이 사교육도 그렇게 활용하는 것이다. 자녀가 아무리 ‘치킨’을 좋아한다고 해도 일주일 내내 ‘치킨’만 시켜줄 부모는 없다. 마찬가지다. 아무리 뛰어난 사교육(학원)이 있다고 해도, 학원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매끼마다 정성스러운 ‘집밥’ 만을 자녀에게 대접하는 엄마가 되는 것도 쉽지는 않다. 물론, 아이들도 외식이나, 배달음식, 인스턴트식품을 먹고 싶어 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할 때도 있다. 그 정도의 필요가 사교육이다. 정말로 ‘자기주도학습’을 잘하는 아이로 성장하려면 가능한 한도 내에서의 ‘학원’, ‘인강’, ‘과외’, ‘엄마표 관리’ 등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 장기적으로 엄마와 자녀가 학습적 성향을 파악해 보는 것에 도움이 된다.
사실, 우리나라교육환경에서 사교육이 전무인 상태로 자녀가 극최상을 유지하기는 다소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스스로가 정한 학습법을 벗어나서 사교육의 적절한 도움을 받아보는 시도 또한 중학교 때 반드시 해봐야 한다. 가정의 환경과 자녀의 성향상 ‘자기주도학습’이 비효율적인 경우도 있다. 반면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음에도 고등학교입학 후 '완전자기주도학습'만으로 최상위대학에 입학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어떠한 방식이 우리 아이에게 적절한지는 도전적 학습에의 노출과 학습법에서의 시행착오의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실패와 시행착오를 해보는 경험과 과정 속에서 자녀는 과목별 공부방법을 '사교육'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 자신에게 잘 맞는 더 나은 방법을 발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스킬을 향상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사교육과 자기주도학습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전략적 사용' 능력을 스스로 축적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간’과 ‘과목’을 정하는 것이다. 한 학기나 1년, 방학기간 등등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른 기간 설정을 자녀와 함께 계획해 보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늦어도 중학교 때부터는 전략지도를 잘 세우는 만큼 성공하기 쉬운 제도이다. 또한, 영어와 수학 등의 특정한 과목을 정해서 탐색해 보는 것을 제안한다. 이 두 과목은 장기간의 ‘학력’이 쌓여야 하는 과목들이고 자녀의 성향에 따른 ‘사교육’에의 도움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결정해 두어야 하는 대표적인 과목이기 때문이다. (사실, ‘영어’는 초, 중등학생 시절에 학습방법을 잘 구축해 놓으면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도 충분히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한 과목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6년이라는 기간 내내 사교육에 매달리는 방법은 자녀의 학습과 가정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자녀 스스로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교육을 선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시간싸움'인 고등학교 시절에 ‘자기주도학습’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 초, 중등학교 시절의 '시행착오'를 하는 과정을 자녀의 입장에서 함께 잘 경험한 엄마는, 무슨 과목의, 얼마만큼의 사교육을 언제 받고, 언제 그만두어야 할지 등에 대해서 자녀와 논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특별히, ‘특목고’등 소위, 학교의 중간, 기말고사의 내신이 이미 수능 이상의 준비가 필요한 상급학교로 진학을 희망한다면 더욱 그렇다. 초등 고학년부터 중학 3학년까지의 사교육과 자기주도학습에서의 전략적 균형을 찾고 본인의 학습법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의 과정에의 노출이 필수적이다.
초, 중학교 때의 학습 방식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자녀가 중학교 때 경험해 보아야 하는데, ‘자기주도학습’ 방식으로만 학습해 본 아이들은 이 부분을 놓치기가 쉽다. 학습에서의 실패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더 강력한 학습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전적인 과제에 노출시켜야 하는 마지막 시기가 중 2~3학년때이다. 이 시기를 학습법과 취향에 대한 탐색의 시간으로 활용해 보자. 사실, 자신만의 학습법과 사교육을 통한 시행착오를 충분히 해야 할 시기인데, 중학교 내신성적으로 입학이 결정되는 ‘특목고’의 입시를 준비하다 보면, 이런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할 여력이 없다. 한참 사춘기로 힘들어 할 시기의 학교 성적으로 인한 자녀와의 갈등은 덤이다. 자녀의 긴 공부를 위한 좋은 초석을 쌓을 시기인 중학교 시절에 충분히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은 현명한 엄마의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에는 성적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자녀가 충분히 실패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