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Always trainee forever
내 인생에서 요가를 만나게 된 건 최고의 행운이었다. 요가는 나의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를 결정하고, 정신과 신체를 연결시켜준다. 나는 평생에 걸쳐 배움의 자세로 수련을 할 것이다.
조금 과장된 듯하게 썼지만, 요가의 의미는 나에게 매우 크다. 그런데 내가 요가에 이렇게 빠지게 된 데는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지금의 요가 선생님을 만나고,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쪼개 숙련자급의 아쉬탕가 프라이머리 시리즈 수련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땀을 흠뻑 흘리는 60분간의 수련을 하면서 내 몸은 많이 변했다. 팔 근육이 눈에 띌 정도로 울퉁불퉁 해졌고,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시르사아사나(머리서기)자세가 가능해졌다. 물론 더 고난도 자세(킹 피존, 박카사나, 전갈 자세)가 욕심날 때도 있지만 어차피 평생 수련할 건데 언젠간 되겠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요가를 할 때면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한다. 매트 위에 나 혼자만 우주 위에 떠있는 기분이다. 들리는 것은 내 숨소리와 선생님이 외치는 산스크리트어 아사나 구령뿐이다. 느껴지는 것은 아사나에 따른 근육의 자극과 뜨거워진 내 몸이다. 그리고 요가를 마친 마지막 아사나, 사바아사나 때는 내면의 평화가 느껴진다.
난 몸이 지치고, 마음이 괴로울 때 요가를 한다. 전신을 깨우는 격렬한 아쉬탕가보다는 하타요가나 가벼운 빈야사 요가를 한다. 그때마다 치유가 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요가를 시작한 목적은 "건강한 신체"였으나 지금의 목적은 "인생의 행복"이다.
한동안 "struggle free"라는 단어가 생각이 많이 났다. struggle free는 "애쓰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뜻이다. 나는 참 열심히 살았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치열하게 살았으며, 그것은 나만의 생존 방식이었다. 물론 그 결과로 지금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요가 수련은 내가 항상 목과 어깨에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 이완하는 동작에서도 항상 어깨를 긴장하고 애쓸 준비를 하고 있어, 요가 선생님께 지적도 많이 받았다. 어느 날은 밤에 잠에 들려고 침대에 누워서 바디스캔을 하는데, 또 어깨에 힘을 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이러니하게도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나는 애쓰고 있었다. 나에게 자연스러운 행동은 애쓰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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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의식적으로 목과 어깨에 힘을 빼고, 휴식을 취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인 키노 맥그레거 선생님의 '아쉬탕가 요가의 힘'구절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불가능해 보이는 자세들을 하나씩 실현해가는 길을 통해 요가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정말로 이루기 힘든 것은 신체적인 형태가 아니라 전혀 동요하지 않는 내면의 평화이며, 우리는 이 평화에 이르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이 영원한 평화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진정한 목적지는 여행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는 고전적인 역설을 이해해야 한다. 요가라는 평생에 걸친 영적 길을 따라 어딘가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가장 기초적인 교훈 중 하나, 즉 "우리가 갈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집착과 욕망을 놓아버리는 것으로 시작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진실로 평화로운 마음 상태에 이를 수 있다.