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작가의 <영원한 천국>
미리부터 잔뜩 쫄아서 읽기 시작했다. 사실 무서울까 봐 벌건 대낮 열차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는(대쫄보).
다행히 이번 신작은 정유정 작가의 매운맛 버전은 아니었고 굳이 분류하자면 순한 맛에 가까웠다.
매운맛과 순한 맛을 번갈아가며 집필한다는 인터뷰 기사를 그 후에 읽었다.
롤라와 드림시어터, 육체를 버리고(현생에서의 죽음에 가까운 방식으로) 나의 영혼이 어딘가 커다란 플랫폼에 업로드된다.
육체에 구애받지 않고 영생을 누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미지화해서 현실처럼 구현할 수도 있다.
영혼을 스캔해서 업로드한다는 모티브를 보자마자
켄 리우의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에 수록된 ‘카르타고의 장미’가 바로 떠올랐다.
켄 리우 버전이 좀 더 차갑고 소름 돋기는 하지만.
카르타고의 장미에 나오는 리즈처럼, 살아있는 영혼을 스캔하는 다양한 방식의 임상실험이 수행된 후에
롤라가 구현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가상세계 롤라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가 롤라 극장,
즉 가상의 삶을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보는 것이라는 게 역시 인간답다고나 할까.
가상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 나는 그게 가상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인지하는 시점은 극장을 벗어난 후, 곧 가상의 삶에서의 죽음 이후다.
따라서 모든 삶은 예외 없이 죽음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고 죽음과 동시에 본래의 나로 돌아온다 는 설정이 이 소설의 중심이 된다.
흥미진진한 부분도,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실망시키지는 않는 정유정 작가.
아직 나의 원픽은 <28>이지만. 연휴 동안 재미나게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