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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미 Sep 23. 2024

치매로 가는 길목에서...

주문할까요?

"주문할까요?" 


카톡메시지다.

나는 잠시 이게 무슨뜻이지? 내가 뭘 주문해달라고 했었나? 아님 좋은 상품을 이분과 얘기 나눈사실이 있나?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다. 전혀 힌트가 될만 한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분과 최근에 소통한기억도 없다.


"무엇을요?" 답을 보냈다.


잠시후, 걸려온 전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한가지예요." 또다른 사람의 목소리다.

"네?"

"막국수 주문해 놓으려는데 곧 도착하죠?"


아뿔사, 그제서야 어제 한 약속이 생각이 났다. 나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열심히 남편을 위한 점심 준비에 정성을 쏟고 있었다. 오랜만에 집에와서 밖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남편을위해 맛있고 영양가 듬쁙담긴 파니니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든 그일에 집중하고 즐기는 편이다. 어떻게 하면 비쥬얼이 먹음직스럽게 나올까? 빠진 영양소는 없을까?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하게 요리하던 나의 밝았던 얼굴이 순식간에 자괴감으로 구겨져갔다. 우울감이 내 온몸을 마비시켰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약속한 모임을 잊어버린것이 한두번도 아니고, 아니 '주문할까요?' 문자왔을때라도 생각이 났어야 하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생각이 안나다니 한심하고 속이 상했다. 오늘 만날 장소와 메뉴까지 내가 추천한 것이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까맣게 나의 기억속에서 사라졌을까? 그쪽에서는 또 얼마나 황당했을까? 오늘의 에피소드로 다들 나의 상태가 심각하다는것을 인지 했겠지? 


오늘이 내가 가장 건강한 날이라는 사실이 이제는 더이상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 되었구나 생각하니 앞으로의 나의 인생패턴에도 수정이 불가피한 시점이 된듯하다.


남편이 들어왔다. 빵을 좋아하는 남편이기에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곁에서 같이 먹고 있는 나는 그저 빵을 우적우적 씹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것일까? 치매어머니들을 간병했기에 어머니가 점점 인간에서 멀어져가는 과정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도 그런 마지막 단계에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릴까? 인간에서 점점 제 할일도 모르는 그저 생명이 붙어있는 동물이 되어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오늘의 사고를 남편에게 미처 다 설명하기도 전에 내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목에선 뭔가 올라오는 감정으로 말을 이어갈수가 없었다. 복받쳐 흐르는 눈물때문에 말을 미처 다하지도 못하고 화장지로 눈물과 콧물을 닦아야만했다. 그이는 그럴수도 있다고 애써 위로해 주었지만 문득문득 훔쳐본 남편의 얼굴에도 걱정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자.


우리가족 누구도 나때문에 힘들어지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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