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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Nov 06. 2017

20kg의 배낭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것.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다. 


오빠는 집안보단 본인을 더 생각하는 개인적인 성향의 사람이었고, 뚜렷한 목표가 있었으며 욕심도 있었다. 군생활을 하는 동안 틈틈이 공부를 하더니 전역 후 토플 점수 하나만 들고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다.

좋은 집안의 자제들 사이에서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했고 기어코 목표하던 미국의 명문대까지 진학에 성공했다. 그 이후로도 우리나라의 몇 배에 달하는 비싼 외국인용 등록금 때문에 빠른 졸업을 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미국 대학의 졸업식은 한국보다 훨씬 더 화려했으며, 크고 중요한 행사라 하였다.

부모님은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애틀란타로 오고 있는 참이었다. 그 날짜에 맞춰 나도 부모님과 함께 오빠의 졸업식을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서 애틀란타행 비행기를 탔다.


엄마는 졸업식이 진행되는 커다란 광장 안에서 우수학생에게만 주어지는 노란색 줄 메달을 멘 오빠의 이름이 울려 퍼지자 결국은 눈물을 쏟으셨다. 욕심만큼 누릴 수 없었을 오빠에게 늘 미안해하시던 엄마다. 

오빠의 유학생활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짐작이지만 알고 있던 나 역시 꽤 많은 것을 포기했었으나, 그것은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엄마는 이 후, 졸업식이 진행되는 내내 아이처럼 우셨다. 

“고생하셨어요.”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학업이 끝나기 전 치러진 졸업식이라 오빠는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단출한 가족여행을 성대히 치렀다.

애틀란타를 떠나 미국의 최 남단 마이애미까지.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이애미에서 편도 4시간 거리에 있는 미국의 땅끝마을 '키웨스트'는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조용하며, 아름다운 동네였다. 그 해안가를 따라, 나는 엄마 아빠와 손을 잡고 걸었다.


"엄마, 이런 길이 계속된다면 나는 3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마냥 걷기만 할 수 있어."


엄마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시더니, 갑자기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활짝 펴 보이시며 말씀하셨다.


"난 5시간."


엄마의 고향은 대한민국의 땅끝, 해남이었다. 우리는 연휴가 길어질 때면 늘 해남을 다녀왔다. 

엄마에게 여행이란, 나에게 빨래나 청소 같은 단어가 붙어있는 것만큼이나 어색하고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땅끝마을에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엄마를 닮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루에 있었던 피로를 토해내며 매일 밤 펑펑 울어 부모의 어깨를 눈물로 짓누르던 철딱서니 없는 사회초년생 딸래미, 위험함을 가득 안고 부모의 억장을 무거운 배낭으로 밟으며 세계일주를 떠나겠다는 배짱이 딸래미때문에 부모라는 이름으로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아오신 우리 엄마, 아빠는 사실은 이렇게 잘 웃는 소녀, 소년이었다.

딸에게 오는 불행을 온몸으로, 필사적으로 막으려다 허리에 다리에 녹이 슨 것을 모른 척 외면하며 살아왔다는 걸 나는 또 천천히 잊어가게 될 것이다.


마이애미 공항에서 엄마 아빠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스페인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2주 만에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번 여행으로 아빠는 무언가 묻은 줄 알고 긁어내 주다가 딸의 팔꿈치 안쪽에 작은 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엄마는 여행 전 수술을 한 사마귀 때문에 딸의 발바닥에 결국엔 흉이 남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아빠의 기침이 작년보다 훨씬 심해졌다는 것, 그리고 항상 헷갈렸던 엄마의 수술한 다리가 왼쪽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또 두 뼘쯤 가까워진다.

짐이 늘었는데 무게가 줄었다. 

그것은, 크면 클수록 가벼워지나 보다.
그것은, 

노안으로 작은 글씨가 잘 안보이셔 뭔지도 모르고 무조건 전부 챙겨 오신 샘플들에,
혹시 모르니 가져가 보라던 비자카드에,
어젯밤 약 한 달만에 엄마손으로 처음 빨려진 타월에,
감기에 걸리셔놓곤 내가 가져온 약이 앞으로의 여행에 부족할 것 같으니 먹지 않겠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씀에,
이거 가져갈래? 이거 필요해? 이건? 의 물음표에,
이거 가져가! 이거 필요할 거야! 이것도! 의 느낌표에,
사람 조심해라, 여권 잘 챙겨라 같은 귀여운 걱정에,
한국에서 보자고, 부디 조심하라고 흔드시는 손끝에,
가방이 너무 무겁다며, 조금이라도 위험한 곳엔 제발 가지 말라며 우시는 눈물에, 

잔뜩 존재한다. 
그것이, 커도 너무 큰 그것이, 깊어도 너무 깊은 엄마의 그것이, 사랑이,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붙어있어 늘어난 20킬로 배낭이 참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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