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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소 Apr 25. 2021

직장인의 신비한카드 명세서

아니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니까요.

 “카드 도용당한 거 아냐?”


 맹세코 나는 이렇게 큰돈을 쓴 적이 없다. 카드사에 전화를 해봐야 하나? 다시 핸드폰 화면을 노려보았지만 이번 달 결제 예정금액 1,703,996원은 그대로였다. 점심시간에 커피나 사 먹고 저녁에 외식 몇 번 하고 인터넷 쇼핑 몇 번 하는 직장인의 카드 명세서에 이렇게 큰 금액이 찍힐 리가 없지 않은가. 무언가 오류가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정말 누군가가 내 카드를 도용했거나.


 당장 BC카드 고객센터에 전화하고 싶었지만, 우선 명세서를 확인하기로 했다. 모니터 앞에 핸드폰과 A4용지를 펼쳐놓았다. 내가 쓴 내역과 도용당한(?) 부분을 명확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장하게 펜을 집어 들고 BC카드 어플을 켰다.


 “4월 1일 스타벅스 4,200원 이건 내가 점심시간에 사 먹은 게 맞아. 52,544원 무신사에서 티셔츠 샀었고. 

4월 2일 마카롱 9개 19,800원 생일인 직원 선물 사준 것 맞고. 

4월 4일 16,000원 잠실에서 친구 만나 밥 먹은 거랑 저녁에 15,500원 커피랑 케이크 사 먹었지. 

4월 5일 또 4,200원 스타벅스 커피, 17,500원 쿠팡 이츠 저녁 배달시켜먹은 거 기억나고...”


 내역서를 볼수록 목소리가 작아지고 숙연해졌다. 차라리 뭐라도 도용당해서 모르는 내역이 있었으면 할 정도로 내가 쓴 금액들만 가득했다.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놀고먹었던 장면들이 선명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래... 다 내가 썼구나... 내가 썼어...”


 아무리 그래도 적은 금액들만 썼는데 이렇게 큰 금액이 나올 리가 없다. 이번에는 합계 오류에 대한 나름 합리적인(?) 의심을 품었다. 내역서대로 하나하나 계산기를 두드리니 당연하게도 1,703,996원이 나왔다.


 5천 원을 10번 쓰면 5만 원이 되고 5만 원을 10번 쓰면 50만 원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장하게 계산기까지 두드려본 날이었다. 하지만 분명 다음 달에도 카드 도용을 의심하게 되겠지. 받을 때마다 신비한 카드 명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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