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
내 인생은 정말로 내 마음대로 된적이 없다. 20대에 내가 세운 계획들(대학포함)은 어느것도 성공하지 못한 것 뿐이었고, 30대의 내 인생 또한 내가 꿈꾸던 그런 결혼생활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포기를 잘하는 걸까ᆞ? 어차피 해도 안되니?
20대에는 우선 대학에 실패하고, 30대의 나는 육아에 찌들어 있었다. 나의 결혼은 여동생이 결혼을 먼저 하게 되어, 마음이 급해졌다. 아직도 여동생 결혼식날 정장을 입고, 손님을 맞으며 서있던 조금은 처량한 기분이 생각이 난다. 그래서 그 후에 선을 미친듯이봤다. 정말 50번도 넘게 본 것 같다. 그 때는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ᆞ? 조금 늦게 결혼한다고 큰일이 나는것도 아닌 것을. 남의 기준에 살아오던 습관. 부모님 눈에도 남들에게 시집안간 큰 딸은 좀 그래보였을까? 보통 부모님의 소개로 만난 선자리였기에, 그 무게가 상당했다. 진짜로 3번 만나면 결혼해야 할거 같은. 31살의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던 나는 선 시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선에 나오는 남자들은 대부분 연상의 남자, 직장이 탄탄한 사람, 경제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 사람 딱 이 3가지 유형인 것 같다. 그래서 진짜로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처럼, 연봉, 사는곳 이런거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렇게 사랑에 목을 매던 사람도 아니고, 실리를 무시하며 살던 여자도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그냥 처음과 끝이 똑같은 사람,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왠지 결혼할거 같다 싶던 사람과 결혼했다. 선본지 3개월만에 상견례를 하고 12년째 무탈하게 살고 있다보니,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타이밍에 만나는 사람하고 한다는 소리가 맞는 듯 하다.
짧은 연애 기간탓인지, 나는 남편외의 그의 조건은 보이지 않았다. 30대 중후반의 남자들은 무언가 미적지근하며, 그 마음속을 알수가 없는 적이 많았는데, 지금의 남편은 그 중에서는 그래도 열정이 있는 편에 속했다. 그 점이 나를 결혼까지 이끌었다. 그 뒤에 이 아들을 너무 너무 사랑하시는 어머님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들을 결혼시키고, 많이도 우셨다고 한다. 나쁜 분은 아니신데, 그냥 아들을 너무 사랑하셨던거 같다. 아직도 결혼초에 나에게 세상에서 당신 아들과 같이 사는 내가 제일 부럽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지금은 좀 바뀌셨다. 결혼하고 아들이 변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머님 말보다 내 말을 더 잘 듣는다고 생각해서일까 암튼 이제는 다 지나간 시절이라, 어머님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큰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아이가 참 안 이뻤다. 산후우울증이었는지, 그 어머님이 좋아하는 손자여서 그게 투사가 되었는지, 우리 큰아들이 2돌이 될 때까지 이 아이가 참 안 예뻤다. 육아를 처음에는 책으로 배워서 무조건 엄마손으로 36개월까지 키워야 한다는 철칙을 지켰는데, 화를 내면서 데리고 있기 보다는 어린이집이라도 빨리 보낼걸 그랬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시어머니가 싫어서, 그 분이 이뻐하는 자기 아이를 안 좋아하다니.
우리 큰아이는 생후 2달째부터 밤에는 통잠을 자고, 먹기도 잘먹고 남들이 보면 너무너무 순하다고 그러는 아이였다. 시어머님의 이런 아이 10명이라도 키울수 있겠다는 말에 진짜ᆞ 아이를 시댁에 놓고 오고 싶을 정도였다. 그게 지금도 큰아이에게 미안해서 지금도 이야기 하면 눈물이 날때가 많다. 그때 너무 못 놀아주고, 무엇을 그리 원통하고, 바쁘다고 아이를 이뻐해 주지 않았을까. 오랜 시간 사과하고 서툴러서 미안하다고 말을 했는데도, 아직도 응어리가 있는 모양이다. 큰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 둘째 소식은 없어서 우리 가정엔 아이 한명만 주시나 싶었다. 그러다 맞이하게 된 둘째는 그냥 어부지리로 생긴 아이라 그런지 그냥 모든게 다 용서되었다.
20대, 30대를 지나 이제 40대가 되어서야 알게되었다. 내가 애쓰고 가고자 하는 방향이 옳지 않으면, 될일도 안된다는 것을. 나를 무시하고, 세상의 기준으로 세운 계획은 내게 맞지 않는 옷이었고, 그랬기에 모든걸 실패했음을 이제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