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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Nov 21. 2017

돌아갈 용기

떠나는 용기보다 더 커다란 것


여행을 떠난지는 5개월 정도가 됐었고, 장기여행이 처음인 나는 몸이 지쳐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른 곳이 물가도 저렴하고 다이빙도 배울 수 있는 이집트 다합이었고, 이 곳에서 집을 빌려 휴식을 취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늦은 저녁까지 드라마를 보고 수다를 떨다, 평소와 같이 침대 두 개가 놓인 작은 원룸의 '우리 집'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서울 '우리 집', 내 방 이불속이었다.


몸은 굳었고, 나는 멍하니 내 방의 익숙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합에 두고 온 내 짐들, 아프리카를 같이 여행하기로 했는데 내가 사라져 당황할 진우, 아직 가보지 못했던 다이빙 사이트, 미리 예매해둔 탄자니아행 비행기표 한 장, 심지어 어제저녁 다음날 먹기 위해 부엌에 사다둔 젤리까지 생각이나 정신이 아찔해졌다.


엄마는 내가 여행 중에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등갈비 김치찜을 해 놓으시고는 박수까지 치며 신이 나서 나를 깨우신다. 콩이의 차가운 콧물이 볼에 와 닿는다. 


"아, 망했다."


입 밖으로 생각을 읊조리자 그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깨니 당연히도 '이집트 다합의 우리 집'이었고, 시간은 새벽 네시였다. 뭔가 이상하다. 그것은 분명 따듯한 아침. 내가 미치게 그리워하며 울기까지 했던 일상인데 악몽에 가깝게 느껴진다.





한국에 돌아가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한국을 떠나던 것보다 더 겁이 난다.


어떤 세상인지 모르는 곳, 뭐가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새로운 것이 가득한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보다, 어떤 세상인지 너무 잘 아는 곳, 뭐가 있는지 내가 뭘 할지 예상이 가능하고 그 예상이 절대로 빗나가지 않을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끔찍이 무섭다.


떠나던 나에게 "이야, 혼자서 세계여행을 떠나다니 대단하다!"라고 말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온 나에게 "우와, 돌아오다니 용감한걸!"이라고 말해줄까?


나는, 떠나갈 용기는 있지만 아직 돌아갈 용기가 없었다. 억지로 외면하고 있던 나의 나약함을 스스로에게 들켜버린 너무 아픈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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