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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브르박 Mar 11. 2021

[생각정리] 의미있는 삶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읽은 후 해보는 생각정리


평범한 하루에서 완벽함을 찾을 수 있을까?
그떄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바로 그것이 핵심임을


책에서 인상 깊은 질문이 하나 나오는데, 미치가 모리교수에게 단 하루 루게릭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하루를 어떻게 보낼것이냐고 묻는다. 교수는 자신은 이제 병을 앓기 전과 달라졌다고 말하며, 자신이 꿈꾸는 하루 일과를 말한다. 친구를 만나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먹고, 수영을 하고, 춤을 추고 싶다고 한다.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과연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떤 하루를 보냈을지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이다. 미치는 자신은 특별한 장소나 인물을 만나며 하루를 보내지 않을까 상상한다. 아마 나도 비슷한 상상을 할 것같다. 하지만 보통의 삶을 잃은 사람은 그 보통의 삶이야 말로 의미있고 특별한 삶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가 보다. 잃어버렸을 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는 것처럼. 결국 모리교수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보통의 삶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란 어떤것일까? 의미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단어의 뜻', '사물이나 현상의 가치'로 표현된다. 적당히 해석해보면 '삶의 의미'란 '삶을 살아가는 이유'나 '살아가면서 추구해야할 가치' 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사실상 삶의 의미란 철학이 태생하게된 원론적 질문일 테니까 천생 공돌이인 내가 저 답을 찾는 것은 무리이다. 결국 내가 살면서 이 삶을 영위해야할 이유나 추구해야할 목적 등이 삶의 의미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종종 티비를 시청하다보면 예능에서 출연자들에게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나는 이 비꼬는듯한 수식어가 사실 잘 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이 글을 보는 이들도 자신의 탄생에 조그마한 관여도 하지 못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는 누구나 태어난 김에 살고 있는게 맞다. 우리가 삶의 의미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이유도, 의도하지 않은 삶을 시작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생각을 해본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지난 시간들을 되돌려봤다.


10대 시절을 한단어로 정의하면 무념무상이었다. 즉, 삶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하니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을 가야한다고 하니 가야하는 줄 알았다. 필요성을 느끼질 못하니 공부에 딱히 큰 관심이 있던 것곧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기에는 삶에서 무언가를 추구해야 한다는 목적 의식 자체가 크게 없었다. 어른들이 꿈을 가져야한다. 목표를 가져야 한다라고 말을 하니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만 했다.


20대에 군대를 기점으로 삶을 바라보는 생각이 달라졌다. 군대에선 의외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들이 만들어 진다. 육체적 한계를 자극하는 훈련이라던가, 오밤중에 달과 별을 보며 멍때리게 되는 경계 근무 같은 시간들이 그렇다. 내 몸이 이렇게 까지 버틸 수 있구나 싶어지는 순간도 오고, 캄캄한 밤의 공간을 바라보며, 내 앞날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저 하늘의 달처럼 내가 바라볼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조금씩 들기 시작한다. 전공에 대해서 고민하고, 앞으로 진로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그래봐야 뭐... 어릴때 갖게된 사고의 틀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30대에 접어들며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다시 변해간다. 학교에서 사회로 삶의 무대가 변했다. 새로운 무대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한 축이 된다는 것은 고난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 풍랑에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삶의 의미나 목적은 다시 저멀리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생각과 고찰이라는 것도 여유가 되야 할 수 있는 것이라는걸 깨달았다.


그렇게 쳇바퀴처럼 하루를 보내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기고 이제 40 을 바라본다. 직장생활도 10년 넘게 했더니 여전히 시간은 없지만, 다른 곳으로 시야를 돌릴 여유가 조금은 생겨났다. 그리고다시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흔들림이 없어진다는 불혹의 나이와 나를 바라보는 아이를 앞두고 내 인생을 생각해본다. 나는 왜 살고 있고, 나는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불교 사상에서 본다면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즐겁고 행복한건 짧고 많다. 반면에 힘든 것들은 즐비하다. 때론 인식의 차이라고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힘든건 힘든 것이라고 본다. 굶주리고 아픈걸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해도 힘든것처럼. 그 고난을 나는 왜 버티고 살아가는 걸까. 삶의 의미라는 질문은 내가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모든 생물은 자신의 삶에 충실하다. 식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도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어디 사람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쉬울까. 그렇게 단순하게 '저 풀 한포기도 살기 위해 애쓰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은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나이가 된것 같다.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네


이 질문은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죽음이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최후를 맞이 하는 순간 내 삶이 의미 있었다고 생각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마... 사는 내내 고민해야 하는 인생의 숙제와도 같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제시된 많은 질문과 대답은 결국 인생에서 중요한것이 무엇인지 자문해보는 시간이다. 흔히 인생은 여행으로 비유된다. 삶의 의미를 찾는 기나긴 여행. 우연히 이 세상에 나타나 죽음이라는 미지의 종착점을 향해 하루 한발 나아가면서 나라는 존재와 내 주변을 둘러싼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살아가는 것. 그런 커다란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한것은 여행 초반에 보고 듣고 생각하는것과 중반, 그리고 후반에 느끼는것이 모두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미 지나간 사람은 안타까워할것이고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결국 매순간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속에서 중요한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지 않을까?


과연 마지막 순간에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눈을 감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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