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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브르박 Jul 23. 2020

<나도 작가다> 책상을 가지고 있나요?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7년 전 결혼을 하려고 신혼집에 필요한 가구를 고르기 위하여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와 가구거리를 돌아다니며 가구를 구경했다. 신혼집으로 계약한 전셋집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가구만 사야 했고, 그마저도 크기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했다. 자칫 집에 들이지도 못하고 되돌려 보내야 하면 낭패가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구를 결정하면서 대부분 아내의 뜻을 존중했는데, 단 하나 내가 고집을 피운 것이 있었는데, 바로 책상이었다. ‘가뜩이나 작은 집에 굳이 책상까지 필요하느냐’라는 아내의 입장과 ‘책상만큼은 있어야 한다.’라는 내 입장이 대립되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사실 아내의 말이 맞았지만, 그럼에도 난 책상을 고집했다.      


  결혼 전 본가에서 지낼 때 사용하던 책상은 꽤 좋은 제품이었다. 어느 날 문득 책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 근처에 위치한 가구 매장들을 둘러보다 반은 충동구매처럼 구매했던 책상이었다. 상판은 두께가 5cm 정도로 튼튼하다 못해 묵직하기까지 했고, 그 길이는 1.7m 남짓에 폭도 거의 1.0m는 될 정도로 큰 책상이었다. 책상 위에 PC를 올려놓고 책과 문구류를 깔아 둬도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꽤 만족스러운 지름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실 그런 넓은 책상이 욕심났지만, 어차피 사봐야 집에 들이지도 못한다는 현실의 벽이 나의 지름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작은 책상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때 아내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내가 꺼내 든 최후의 카드는 ‘기술사 공부’였다. ‘앞으로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데, 관련 책도 많고, 상을 펴놓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책상은 작아도 하나는 있어야 한다.’라는 나름 설득력 넘치는 논리를 전개했다. 결국, 아내도 책상을 들이기로 마음을 돌렸다.      


  하지만 그런 최후의 카드가 무색하게 나는 아직도 자격증은 준비가 진행 중이고, 책상에 앉는 목적은 공부보다는 내 취향을 즐기는 목적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자면,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고 끄적여 보거나, 주말에 찍은 가족의 사진을 보정하거나, 조만간 갈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거나 읽고 난 책의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 더 잦았다. 왠지 머리가 복잡하거나 회사에서 혹은 집 외의 공간에서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나도 모르게 책상 앞으로 향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책상이 좋은 것에 대한 궁금증도 없었고, 그냥 문구류를 좋아하거나 잠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내향적 성격의 영향 탓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책상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는 책을 읽게 되었다. 김정운 작가의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라는 책이 책상이 내 삶에서 어떤 공간을 만들어 주는지 알게 해 주었다.     


  이 책은 작가님이 여수의 바닷가 섬에 미역 창고를 개조해가며 자신의 작업실을 만드는 에세이인데, 그 안에 작가의 전공인 심리학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공간인 ‘슈필라움’이 사람에게 주는 경험과 심리적 안정이 어떠한 것인지 설명해 주고 있다. 그 설명을 읽은 후 작은 책상이 나만의 ‘슈필라움’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슈필라움’이라는 공간뿐만 아니라 한 가지가 더 필요한데,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필요하다. 즉, 좋아하는 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 작가 본인도 여수의 작업실에서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그림을 그리며, 노래를 감상하고, 책을 자신의 마음대로 정리한다. 자신의 취향이 가득 묻은 행동들을 하면서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게 핵심이다.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것.     


 ‘나는 단수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드래곤 라자>에서 대마법사 핸드레이크가 한 말이다. 나라는 존재는 사회 속에서 하나가 아니다. 가장으로서, 아들로서, 직장 동료로서 아무튼 활동하는 영역만큼 나라는 존재도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그런 다양한 나라는 존재 모두가 나의 자아라고 할 수 있지만, 사회적인 영역에서 만들어진 자아는 아무래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모나지 않은 직장동료, 좋은 배우자와 부모, 좋은 친구라는 타이틀은 결국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타인의 시선을 지속적으로 의식하다 보면 이 또한 정신적인 압박이 아닐 수 없다. 이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만들어진 내가 아닌 나라는 존재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슈필라움이고 내 좋아하는 행동 즉, 취미이자 덕질이다.      



  그래서 난 취미를 권장한다. 나는 내 책상이라는 그 작은 공간에서 책과 서랍 속 문구들을 정리하며, 내 마음속 심란한 마음도 같이 정리를 했다. 그 책상에 앉아서 글을 끄적이며,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는 생각들을 꺼내 노트에 남긴다.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는 행위, 읽은 책의 표지를 그리는 것과 같은 내가 즐거워하는 행위들을 하며 나의 취향을, 어떤 취미가 세상 속에서 나를 꺼내 줄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책상이라는 작은 영역이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7살 장난꾸러기 아들에게서도 잠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단수가 아니었던 내가 나를 생각하는 존재로 있을 수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도 그런 ‘나만의 책상’을 가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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