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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브르박 May 24. 2023

[출장한끼] 세종시 부강면-고향집

냉이듬뿍 짜글이

얼마 전 수행 중인 설계를 위하여 현장 조사를 다녀왔다. 이번 현장은 금강인데, 개인적으로는 담당하고 있는 용역 대상 하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강. 대전시, 세종시, 청주시 같은 도시 경계를 이루며 흐르고 있는 이 하천은 도시를 관통하는 한강과 다르게 도심지 구간에서도 개발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아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구간들이 꽤 많다.     

현장을 둘러보며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강변 모래사장 너머로 고층 빌딩이 우뚝선 도심과 하천이 어우러지는 경치들도 보여주는데, 그 덕에 현장을 살펴보며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잠시 멈춰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경치를 즐기게 된다.

           

이번에도 금강을 돌아다니면서 현장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설계하며 발생할 수 있는 지장물 저촉 문제나 제방이 설치되면 향후 제내지의 우수는 어느 쪽으로 흘려보내야 할지 현재의 수로들을 살펴보며 추측해 본다. 이번 현장은 도로도 설치되어 있어 공사 중 우회도로는 어느 쪽으로 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은데, 설계 때마다 느끼지만 가장 어려운 점은 지장물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아닐까 싶다.      


걷고 움직이면서 현장을 둘러보다 보면 늘 그렇듯 배가 고프고, 식사의 때가 찾아온다. 이번에는 다행히 면 소재지가 근처에 있다. 종종 현장 출장을 다니다 보면 편의점 가기 위해서 차로 40분 이상 움직일 때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면사무소 인근을 돌아다니며 어떤 식당들이 있는지 한번 훑어본다. 이날은 볕이 좋았지만 바람이 꽤 불어 현장을 둘러보는데 강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던 날. 그 덕에 체온이 꽤 떨어진 날이었다. 이런 날은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끌리는 법. 거리를 둘러보니 설렁탕이나 알탕 같은 메뉴도 보이지만, 불현듯 짜글이가 적혀있는 식당이 눈에 뛴다.     


출장 때문에 외지로 나가게 될 때 가능하다면 향토 음식을 먹어보려고 하는 편인데, 기왕지사 먹을 거라면 평소에 쉽게 접하지 못한 음식을 먹어보는 편이 흥미롭기 때문. 향토 음식을 운운한 이유는 짜글이가 충청도 향토 음식이기 때문이다. 짜글이는 얼핏 보면 돼지고기와 채소가 들어간 고추장찌개처럼 보이지만 찌개보다는 국물이 좀 더 적은 편이다. 우리가 평소에 보는 김치찌개나 고추장찌개에서 국물을 조금 더 덜어낸 느낌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그래도 충청도까지 왔으니까 짜글이가 괜찮을 것 같아 짜글이가 적혀있던 식당 '고향집'으로 들어왔다. 대로변에 위치하여 시선을 확 끌어당기고 있다. 

식당으로 들어가 메뉴판을 살펴보니 가성비가 좋은 식당은 아닌 것 같다. 일단 씨래기 국밥이 만천원이라는 점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어 졌다. 그래도 다른 식당을 찾을 시간은 없으니 자리에 앉아 짜글이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곧 밑반찬이 준비되고 오늘의 주요리인 짜글이가 등장하는데, 짜글이에 의외의 재료가 얹혀져 있었다.


바로 냉이가 올라가 있다. 음식을 가져다주신 직원분이 냉이만 살짝 익으면 바로 먹어도 된다고 알려주며 냉이를 먹기 좋게 잘라주고 간다. 말없이 경건하게 국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리며 밑반찬을 먹어보는데, 음…. 여기는 밑반찬이 자극적이지 않고 꽤 맛있다. 밑반찬이 맛있다면 주요리도 살짝 기대해 볼만하다.

곧 보글보글 짜글이가 끓어오르고, 각자 음식을 접시에 덜어 말없이 식사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의외의 재료였던 냉이로 시작. 분명 현장을 둘러보던 오전까지 우리는 겨울의 끝자락에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 봄의 시작에 와 있다. 


입안에서 냉이의 맛과 향이 가득차기 시작한다. 냉이가 들어간 음식은 냉이 된장찌개나 나물무침으로만 접해봤는데, 이런 칼칼한 느낌의 음식에도 냉이가 잘 어울린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칼칼한 고추장 베이스의 국물 맛에 지지 않고 냉이는 봄의 맛을 확실하게 혀로 전달해준다. 그리고 음식을 먹으며 예상외의 맛을 느꼈던 재료는 찌개 안에 들어간 애호박 말랭이. 이 단단한 식감의 말랭이는 다채로운 식감에 일조 한다. 보통의 애호박이 찌개에 들어간다면 재료가 푹 익어 그 형태를 잃었을 텐데, 짜글이에 들어간 애호박 말랭이는 자신의 존재를 뽐내며 형태를 지깁니다. 그리고 찌개 안에서 새로운 식감을 더하는 건 덤입니다.


의외의 재료와의 만남. 가성비가 좋지는 않았지만, 오늘의 한끼도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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