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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자 Dec 24. 2016

빵과 수프와 브뤼겔

이번 편에서는 추수감사절 특집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피에터 브뤼겔 (Pieter Bruegel the Elder, ca. 1525-1569)의 추수자들 (The Harvesters, 1565)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미술관 2층 642번 방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16세기 북부 르네상스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아주 정교한 세부 묘사가 특징입니다. 이는 유화라는 새로운 매체의 발명에 기인한 것인데 유화는 바로 이 지역의 화가들이 발명한 것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닷가의 배에서부터 전경의 나뭇잎까지 정말 아주 세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북부 르네상스 (Northern Renaissance)라는 용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Italian Renaissance)와 구분지어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 때 북부라 함은 지금의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지역입니다.

브뤼겔의 추수자들은 안트베르펜 (Antwerp)시의 상인이 교외에 있는 자신의 집에 걸기위해 브뤼겔에게 1년의 계절적 풍경을 담은 6점의 그림을 제작하도록 의뢰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추수자들은 7-8월 혹은 늦여름을 보여주는 작품이고 다른 4점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미술사 박물관 (Kunsthistorisches Museum)과 체코 프라하의 롭코비츠 성(Lobkowicz Collection)에 있습니다.

밀밭에서 추수를 하는 사람들과 오른편에는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뭘 먹고 있는 걸까요? 16세기 유럽 사람들은 뭘 먹고 살았을까요? 우선 오른편 저 멀리 나무 한 그루가 더 보이고 그 밑에 여인들이 과일을 줍고 있습니다. 꼭대기에 남자 한 명이 거꾸로 매달려 열매를 떨어트리고 있고, 바닥에 사다리가 있는 걸로 보아 아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듯 해 보입니다. 배나무에서 배를 수확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배를 전경에 있는 사람들이 점심으로 먹고 있기도 합니다. 관객의 등을 지고 앉아있는 여성의 하얀 앞치마에 배가 놓여져 있습니다. 한국식 배가 아니라 서양배입니다. 맨 앞줄 왼쪽의 남자와 오른쪽 뒷편에 파란색 상의를 입은 여자는 무언가를 잘라내고 있는데 치즈입니다. 치즈를 올려 빵에 얹어 먹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죠?


중앙에는 숟가락으로 뭔가를 떠먹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대접에 뭔가를 들이키고 있는 사람은 우유를 마시고 있는 것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빵에 버터를 발라먹는 것은 중세 북유럽에서 시작되었고, 버터는 주로 농민들이 소비하는 음식이었다가 16세기 초 로마 카톨릭교에서 사순절 동안 버터의 사용을 허용하면서 점차 중산층, 상류층으로 확대됩니다.

그렇다면 중앙에 관람자를 응시하는 남녀가 숟가락으로 먹고 있는 수프는 어떤걸까요? 역사적으로 이 시기 북유럽에서 농민들이 주로 먹던 수프는 콩과 야채를 넣고 끓인 것으로 묽은 수프가 아닌 죽 (porridge)에 가까운 음식입니다. 예전에 여행을 하면서 당시 한국의 제과점에서는 볼 수 없었던 덩어리가 크고 거무튀튀한 빵을 사서 친구랑 사 먹은 적이 있었는데 친구가 한 입 베어물자마자 “농노의 빵 같군”이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림에 보이는 음식들이 맛이 있을 거라는 상상은 힘듭니다.


네덜란드식 버터우유 죽 (Dutch Buttermilk Porridge)이라고 16세기 네덜란드인들이 주로 먹던 음식의 레시피를 보면 밀가루와 버터우유를 넣고 끓여 소금이나 당으로 간을 한 것이 전부입니다. 지금의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중세와 르네상스시기 플랜더스 (Flanders)라고 알려진 지역입니다. 어린 시절 플란다스의 개라는 만화를 본 기억이 있는데 그 때 플란다스가 이 지역인 줄은 몰랐죠.

지도상으로 보면 남부 네덜란드와 북부 벨기에 그리고 프랑스 북동부 지역이 옛날의 플랜더스 지역이었습니다. 이 지역들은 전통적으로 부유한 상인들이 많이 있었고 브루쥐 (Bruges), 안트베르펜 (Antwerp), 겐트 (Ghent)같은 부유한 도시들의 중상류 상인계층이 미술과 문화의 후원자가 되면서 16세기에는 북부 르네상스 혹은 플레미쉬 르네상스 (Flemish Renaissance)의 전성기를 이룹니다.

이 지역은 14, 15세기에는 부르고뉴 공국 (Duchy of Burgundy)의 일부로 부르고뉴 네덜란드(Burgundian Netherlands)로 불렸습니다. 영어로는 버건디라고 발음하고 프랑스식 발음은 부르고뉴 (Bourgogne)로 지금은 와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프랑스 동부 지역입니다. 예전 미국 TV에서 인기 요리사인 앤소니 버댄 (Anthony Bourdain)이 진행하는 요리 여행 프로그램인 No Reservations에서 보고 너무나 멋진 포도밭 풍경에 넋을 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르고뉴 공국은 14세기 중, 후반부터 까술레와 로댕편에서 백년전쟁을 설명하며 언급한 카페왕가의 지배아래 놓이게 되고 실질적으로 프랑스 왕들과 사촌관계이니 만큼 프랑스의 가장 강력한 동맹세력이었지만 정작 백년전쟁 기간동안은 영국측을 지원합니다. 그 이후로 프랑스 왕가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고 부르고뉴 공국의 지도자인 공작은 공국을 왕국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이 역시 프랑스 왕의 방해로 좌절됩니다. 당시 공작은 용담공 샤를 (Charles the Bold, 1433-1477)로 발루아 가문 출신이었고 프랑스 왕은 루이 11세 (Louis XI, 1423-1483)로 역시 발루아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공작 샤를이 죽고 유일한 후계자인 메리 (Mary of Burgundy, 1457-1482)가 공국을 물려받고 그녀는 합스부르그 가문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언 1세 (Maximilian I, 1459-1519)와 결혼하고 그녀의 사후 부르고뉴 공국은 합스부르그 가문의 영토가 됩니다. 네덜란드는 부르고뉴 네덜란드 (Burgundy Netherlands)에서 그녀의 사후 합스부르그 네덜란드(Habsburg Netherlands)로 불리게 되고 브뤼겔은 합스부르그 네덜란드 시기 이 지역이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일 때 활동을 한 화가입니다.

위의 그림이 완성되고 3년후인 1568년 80년 전쟁이 일어나고 1581년 네덜란드 공화국 (Dutch Republic)이 형성되며 이 지역의 북부는 지금의 네덜란드로 남부는 스페인 합스부르그 가문의 지배아래 놓이게 되어 지금의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일부 지역은 스페인 네덜란드 (Spanish Netherlands)로 불리게 됩니다.


다시 브뤼겔의 추수자들 그림 속의 음식 얘기로 넘어와, 농부들이 먹던 음식, 특히 죽 형태의 음식 중 하나는 각종 콩을 넣고 걸쭉하게 끓이는 콩 야채 포타지 (Legume Pottage; Potage aux legumes)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포타지 (Potage)는 수프보다는 농도가 훨씬 걸쭉하고 죽보다는 좀 묽은 형태입니다. 플랜더스 지방의 전통요리 중 이와 비슷한 플래미쉬 하치 파치 (Flemish Hotch-potch) 혹은 네덜란드어로 헤치폿 (Hutspot)이라는 음식이 있습니다. 영어로 잡동사니 (hodgepodge)라는 단어와 연관되어 이것저것 넣고 끓인 음식이라는 뜻으로 알려졌고 전통 네덜란드 요리로 80년 전쟁때 탄생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감자, 당근, 셀러리, 양파 등을 한꺼번에 넣고 끓이는 요리로 소세지나 소꼬리같은 육류를 넣어 스튜 형식으로도 먹는다고 합니다.

 

저는 이 요리를 먹어 본 적은 없지만, 프랑스 요리 중 소고기 스튜요리인 뽀또푀 (Pot-au-feu)와 유사해 보입니다. 17세기 프랑스에서 등장한 이 요리는 원래 닭고기 스튜요리였다가 소고기를 넣고 오래 끓이는 요리로 진화했습니다. 일본 TV 광고에 이 뽀또푀가 나온 것을 본 것이 처음으로 기억되는데 미원을 개발한 아지노모토 (Ajinomoto)사의 닭육수 조미료인 콘소메 광고였습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19세기 말부터 양식을 적극 수용했던 일본에서 뽀또푀는 가정에서 겨울에 뜨근한 국물요리로 많이 해먹기도 하도 학교 급식에도 나올 정도로 보편화된 음식입니다. 양배추안에 다진 소고기나 소세지를 넣고 감싸서 끓이는 비슷한 요리도 있습니다. 호기심에 프랑크 소세지와 각종 야채를 넣고 만들어 본 적이 있는데 아주 담백하고 맛있어서 한동안 계속 해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맛의 핵심은 콘소메 였습니다 ㅎㅎ


뉴욕 타임즈 레시피 링크합니다.

http://cooking.nytimes.com/recipes/7723-pot-au-f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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