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제충만 Jan 04. 2019

방글라데시 아이들 잘 놀고 있어요

아이들의 놀이는 만국 공통

방글라데시를 다녀왔다. 우리나라의 1.5배 크기에 1억 7천만 명이 모여사는 방글라데시는 도시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풍경에서 사람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고령화가 심각한 우리나라와 달리 24세 이하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아이들과 젊은이가 많은 나라다. 나는 수도 다카에 머물며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돌로 된 기둥에는 학교 이름조차 쓰여 있지 않지만 넘쳐흐르는 노는 소리가 학교라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오래된 파란 철문은 한쪽이 주저앉은 채 활짝 열려 있다. 개교한 이래 한 번도 닫힌 적이 없는 눈치다. 학교에 들어서자 색이 바랜 흰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공부하는 건물이다. 잘 사는 지역에 있는 공립학교라고 했는데 그리 튼튼해 보이지 않다. 벽에는 이 나라 글자가 온통 써져 있다. 운동장 곳곳에 떨어진 종이들이 바람에 날린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휑했을 곳을 놀이가 채우고 있었다. 



학교는 방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크리켓이다. 방글라데시의 국민 스포츠 크리켓을 아이들이 즐기고 있다. 공을 던지는 아이와 치는 아이, 공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아이, 앳돼 보이는 아이들은 멀찍이 모여 쳐다보고 있다. 공치는 아이가 허리를 흔들흔들거리며 막대를 휘 젖자 공 던지는 아이는 큰 소리로 뭐라 한다. 신경전이다. 아이들은 진지해 보였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어린 시절 동네 마당은 종목은 다를지언정 비슷한 풍경이 매일 펼쳐지곤 했다. 



방글라데시 아이들 노는 것은 우리랑 똑같구나.



우리나라 초등학교에는 철봉과 그네, 조합놀이대와 같은 놀이시설이 운동장 한편에 있다. 이 학교에서는 한참을 둘러봐도 기구 하나 찾을 수 없다. 대신 내 키보다 작은 녹슨 철제 프레임만 찾을 수 있었다. 저 갈고리에는 무엇이 달려 있었을까? 작고 아담한 그네였을까? 아니면 방글라데시 전통 놀이기구였을까? 녹슨 기구 밑에는 땅이 다져지고 파여 울퉁불퉁 흔적이 남았다. 아마도 아이들은 시간마다 몰려나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겠지. 워낙에 유연한 아이들이다 보니 두 명 세 명 다 같이 신나게 흔들었을 거다. 줄이 끊어졌든지, 누가 다쳤든지 이제는 그 흔적만 덩그러니 남았다.



크리켓 옆으로 한 무리의 아이들은 대나무에 빨랫줄을 매달아 간이 네트를 만들어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조악하기 짝이 없는 네트지만 바닥에 코트 줄도 긋고, 박진감만큼은 수준급이다. 우리 어릴 때도 빨랫줄 하나면 높이에 따라 배구, 배드민턴, 족구 못하는 것이 없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내가 두리번거리며 손을 내밀자 냉큼 라켓 하나를 넘겨준다. 몇 번 합을 맞췄다. 깃털이 다 빠져 흔적만 남은 셔틀콕이 제멋대로 날아다닌다. 이내 끝이 났지만 아이들은 신이 났다. 멀대 같은 외국인과 배드민턴을 쳤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려나?



어린 시절 방학 중 하루였다. 나 홀로 학교 앞 문구점을 간 날이 있었다. 학기 중에는 벅적벅적하고 물건 하나 사려면 형, 누나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했는데 그날은 텅 비어 있었다. 주인아저씨도 TV 보며 건성건성이다. 오후의 누런 햇살과 아이들 손 때 묻은 물건들이 매력을 잃고 축축 늘어져 있는 나른한 풍경이 기억이 난다. 방글라데시 학교 앞 문구점도 한적하다. 아이 두서넛이 보였지만 딱히 뭘 사려는 것 같지도 않다. 이 아이들도 내 어린 시절과 비슷한 경험을 하는 날이었을까?


 




또 다른 놀이터는 우리나라로 치면 한남동 대사관 밀집 지역 같은 부촌에 위치해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아주 잘 관리되어 있다. 공원을 둘러 벽이 있고 입구에는 항상 누군가 지키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돈을 모아 공원을 만들고 사람도 고용해서 조경을 한다고 한다. 부자 동네라 그런지 놀이기구가 참 많다. 매번 갈 때마다 부모와 함께 나온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미끄럼도 타고, 그네도 타고, 시소도 탔다. 부모들은 멀찍이 벤치에 앉아서 쉬거나 함께 잔디밭에서 공을 주고받기도 했다. 평화로운 일상이다.



니캅을 착용한 한 어머니와 아이가 노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니캅은 무슬림 전통 여성복인데 눈만 내놓은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이 나로서는 낯설었다. 한참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옷이 불편해 보이지만 여느 우리나라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네도 밀어주고 아이가 다칠까 봐 주의도 주고 핸드폰으로 연신 아이 사진도 찍는다. 아이도 놀다가 엄마에게 오고 또 놀다가 엄마에게 오고 병아리처럼 엄마를 참 잘 따른다. 말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입은 옷도 다르지만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만큼은 똑같다.



이곳 놀이기구는 미끄러지는 각도나 올라가는 계단의 폭이 위험해 보인다. 그네도 쿠션 하나 없는 철제 그네다. 낙하지점은 모래나 푹신한 고무칩이 아니라 콘크리트다. 한국이었으면 테이프 칭칭 감기고 바로 이용금지다. 기구는 또 얼마나 단순한가?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놀이터 삼종세트라고 해서 그네, 조합놀이대, 시소가 아이들의 창의성을 해친다며 몰아내야 할 표적으로 낙인찍는다. 여기는 똑같은 놀이기구를 2~3개씩 설치해놓았다. 


우리 어릴 때는 터무니없는 수준의 놀이기구가 가득했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잘 놀았다. 이곳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건 애들 잡겠는데 싶지만 3~4살 먹은 아이가 부모의 도움 없이 익숙하다는 듯 위험해 보이는 미끄럼틀을 신나게 탄다. 단순한 놀이기구를 가지고도 친구들과 이렇게 저렇게 놀이를 만들어가며 노는 모습이 별 지장은 없어 보인다. 아이들의 놀이는 숨 쉬고 있었다. 


스페인의 놀이터
캐나다의 놀이터


스페인과 캐나다에서 직접 찍은 놀이터의 모습이다. 평범하다. 우리가 동경하는 서양의 놀이터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경우도 많다. 상상의 나래는 기구가 아닌 아이들 안에 숨겨져 있다. 방글라데시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 중 가장 못 노는 아이는 혼자 온 아이였다. 혼자 온 아이는 몇 번 놀이기구를 타더니만 금세 지루해했다. 반면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모여 놀던 아이들은 놀이기구 하나 없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안전 기준이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다. 삼종세트가 최고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각 나라 상황에 맞게 아이들에게 가장 최선의 것을 주어야 한다. 안전하고 다양한 행동을 유발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놀이기구는 중요하다. 다만 우리에게 더 시급한 과제는 놀이하는 '터', 함께 노는 '친구'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 아니 더 나아가 아이들에게 '놀이'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놀이터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방글라데시를 돌아다니며 만난 대부분의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놀고 있었다. 어른들의 삶의 영역과 아이들의 영역이 명확히 분리된 우리나라와 달리 방글라데시는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곳에 아이들의 놀이가 움트고 있었다. 새삼스럽지는 않다. 내 어린 시절도 비슷했다. 집 앞마당과 주변 논밭, 윗마을 가는 골목길, 공장 앞 공터 같은 이런저런 삶의 공간이 곧 놀이터였다. 중간에 아파트가 생기고 놀이터가 열렸지만 그곳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모여 놀다가 마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아이들의 놀이는 만국 공통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 아이들의 놀이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다르지만 아이들은 나름대로 잘 적응해서 놀이를 해나간다. 놀이에서만큼은 인종과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의견, 사회적 출신, 재산 등에 따른 우열이 없다. 


아이들은 다 놀이를 잘한다.



반면에 우리 어른들은 놀이에서조차도 우열을 가린다. 북유럽 선진국 아이들의 놀이를 따라야 할 모범으로 놓고 후진국의 놀이는 원시적이거나 배울 것이 없는 식으로 은연중에 치부할 때가 많다. 마치 북유럽 아이들이 땅을 파면 창의적이고 방글라데시 아이들이 땅을 파면 원시적으로 느끼는 차이다. 놀이에 있어서도 좀 더 고상하고 고결하고 배울 점이 많은 놀이가 있기는 한 걸까? 



최근 MBC, KBS, EBS에서 놀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방송에 소개된 외국 사례는 일본을 제외하면 공교롭게도 전부 유럽 국가였고 모두 백인이었다. 최근 5년 내 토론회나 강연을 통해 한국에 소개된 놀이 관련 해외 전문가는 일본을 제외하면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백인이었다. 한국에 번역된 놀이 관련 해외 서적의 저자도 백인이다. 백인 아이가 하는 놀이가 우수하고 금발 아이가 하는 놀이가 이쁘다는 우리 안에 내재된 백인 우월주의 편견이 알게 모르게 스며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의 놀이와 놀이터는 서구의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에 선진적인 시스템을 배우는 것은 무척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어른들의 편견만큼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잠깐 곁눈질 한 수준이지만 내가 만난 방글라데시 아이들은 잘 놀고 있었다. 북유럽 아이들도 잘 놀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문제다. 제대로 놀 시간조차 마련하기 어렵고, 놀 곳들은 주차장, 차에 빼앗겨 버렸다. 동네를 돌아다녀 봐야 친구 한 명 만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하루에 아이가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 정도를 수치화해서 각 나라를 비교해볼 수 있다면 대한민국 아이들이 꼴찌, 가장 후진국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놀아도 나중에 서울대 갈 수 있나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