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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Nov 22. 2017

비와 피라미드와 멕시코시티

어설프고, 엉성한 나


예정보다 5일 늦어진 생리는 별로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주기가 꽤 잘 맞는 편이라 이상하긴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늦어진 편도 아니었다.


리마에서 멕시코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새 대륙에 들어오니 조금은 들뜨기까지 했었는데 시내로 가는 버스에서 내린 직후부터, 배가 아파왔다. 그러더니 이내 어질어질하며 식은땀까지 쏟아졌다. 결국, 잘 앉아있던 길거리 벤치에서 미끌리듯 내려와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본래 건강한 몸이 아니었다.
365일 중 300일 정도는 배가 아팠고, 배가 아프지 않은 날도 설사를 했다. 빈혈쯤이야 눈밑에 점처럼 당연히 달고 있는 아이였고, 비염은 찾아오지 않는 날에 감사해야 하는 정도였다. 운동이라곤 쥐뿔도 안 해봐서인지, 천상 몸치에, 체력도 약하고 힘도 없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자연치유를 선호하던 나는 결국, 1년이 넘도록 가지고만 다니던 진통제 하나를 까먹고 정신을 되찾았다.


어쩌면 내 몸은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너를 망가뜨리는 일을 그만둬, 하고.




나는 멕시코시티에서 단 이틀간의 시간이 있었고, 그 첫날의 일정은 간단했다.


별것 없기로 유명한 소깔로를 구경 갔다, 우체국에서 노비오에게 엽서를 보내고, 멕시코 국기 패치를 하나 사들고 다시 돌아오는 것.



우선 줄이 가게 바깥까지 서 있는 타코 가게로 가 대충 아점을 먹었다. 내가 한국에서 먹었던 타코와는 다르게 크기가 작고 기름졌다.


하나에 400원꼴이었는데, 멕시코를 다녀온 사람들이 타코- 타코-하며 앓아눕는 이유를 단 한 입만에 알아차렸다. 안에 들은 거라곤 감자나 고기뿐인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지? 이 살찌는 맛이 퍽 황홀했다. 분명히 비단 저렴한 가격 때문만이 아니었다.


좀 더 소깔로를 기분 좋게 헤매며 패치를 찾는데 세 시간이나 사용했다. 기꺼이 길을 잃었던 것도 문제였지만, 내가 찾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는 내 스페인어 실력과, 패치는 절대로 팔지 않는 기념품샵들의 문제이기도 했다.


우체국을 찾는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것은 순전히 내 탓이었다. 우정궁전이라 불리는 이 우체국은 시내 정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고, 나는 바로 앞에 우체국을 두고도 어디인지 몰라 자꾸만 맴돌았던 것이다.



우체국은 웅장하고 예뻤다. 유럽의 여느 왕궁에 빗대어도 부족함이 없었다. 괜히 우정 '궁전'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이 우체국의 엔틱함이 좋았다.

그리고 이 곳에서 우표를 사서 엽서를 붙이자마자,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졌다.


그것은 맞기에는 어마어마한, 엄청난 폭우였다. 그치기를 기다려보았지만 점점 더 거세질 뿐이었다. 우산을 준비했을 턱이 없었으니, 나는 지하철까지 후드를 뒤집어쓰고 뛰었다.

심지어 폭우가 쏟아지는 이 대도시에서, 퇴근시간까지 걸려버렸다. 전쟁 같은 한국의 지옥철로 출퇴근을 해오던 나에게 퇴근시간쯤이야 익숙한 풍경이겠거니. 나는 이렇게 감히 멕시코시티의 지옥철을 우습게 보았다.



멕시티에서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일단 지하철이 한 대 들어오면, 출입문 하나당 적으면 0명, 많으면 4명 정도가 탈 수 있었다. 그것도 혼자의 힘으론 불가능했다. 일단 발의 앞코를 지하철 문안으로 들여 넣는 데 성공한 사람이 있으면, 다음 차를 기다리는 맨 앞쪽 대기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등을 밀어준다. 나는 한 시간 반 정도의 기다림 끝에 지하철에 발을 들이 밀수 있게 되었는데, 나의 등을 인정사정없이 밀어주는 사람들의 손길이 기가 막혀, 힘든 와중에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내느라 아주 혼쭐이 났다.


결국 4킬로가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를 거진 두 시간이 걸려 도착해야 했고, 그렇게 어렵사리 숙소로 돌아오자 나는 정말 뭐라도 깨부수고 싶은 심정이었다. 말하자면 생에 딱 한 번, 순간이동의 기회가 주워진다면 그 4킬로를 이동하는 데에 사용해도 후회가 없을 만큼 힘들었던 하루였다.




다음날 아침, 천장이 가깝게 보이는 2층 침대에서 일어나다 머리를 찧었다. 어제의 고생을 떠올려보니 정말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굳이 멕시코시티를 들르며 세웠던 단 한 가지 계획은 해와 달의 피라미드가 있는 떼오띠우아깐을 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보고 싶다거나 꼭 가고 싶은 것은 단연코 아니었지만, 왜인지 짐을 챙겨 억지로 기어 나왔다.


집에서 나온 건 꽤 일렀지만, 어제 못 산 멕시코 패치를 사고, 적당한 타코 집을 골라 오르차따(tiger nut, tube를 설탕, 물과 함께 차갑게 마시는 스페인의 대표 음료로, 우리나라 식혜에 계피향을 넣은 것 같은 맛이 난다.)와 함께 먹는데 시간을 전부 보내버렸다. 어차피 떼오띠우아깐은 구경하는데 그다지 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하고, 너무 일찍 가면 그늘이 하나도 없어 오롯이 햇빛을 다 받아내야 한다고 했으니 어쩌면 시간을 때우려 부러 게으름을 피운건지 모르겠다.


피라미드행 버스가 있는 멕시코시티의 터미널에 도착한 건 2시, 버스가 출발한 건 2시 15분이었다.

표를 살 때 한 번, 짐 검사 후 부스 안으로 들어갈 때 한 번, 버스에 올라타기 직전에 한 번. 세 번이나 이 버스가 맞는지 확인하고 올라탄 뒤 곧장 잠이 들었는데 도착 예정시간인 40분 정도가 지나 눈을 뜨니 웬 엉뚱한 시골마을의 버스정류장이었고 승객은 모두 내린 뒤였다.

이렇게 점심이 한참 지난 늦은 오후에 피라미드를 찾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사실 차 안에는 탈 때부터 관광객이 나 하나였고, 버스는 피라미드행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줄로 알고 멋대로 행선지를 바꾼 것이었다.


"뽀르께, 노 이르 삐라미드!, 띠에네스 께 이르 아 삐라미드!" (왜 피라미드로 안가! 넌 피라미드로 가야만 해!라는 뜻이지만, 문법과 단어가 맞지는 않을 거다.)


기사 아저씨는, 왜 피라미드로 가지 않느냐고 비쭉한 스페인어로 소리치는 나를 미안함 반, 귀찮음 반이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기다리라는 말만 남기고 버스에서 내린 아저씨는, 잠시 뒤 나를 온갖 곳에 다 멈추는 마을버스에 갈아태웠다.


한참이 지나도 출발할 생각을 않는 낙후된 마을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검지 손가락으로 시계를 톡톡 치고 있자니 지랄 맞게 또 눈물이 났다. 하. 이 울보를 어쩌면 좋나. 엄마 아빠는 "우리 딸 여행박사 다 됐겠네!"라고 하셨지만, 나는 아직도 이렇게나 엉성하다.


멕시코용 심카드가 없으니 '엉뚱한 곳에 왔지 뭐야!' 하며 하소연할 누군가도 없고, 스페인어가 짧으니 '너네 잘못이니 당장 버스를 몰아서 날 데려다 놔!' 하며 소리칠 수도 없었다. 그저 씩씩거리며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훑어내는 수밖에.



결국 내가 피라미드에 도착한 건 오후 5시. 문이 닫히기 겨우 두 시간 전의 시각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빌어먹을 장대비가 어제보다 더 우렁차게 몰아치며 나를 조롱한다. 사진 촬영을 위해 몇 주 만에 입은 불편한 청바지를 적시며 떼오띠우아깐입구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티켓 여기서 사면 돼! 아직 넌 들어갈 수 있어."


멍하니 선 나를 보고는 카운터 안에 있던 아저씨가 굳이 우산까지 쓰고 나와서 나를 안내했다. 나는 고맙다는 말만 남기고 뒤를 돌아, 다시 버스를 타러 갔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서두른다면 다 보고 나올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결국 피라미드의 입구 앞에서 그대로 멕시티행 버스에 올라탔다.


무서울 만큼 쏟아지는 비는 이미 도로를 점령했고, 차는 오도 가도 못한 채 한 시간을 그대로 서있었다. 초등학생처럼 서리 어린 창에 손가락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꾹꾹 눌러 닦으며 나는 숙소로 향했다.




내 여행은 멀리서 보면 꽃가루가 날리고 폭죽이 터지는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본다면 짠할 만큼 비극이다.


나는 내가 이 여행을 통해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꽤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믿었다.


나는 그대로 나였다.
바보 같고, 한심하고, 엉성하고, 어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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