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내 평생 단 한 번도 캄보디아를 그러니까, 앙코르와트를 가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역사나 유적지에 문외한인 나라서 앙코르와트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 더운 나라에서 오래된 돌덩이를 보자고 값비싼 입장료를 치룰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시아에서 보고 싶은 건 앙코르와트밖에 없어."
내가 나의 짝꿍 진우를 따라 아시아로 넘어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색한 표정이 들키지 않도록 서둘러 "어, 나돈데."라고 대답했다.
악명 높은 캄보디아 보더에서 소문대로 나 역시 입국을 위한 수수료 3불을 별 수 없이 지불해 영 탐탁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버스를 타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건 2월 2일 이른 아침이었다. 그리고 올해 2월 1일부터 앙코르 유적지의 입장료가 거진 2배 가까이 올랐다는 소식을 접했다. 작년, 내년도 아니고 심지어 1월부터도 아닌 어제부터 라니. 안될 사람은 온 우주가 나서서 안되게 돕는구나.
갑자기 오른 입장료를 감당해내기가 힘들어 삼일짜리 입장권을 사려던 계획을 하루짜리로 변경했다. 한나절 내내 꼬박 뒤져 우리의 발이 되어줄 툭툭이 한 대를 구했다. 문제는 가이드였다. 가이드비를 우리 두 명이 감당하기엔 너무 비쌌고,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의 영어 설명을 완벽히 알아들을 자신도 없었다.
앙코르와트를 가기 전 날, '세계테마기행'과 '걸어서 세계속으로'같은 프로그램들에서 방영된 앙코르 유적지 편을 보았다. 수리야 바르만 2세, 자야 바르만 3세, 힌두 신화, 천년의 세월. 내 삶에 조금도 관련되지 않은 설명을 듣다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유적지의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그 웅장함에 나는 압도되었다. 그 시절의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신념으로 이걸 만드는데 목숨을 걸었단 말인가. 늪지를 단단한 땅으로 다시 만들어낸 것부터, 높게 쌓아올린 건물, 정교한 벽화와 조각, 깊고 넓게 파낸 해자까지.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큰 집념을 가진 걸까. 산 넘어 돌을 나르고 가져와 올리고 쌓기를 몇 번 반복하면 한 생명이 끝나는 그 작업으로 탄생한 앙코르 유적지는 가히 어마어마했다. 그들에 대한 경외심마저 들었다. 긴 시간동안 숱한 햇빛과 비바람을 맞아 패이고 삭고 어두워졌다. 전 날 잠이 들어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음에도 내 관심을 끄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나는 도저히 입을 다물수 없었다. 처음 발견 당시, 외계인의 소행이라 믿었다던데, 그 생각에 콧방귀를 뀌던 게 미안해졌다.
과연 불가사의라 불릴 만큼 컸다. 하지만 두배 값을 치르고라도 삼일권을 사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극심한 더위였다. 너무 더웠다. 질끈 묶었는데도 이마에, 볼에 붙는 머리를 손으로 계속해서 떼어내고, 쫄티처럼 달라붙는 티셔츠를 가슴팍이 드러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멀찍이 떼어냈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신음이 나왔다. 정수리가 뜨겁다 못해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오늘이 지나면 입장권이 만료돼 다시 발을 디딜 수 없는 곳. 마음이 급해 쉴 수 없었다.
날이 덥고 시간이 적으니 오히려 차분해졌다. 어차피 벽화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한달은 족히 걸릴 규모였다. 고개를 돌리는 것도 힘에부쳐 생각마저 지웠다. 그러자 오히려 많은것들이 또렷히 들어왔다.
나는 언제나 세상의 모든 이치는 과학으로 밝혀낼 수 있고, 자연은 결국 인간에게 패배할 것이라 믿는 그릇된 문명 신봉자다. 그런데 이곳에서 인간의 신념과 집념으로 완성된 이 엄청난 유적지가, 자연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모습을 보았다.
나무에 주사를 놓아 성장을 억제시킬 수도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나무를 아예 제거한 후 건물을 복원시키는 대신, 사람들은 자연과의 공존을 선택했다. 앙코르와트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세월이 만들어낸 걸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