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책은 늘 옆에 있었다.
어렸을 땐 엄마가 교회에 있는 동안 한 정거장 떨어진 교보문고에서 종일 시간을 보냈다. 바리스타 일을 할 때도 직장인이 되었을 때도 프리랜서로 홀로서기 했을 때도 책은 늘 함께였다.
10대 때 유난히 내향적이었던 나는 사람 사귀는 게 어려웠다. 새 학기마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사실이 큰 스트레스였기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보단 가만히 있는 걸 택했다. 스스로 혼자인게 편하다며 마음을 닫으니 이야기하며 지낼 친구가 없었다. 학교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어젯밤 본 아이돌 영상부터 학원, 연애, 하교 후 들릴 분식집 이야기 등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나는 조용히 일어나 도서실로 향했다.
조용한 도서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ㄱ,ㄴ,ㄷ... 순으로 정렬된 책이 나를 반겨준다. 책장 사이를 오가며 오늘은 어떤 친구와 대화할지 고민한다. 만화책을 사귈지, 맛있는 음식 사진이 담긴 요리책을 사귈지, 다양한 친구를 사귈 수 있다. 책과의 이야기는 언제나 편안하다. 굳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되고 상대방(책)의 이야길 듣지 않아도 된다. 내가 실수한 말은 없는지, 타이밍 맞게 호응하고 있는지 눈치 볼 필요 없다. 그렇게 10대의 난 사람이 아닌 책을 사귀며 조용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20대 때 꿈을 키울 때도 많은 도움이 된 건 사람보다 책이었다. 카페 사장님을 꿈꾸며 바리스타로 일할 때 공간을 예쁘게 꾸미는 법, 커피와 차 메뉴 만드는 법, 손님을 대하는 방법 모두 책에서 배웠다. 물론 몸으로 겪은 지혜도 있지만 책에는 훨씬 더 많은 경험이 있었다.
책 속 경험들은 카페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시작한 뒤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프리랜서로 첫발을 내딛었을 때 가장 힘든 건 마케팅이었다. SNS에 관심이 하나도 없던 내가 SNS로 나를 알려야 한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SNS=인스타그램, 이라고 알고 있을 때 드로우앤드류님의 전자책에서 나에게 맞는 SNS 찾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블로그를 시작했고 조금씩 나를 알렸다. SNS 찾는 법부터 마케팅, 퍼스널 브랜딩 등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 지 모를 땐 책을 찾았고 해답을 얻었다.
그중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건 에세이 책에 담긴 정서적 위로였다. 열심히 했지만 그 누구도 나를 봐주지 않을 때 에세이를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김난도 작가님의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그대의 계절을 준비라. 너라는 꽃이 피는 계절'이다. 사람마다 꽃 피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라는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힘들 때 이 문장을 되새기며 내가 피울 꽃은 어떤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을지 상상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10대를 함께 한 책은 말하지 않아도 편안함을 주는 친구였고 20대를 함께 한 책은 선생님이었으며 30대를 함께 보내고 있는 책은 영감을 주는 뮤즈다.
나의 40대를 함께 보낼 책은 어떨까, 가능하다면 책이 나에게 의미를 주는 게 아닌 하나의 장르가 되고싶다.
학교 도서실, 도서관에 000, 100 ,200 분류 기호에 맞게 정리된 책장에 1000 '제제란 장르'로 들어가고 싶다. 참고로 도서 분류 기호는 900대가 끝이다. 책과 함께 자란 내가 하나의 장르가 되어 누군가의 친구이자 멘토이자 뮤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