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특별함을 그리던 그날의 일기
여행을 떠나기 전, 반복되는 일상과 달라질 것 없는 내 삶에 나는 충분히 무뎌졌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니 언젠가 내가 나 하나를 건사하고, 나아가 나의 아이를 책임 저야할 때가 온다면 나는 사실 자신이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그래도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먹고는 살던 시대'를 사셨고, 나를 비롯한 우리들은 '열심히 하면 바보인 시대'를 살고 있다 느껴졌다. 그러니 내가 누구보다 힘들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나 역시 누구들만큼이나 힘들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어쩔 수 없게도, 누구들처럼 그렇게 무뎌져 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도 먹지 못한 채 출근을 하고, 하루 종일 남을 위해 살고 나면 해와 달이 같이 떠있는 시간쯤에 퇴근을 하고, 신발도 벗지 않고 그대로 신발장 앞에 쓰러지듯 누워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다 억지로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익숙하고 포근한 내 이불속에 콩이와 함께 들어가 잠을 자던 하루.
나는 그 상무에 무뎌져 갔다.
내가 남들처럼 취업준비생의 기간을 갖지 않고 바로 취직이 되었다 한들 힘들어야 당연한 게 아니었다.
내가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 한들 함께 혹은 대신 아파야 당연한 게 아니었다.
아프고 힘들어야 마땅한 청춘은, 고생하고 상처받아야 마땅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 힘듦과 아픔에 무뎌졌었다. 아니, 무너져 내렸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꽤 많지만, 어쩌면 가장 큰 부분이 '이벤트성'이었나 보다.
단조로운 일상에서는 절대로 겪을 수 없는, 이벤트적인 일정이 생긴다는 것이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의 주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것이 와 닿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일 년 내 매일같이 여행을 하다 보니 더 이상 여행은 '이벤트'가 될 수 없었고,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랑했던 여행이라는 것의 의미를 찾아내야만 했다.
이제는 압력밥솥으로 지은 찰기 있는 밥에 김치 한 점을 올려먹는 것이 나에게 '이벤트'가 되고, 한국인을 만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 '이벤트'가 되어버리니 내가 사랑하던 여행이 특별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림과 동시에, 몸서리나던 나의 일상이 특별 해져버린 것이었다.
욕지거리를 내 지르면서 찬물로 샤워를 하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침대에서 잠을 자도 행복했었다.
새로 산 노트북을 도난 맞고 사기를 당해 몇일치 여행경비를 날렸어도 행복했었다.
떠나온 나는 물론 여전히 행복하지만, 어쩌면 이제 여행이라는 것에 무뎌졌는지 모른다. 무뎌지되,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있는 나약한 나는 거센 바람에 흔들린다.
내 친구들과 동그랗게 둘러앉아 오디오가 물리게 떠들던 카페, 엄마가 해준 고기 듬뿍 김치찌개, 집 앞 곱창집, 퇴근길 지하철, 콩이의 꼬리, 인터넷 쇼핑.
내 우물 안을 채우고 있던 익숙한 것들의 특별함을 그리는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