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이소 Mar 15. 2021

이것이 사라지니 직장인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

직장인이라면 격하게 공감할 것이라 믿는다네요.



 저녁 7시 55분. 아직은 낯선 회사 주차장을 나섰다. 퇴근 러시가 지난 시간이라 도로는 여유 있었다.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부서에 발령 난 지 이틀째였다. 업무 숙지를 위해 야근하고 돌아가던 참이었다. 언제나처럼 좋아하는 유튜브 강연을 틀어놓고 소리로만 들으며 운전을 했다. 빡빡한 회사원의 일상 속 작은 즐거움이었다.


 저녁 8시 12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벌써 집 주차장에 도착한 것이다. 퇴근에 고작 17분이 소요되다니. 54분짜리 강연 영상은 본론도 들어가지 못했다. 누군가는 "별 걸 다 가지고 요란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출퇴근 왕복 3시간 이상 걸리던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사무실까지의 거리가 짧아지니 기상시간이 늦춰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더 이상 다음 날 이른 기상을 위해 저녁에 부랴부랴 씻고 좋아하는 웹툰을 뒤로한 채 억지로 불을 끄는 일도 없어졌다.


 문득 이전 부서에서의 치열했던 출근 시간이 떠올랐다. 나에게 선택지는 통근버스 혹은 자차 두 가지였다. (일반 버스는 배차간격이 1시간 이상이며 길도 굉장히 돌아가기 때문에 배제했다.) 무엇을 골라도 편도 1시간 30분 이상 걸렸기에 주로 통근버스를 택했다. 남이 운전해주는 차에서 잠이라도 자자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만만치 않았다. 일반 좌석버스에서도 의자를 뒤로 맘껏 젖힐 수 없는데 하물며 직원들끼리 타는 통근버스에서는 더더욱 불가했다. 올곧은 의자는 몰려오는 잠과 함께 내 허리를 구부려 뜨리고 내 목을 마구 꺾어댔다. 회사에 도착하면 몸이 부서지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온 몸이 삐걱댔다. 이미 오후 업무까지 끝낸 것 같은 탈탈 털린 컨디션으로 맞이하는 아침이 상쾌할 리 업었다. 카누를 종이컵에 탈탈 털어 만든 탕비실 아메리카노가 유일한 자양강장제였다.


 출퇴근 시간이 짧아진 것만으로 삶의 질이 높아졌다. 아침에는 잠을 좀 더 잘 수 있고, 퇴근 후에는 카페에 들러 혼자 분위기를 낼 수도 있다. 시간이 넉넉해지니 마음속에도 여유의 꽃이 피어났다.






 그렇다면 출퇴근 시간을 아예 없앤다면 더욱 유쾌한 매일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놀랍게도 -나는 해당이 없지만- 출퇴근 시간의 소멸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작년부터 코로나 19로 재택근무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 즉 출퇴근 시간의 퇴출로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코로나 19가 기승이던 2020년 9월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재택근무 활용실태 설문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대체로 만족’이 60.5%, ‘매우 만족’이 30.8%로 전체의 91.3%가 재택근무에 만족했으며, 그 이유로 여가시간 확보로 삶의 질 향상, 출퇴근 스트레스 해소, 일·가정 양립 기여, 업무 집중도 향상을 꼽았다. 결국 모든 이유가 회사에서 벗어난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로 수렴한다.


 하루 중 나를 위한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지는 직장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 회사에 상납하는 시간은 9시간으로 충분하다. 길거리에 시간을 내다 버리는 일은 다가올 미래에서 점차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오늘부터 헬스를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누워있는 것을 절대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저녁 6시 반에 햄스터가 쳇바퀴 달리듯 러닝머신을 뛰는 게 그렇게 즐거운 일인 줄 몰랐다. 몇 주 전만 해도 이 시간에는 통근버스에 몸을 싣고 아저씨의 터프한 운전에 멀미를 해가며 치열하게 집에 오고 있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짧더라도 나를 위한 시간이 직장인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무실로 뇌물(?)이 도착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