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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미 Apr 29. 2024

다시 시작된 돌봄 (이번엔 잘 할 수 있을까?)

5-4 치매극복 프로젝트

“어머니 지금 몇 살?”

“팔십둘.” 


어머니의 나이는 87세이지만 고장난 시계처럼 늘 82 한 지점에 멈춰있다.  

   

어머니가 집으로 오신 지 두 달이 되는 시점이었다. 첫 2주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너무나도 절망스러워 희망의 빛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어머니의 죽어가는 뇌를 살려보기 위해 유익하다는 정보들을 밤낮으로 찾아보게 되었다.  

   

눈 운동, 지압, 손가락 운동, 치매 예방 체조, 웃음 치료, 보폭 늘려 걷기, 일기 쓰기, 노래하기, 셈하기, 돈 세기, 동화책 읽기, 치매안심센터 도구 이용하기(퍼즐 맞추기, 그림그리기, 교구에 바느질 끼우기, 도형 맞추기), 그 외에도 공진단을 직접 만들어 매일 식전에 드시게 하기, 치매에 도움이 되는 식단 준비하기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도움이 되는 활동과 교육을 시작했고, 그 효과는 정말 대단했다.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한 달이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린 일명 치매 극복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되는 우리의 노력에 아버님도 감동하셨는지, 어느 날은 내 인감도장을 달라시며 당신이 가진 땅 중에서 가장 노른자위를 내게 주겠다고 하셨다. “니가 우리에게 잘하는 줄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똥오줌 다 싸는 어머니를 그렇게 극진히 대하고, 늘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시키고, 공부시키고 하는 걸 보니, 내 모든 재산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아버님의 귀한 재산을 덥석 받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받으면 안돼!‘ 하고 속삭이는 양심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땅덩어리가 나의 족쇄가 될 것 같은 불안함이 드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나는 아버님 기분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기에 자존심이 허락하지도 않았다. 어떤 사람은 “맏며느리니까 그렇게 모시고 있구나”라면서 내가 간병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맏며느리여서 모든 것을 책임진 것은 아니다. 막내며느리였더라도 내 성격상 스스로 자원하여 부모님을 돌보았을 것이다.    

 

치매 간병과 관련한 여러 가지 유튜브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국내 영상이든 외국 영상이든 시부모님을 간병하는 틈틈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청했고, 필요한 부분은 메모해가면서 공부했다. 영상 속 전문가들 대부분은 하나같이 치매는 고칠 수 없고 좋아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외국의 영상들에서는 희망을 품을 만한 내용들이 더 많았다. 매일 운동하고, 뇌를 활성화시키는 활동을 같이하고, 가족들이 치매 환자인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편안한 환경에서 꾸준히 소통하면 많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 많은 영상 중에서도 〈농촌 및 소외된 지역사회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Rural and Underserved Cummunities)〉 채널에서는 어떻게 간병해야 좋은지를 좋은 예와 나쁜 예로 나누어 알기 쉽게 실제 영상을 제작하여 보여주었다. 제대로 된 치매간병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탈리 에드먼드(Natali Edmonds)가 진행하는 〈채널 캐어블래이저(channel Careblazer)〉에서는 ’오늘 당장 멈춰야 하는 간병의 실수들(Caregiving Mistakes to Stop Doing Today)‘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고쳐 주는 것(Correcting), 말다툼하는 것(Arguing), 논리적인 근거로 장황하게 설명해주는 것(Reasoning), 시험 보는 것(Testing) 이 바로 그것들이다.  

   

뜨끔했다. 난 엄마를 간병하면서 이 4가지 해서는 안 될 사항을 늘 자행했다. 엄마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엄마는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 왜 이렇게 고집이 세냐?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아냐? 제발 사고 좀 치지 마라” 하면서 훈계하고 지적하고 언쟁을 벌였으니 말이다.     


어머니에게는 똑같은 실수를 더 이상 하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전업으로 24시간 어머니의 간병인이 되었고, 개인 전문 치매 강사가 되었다. 이전까지는 치매란 그저 기억력이 사라지는 병, 종국엔 벽에 똥칠까지 하게 되는 병, 우리 힘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만 잘못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뇌를 살리기 위한 방법, 치매 극복을 위한 간병 방법은 도처에 있었다. 여러 번 똑같은 말을 되돌이표처럼 말을 해도 늘 새로이 들은 것처럼 반응해주고, 여러 번 말한 것을 기억 못 해도 늘 처음 말하는 것처럼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단기 기억(Short-term memory)에 해당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은 삼가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며칠이냐?

무슨 요일이냐?

이 사람이 누구냐?

아침에 뭐 먹었냐?

좀 전에 뭐 했냐?   

  

예를 들어 자식이 왔을 때는 누군지 알겠냐고 질문하지 말고, ’둘째 아들 ♡♡♡가 왔네요.‘ 하면서 미리 관련 정보를 주고 환자의 반응에 맞추어 그다음 말을 이어가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복이 참 많으신 분이다. 치매 엄마로 인해 이미 유경험자가 된 며느리가 있으니 말이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거의 동물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어머니를 집으로 모신 지 거의 2개월 만에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며느리인 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어머니, 표정도 없고 초점 없는 눈으로 감정표현도 없는 식물인간 같았던 어머니, 가족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도 무표정한 얼굴에 한 곳만 응시하던 어머니, 어머니에게서는 희망은 아주 먼 이야기였고 다시 좋아질 것이라고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아~, 입을 크게 벌리고 따라 해봐요.”

“아~.” 


어머니는 입을 벌리지도 못했고 소리는 겨우 들릴까 말까 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다.


“어머니, 나처럼 이렇게 입 모양을 크게 하고 소리도 크게 해봐요. !” 

“아~.” 

“좀더 크게! 다시 배에 힘을  주고! 소리 내서! !”

“아~.” 


어머니 소리는 여전히 잘 들리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감정이 돌아오게 한 일등 공신은 웃음 치료였다. 처음에 어머니의 표정은 딱 하나였다. 눈의 초점이 이미 사라져 버려서 말하자면 생선가게 앞에 진열된 죽은 동태 눈깔(이렇게 말하기 죄송스럽지만)과 흡사했다. 그래도 남편과 나는 포기하지 않고 유튜브 웃음 치료 영상을 이것저것 찾아가면서 공부했다. 그중에서 어머니가 따라 하기에 안성맞춤인 영상 하나를 골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우린 무표정의 어머니를 위해 마치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웃기기 위해 별짓을 다 해보아도 변화가 없었다. 그런 어머니가 안타까워 남편이 어머니 겨드랑이에 간지럼을 태웠다. 순간 어머니 얼굴에 웃음기가 묻어나왔다.    

 

“그래, 그래 그렇게 웃는 거야” 

“바로 그거야. 그게 시작이야!” 


우린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그 가능성의 빛에 환호했다. 희망의 신호탄이었다.    

 

우리 부부는 어머니를 웃기려고 얼마나 용을 썼던지 웃음 치료 후에 우리는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배를 얼마나 세게 힘을 주며 웃었던지 다음날엔 마치 윗몸일으키기 50개는 한 사람처럼 뱃살이 아파 걷기도 힘들었다. 직접 경험해보니, 계속 웃는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운동이었고, 몸으로 직접 운동한 효과와도 같았다.     

우리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지금 몇 교시예요?” 하는 며느리의 질문이 힌트가 되어 어머니를 위한 활동을 치매탈출 프로젝트라고 명명했다. 매일 7교시까지 이어졌으며 웃음 치료 요법이 그 프로젝트의 마지막 교시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은 누구라도 어머니를 위한 프로젝트 시간에 같이 동참해야 했다. 손자들을 비롯하여 자식들 그리고 친척들까지도. 이 치료 활동을 다 같이 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누구 하나라도 싫다는 기색 없이 같이 동참해주니 너무나 감사했다. 게다가 그들도 운동이 많이 된다며 즐거워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병구완에 일조했다는 흐뭇함을 그들의 얼굴에서 읽어볼 수 있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의 도움이 어머니의 뇌를 살리는데 부스터 역할을 한 셈이었다.    

 

꾸준히 하다 보면 뭔가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점점 감정이 있는 어머니가 되어갔다. 나는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 누가 치매는 고칠 수 없다고 했냐고! 치매 환자가 있는 가정마다 찾아가서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 어머니를 보라고. 증거가 있다고. 여러분도 이렇게 해보라고. 

    

https://youtu.be/b2QKyxpAExQ?si=0q3uL7dHLKRKpZ5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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