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크라쿠프,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
나는 영화를 그다지 즐겨보지 않는다. 산만해서인지 영화관에 가지 않고서는 미디어에 집중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혼자 집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꼭 한 손엔 휴대폰을 쥐고 몇 번씩이나 일시정지를 눌러야 했다. 혼자서 영화관에 가는 것을 즐겼지만, 영화 시작 전 광고가 끝나는 순간 눈앞에 찾아오는 암흑이 무서워 정말로 보고 싶은 영화가 아니라면 굳이 찾아가지 않았다. 여행을 하면서도 외롭고 심심할 때 보기 위한 영화를 10여 편 챙겼지만, 내가 여행 중 본 영화는 꼴랑 딱 두 개였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인생은 아름다워.'였다.
무려 1999년 개봉작이다. 내가 처음 이 영화를 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TV에서였고, 두 번째는 느닷없이 록음악에 빠져 헤비메탈 CD 따위를 사들이던 20살 때였다.
처음 본 이 영화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에이, 재미없어."였다. 유대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어린 나는 잘 몰랐고, 어깨너머로 들어온 일제강점기에 대한 분노만 품기에도 작은 소녀에겐 벅찼다. 하지만, 누군가의 추천으로 두 번째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후유증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론 매년, 특히나 우울할 때, 나는 이 영화를 보곤 했다.
그러니 내가 폴란드를 들어오기 전부터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였다. 귀도와 조슈아가 살았을 그 돼지우리 혹은, 공구통이나 누군가의 사물함 같은 그 수용소가 나는 꼭 가고 싶었다. 적어도 그곳에서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기에 수용소라는 말도 순화된 것이었다.
하필 가려고 한 날이 일요일이었다. 달력이 온통 빨갛던 나는 요일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날짜를 잘못 잡아버렸다. 나오고 보니 일요일이라 괜히 마음이 불안했다. 서둘러야 했다. 크라쿠프 버스터미널에서 가장 빠른 아우슈비츠행 버스 티켓을 달라고 했고 내가 탄 차는 자그마한 봉고차였다.
이 작은 시골마을에 수용소가 지어진 이유는 아우슈비츠 지역이 지리적으로 보았을 때, 유럽 각지에서 철도에 유대인들을 태워 모아 오기 가장 적합한 위치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이 탔던 기차는 제대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닭장 같은 곳이었고, 작은 기차에 몇백 명씩을 꽉 채워 며칠간 데려오느라, 질병 등으로 기차 내부에서 죽은 사람도 허다했다고. 속이 매스꺼워졌다.
입구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입소할 때 이 문구를 본 그들은 희망을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머지않아 오직 죽음만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으리라. 나는 다시 한번, 역겨워졌다.
영어가이드를 신청해 들어갔지만,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영국식 발음인 데다가, 아주 빠르게 말씀하셔서 결국은 이어폰을 뽑아버렸다. 설명을 듣고 싶기는 했지만,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속도였고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들끼리는 삼삼오오 모여 키득거리기까지 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들으라는 거야?, 그녀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봐, 그녀도 숨을 몰아쉬고 있잖아." 같은 진심을 주고받으며.)
가스실에서 유대인을 한대 모아놓고 학살할 때 사용되었던 사이클론 B 용기이다. 한통으로 400명을 학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 작은 통하나에 400명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니 가득 쌓인 가스통을 쳐다보는 게 쉽지 않았다.
물건 같던 '인간'이 죽고, 인간의 '물건'이 남았다.
귀금속이나, 가장 좋은 생활용품들을 챙겨 수용소에 도착했다고 했다. 그들은 이 곳이 어떤 곳인지 몰랐고 반드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에 가방이나 식기구 등에 이름도 새겨 넣었다. 여길 나갈 때 자신의 물건을 잘 찾아낼 수 있도록. 커다랗게. 소중하게.
한겨울에 그들이 입었던 파랗고 얇은 천 한 장의 생활복, 유대인들의 머리카락을 섞어서 만든 천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제 1 수용소 창고에서만, 여성의 머리카락이 약 7톤 가량 발견되었다고 한다.
두 시간정도의 투어가 진행되는동안, 나는 몇 번이나 눈을 감았고, 두어 번 고개를 흔들어 방금 본 것에 대한 잔상을 지우려 했다. 실제로 사진도 많이 찍지 못했다. 기운이 쭉쭉 빠지고 손이 떨렸다.
제 2 수용소로 갈 수 있는 무료 셔틀이 있다. 버스로 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이고, 가이드가 없어 무료이니 한 번쯤 가볼만하다. 부지는 1 수용소보다 훨씬 넓지만 독일군이 퇴각하며 폐허로 만들어 증거를 없앤 터라 그들이 살았던 생활관 정도만 살짝 볼 수 있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문 앞까지 갔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이미 기운이 남아있지않았다. '귀도'의 말이 떠오른다. 조슈아를 품에 안고 속삭이던 그 말.
거짓말.
사람만큼 잔인한 게 있을까?
그런 짓을 행한 사람이, 나와 같은 생명체라는 것이, 그리고 이것이 그다지 먼 과거가 아니라는 것이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사람을 죽이는 건 사람이었다. 그들이 죽어 마땅한 이유는 '유대인'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것은 없었다. 그들이 살아온 인생도, 살아갈 인생도, 무슨 사상을 가졌는지, 어떤 선행을 베풀었고,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와 관계없이 그들은 그저 그렇게 태어났음에 죽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 안에서 살아있던 이들은,
살아있음에 감사했을까?
그것이 나라면 나는 단번에 No. 라 답했을 것이다. 희망과 자유가 없는 삶은 지옥보다 못하다. 인간이 아닌 인간은 인간이 아닌 그 무엇보다 못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사실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내가 그렇다는 사실도 여행을 다니면서 처음 알았다.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사람을 좋아하고, 살갑고 유하며, 낯을 가리지 않고 사교적인 사람이라 여겼다. 그러나 나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불신하고, 무뚝뚝하고 낯을 가리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나는 홀로코스트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귀향이라던지, 공범자들 같은 억장이 무너지는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이 삶이 충분히 추악하기에, 영화만큼은 판타지로 남길 바랐다. 즉 나는,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가슴 아픈 현실은 외면해버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역사와 사건은 모르면, 잊으면, 외면하면 반복되는 것이었다. 나는 마주했고, 나는 아파해야 했다.
내가 여행을 떠나기 이틀 전, 때맞춰 재개봉된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기 위해 혼자서 영화관을 찾았다. 몇 번이고 반복해 본 영화였지만 역시나 터질 것 같은 가슴을 퍽퍽 치며 영화를 보고, 얹힌듯한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왔다. 영화의 제목을 '인생이 아름다워?'로 바꿔주고 싶었다. 좋아, 많이 봐줘서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다워.'정도라도. 이 참혹한 주제를 담담하게 풀어낸 감독과, 그 참혹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아들에게 인생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주인공 '귀도'는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그 결과물을 보는 관객인 나는, 애석하게도 비관주의자였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며 품기 버거운 것을 외면해버리는 비관주의자다. 내가 본 인간은 추악했고, 내가 본 현실은 끔찍했으며, 어쩌면 아름다웠을 누군가의 인생은, 참 아름 답지못했다.
날이 음산해서 다행이었다. 날씨가 좋았다면, 나는 무슨 힘으로 버티고 서있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